"배고픔을 달래던 음식이 국민 먹거리가 되기까지.
한 그릇 안에 전쟁, 가난, 그리고 한국인의 창의성이 담겼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졌다. 3년간 한반도 전역이 불탔다. 전쟁이 멈춘 뒤에도 미군은 남아 있었다. 의정부, 동두천, 파주, 송탄, 군산, 이태원 — 미군 부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철망 너머로 이상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소시지, 햄, 베이컨. 한국인들이 이름도 몰랐던 음식들이었다.
먹을 것이 없었다. 그 시절 부대 철망을 넘어 흘러나온 '부대고기'는 귀한 단백질이었다. 누군가 그것을 솥뚜껑에 올리고 김치와 고추장을 넣어 볶았다. 자꾸 타서 물을 부었다. 찌개가 됐다. 그렇게 전쟁이 만들고, 가난이 다듬고, 한국인의 입맛이 완성한 음식이 탄생했다. 부대찌개.

유출된 가공육.
'부대고기'라 불렸다
한국 맛을 입힌
핵심 재료
비결.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환시킨 재료
재료. 지금은
빠질 수 없는 필수품
부대찌개의 주인공은 원래 군인이 아니었다. 미군 부대 근처에 살던 민간인들이었다. 전쟁 직후 폐허 속에서 미군 부대 관련 일을 하던 사람들이 부대에서 나오는 소시지, 햄, 베이컨 등의 가공육을 손에 넣었다. '부대고기'라 불린 이 재료들은 처음엔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남은 잔반인 경우도 있었다. 날것으로 먹기 두려워 끓여 먹었다.
처음엔 전골판에 소시지와 햄, 양파, 양배추를 넣고 버터에 볶았다. 술안주였다. 그런데 볶으면 자꾸 탔다. 바닥이 타지 않도록 물을 부었더니 — 찌개가 됐다. 여기에 고추장과 신김치를 넣었더니 이상하게 맛이 좋았다. 서양 재료와 한국 양념이 충돌하고 화해한 순간이었다.
의정부에서 1960년부터 포장마차를 운영하던 허기숙 할머니는 근처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소시지와 햄을 활용해 부대찌개를 선보였다. 1968년 '오뎅식당'으로 상호 등록을 했다. 맛집으로 소문이 나자 인근에 비슷한 가게들이 줄지어 생겼다. 지금의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

부대찌개는 하나가 아니다. 미군 부대가 주둔했던 각 지역마다 고유한 스타일이 발달했다. 같은 재료에서 출발했지만 지역 식문화와 결합하면서 전혀 다른 맛이 됐다.
존슨탕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첫째, 1966년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이 방한해 미군기지를 방문했을 때 부대 앞 식당에서 먹고 호평했다는 설. 둘째, 미국에서 흔한 이름인 '존슨'이 미국인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 쓰이면서 자연스럽게 붙었다는 설. 어느 쪽이 정확한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태원 '바다식당'은 지금도 메뉴명을 부대찌개 대신 '존슨탕'으로 표기합니다.




2020년 BBC는 부대찌개를 두고 이렇게 썼다. "끝나지 않은 잔혹한 전쟁을 상기시키는 음식이며, 황폐한 재난에서도 빛난 창의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한국과 미국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낸다." 사회학자 그레이스 M. 조는 이것이 "재난에서 끌어올린 창의성이자 한미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는 음식"이라고 했다.
부대찌개는 식민지와 전쟁, 분단과 가난이 만든 음식이다. 그 안에 어떤 자긍심도 없었다. 다만 생존이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버려진 재료를 끓였고, 그게 맛있었다. 그 맛이 70년을 넘어 살아남았다.
햄과 소시지가 한국 전통 식재료가 아닌 건 맞다. 그러나 그것을 김치와 고추장으로 끓여낸 것은 순전히 한국인의 것이다. 서양 재료가 한국 양념을 만나 전혀 다른 음식이 됐다. 전쟁이 이식한 재료를, 한국인이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지금 부대찌개 한 그릇에는 스팸(미국), 소시지(독일에서 미국으로), 김치(한국), 고추장(한국), 라면(일본에서 한국으로), 떡(한국) 이 들어간다. 한 그릇 안에 20세기 전쟁사와 식민사가 녹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맛있다고 먹는다. 그 아이러니 자체가 부대찌개의 정체성이다.


"배고픔을 달래던 음식,
국민 먹거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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