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군대에 식량을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니키타 흐루쇼프, 훗날 소련 서기장이 된 남자의 고백
1937년 7월 5일, 미국 미네소타주 오스틴의 작은 정육회사 호멜(Hormel)이 통조림 햄 하나를 출시했다. 별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이 제품은, 그러나 2차대전을 거치며 6개 대륙 100여 개국으로 퍼져나간다. 한국에서는 명절 선물 1순위가 됐고, 영국 총리는 "전시의 별미"라 불렀으며, 소련 서기장이 될 사람은 "이것 없이는 군대를 먹일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버려지던 돼지 어깻살에서 시작된 이 통조림은 어떻게 20세기를 가장 멀리 퍼진 전투식량이 됐을까. 이번 화는 스팸의 탄생, 그리고 그 적국이었던 독일의 또 다른 전투식품 이야기다.


돼지 어깻살 활용한
통조림 가공육
초콜릿+커피+콜라열매
각성 전투식
남은 부산물.
버려지던 부위
연구하던 보존제.
스팸 제조의 핵심
제이 호멜(Jay Hormel)은 1918년 1차대전 당시 프랑스 주둔 미군 351보병연대의 병참장교였다. 그의 임무는 고기를 운송하는 것. 뼈가 붙은 고기는 무겁고 부피가 컸다. 운송이 느리다고 상관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그는 생각했다. "뼈를 미리 분리하고 살코기만 가져가면 어떨까."
전쟁이 끝나고 가업을 물려받은 제이 호멜은 1926년 세계 최초의 통조림 햄을 개발했다. 그런데 새로운 골칫거리가 생겼다. 넓적다리 햄을 만들고 나면 어깻살이 남았다. 맛은 있었지만 뼈 분리가 까다롭고 조각이 작아 잘 팔리지 않는, 사실상 버려지던 부위였다.
호멜사 소속 프랑스인 요리사 장 베르네(Jean Bernet)가 아이디어를 냈다. 이 어깻살을 갈아 양념하고 캔에 넣어 익히면 어떨까. 당시 미 육군식품연구소가 연구하던 보존제 아질산나트륨이 활용됐다. 뼈 없는 살코기를 갈아 지방과 조미료를 더한 새로운 통조림 햄이 탄생했다.
제품명은 처음에 'Hormel Spiced Ham'이었다. 너무 평범해 인기가 없었다. 1936년 연말 파티에서 호멜은 100달러 상금을 걸고 이름 공모전을 열었다. 뉴욕의 배우 케네스 데이뉴(Kenneth Daigneau)가 'SPAM'이라는 짧고 강렬한 이름으로 우승했다. 'Spiced Ham(양념 햄)'의 축약어이자, 'Shoulder of Pork And ham(돼지 어깻살과 햄)'의 머리글자라는 설도 있다. 호멜사는 정확한 어원을 "소수의 전직 임원만 안다"며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출시 4년 만에 스팸은 연간 1만8,000톤을 판매하며 호멜의 주력 상품이 됐다. 그리고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했다. 미군은 식품회사들에게 휴대가 쉽고, 가볍고, 썩지 않는 고열량 단백질 식량을 주문했다. 스팸은 이 조건에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2차대전 동안 미군에 공급된 통조림 가공육의 90%가 호멜사 제품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스팸이었고, 전쟁 기간에만 1억 개 이상이 팔렸습니다. 호멜사는 매주 1,500만 개의 스팸을 전선에 납품했습니다. 미국의 무기대여법(Lend-Lease)에 따라 영국, 소련을 비롯한 거의 모든 연합국 군인의 배를 채웠습니다.
영국에서 스팸은 명성을 얻었다. 1980년대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훗날 스팸을 "전시의 별미(wartime delicacy)"라고 회고했다. 더 놀라운 것은 소련의 반응이었다. 훗날 소련 서기장이 되는 니키타 흐루쇼프는 이렇게 말했다. "스팸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군대에 식량을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의 가공육 통조림 하나가 적대 진영이 될 두 강대국 모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차대전 양 진영의 전투식품 전략은 극명하게 갈렸다. 미군은 대량 생산 가능한 단백질원(스팸)에 집중했고, 독일군은 극한 환경에서 버틸 각성제 겸 비상식량(쇼카콜라)에 집중했다. 두 식품 모두 "병사가 더 오래, 더 잘 싸우게 만든다"는 같은 목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쇼카콜라는 1935년 베를린의 힐데브란트사가 개발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포츠 초콜릿'으로 처음 소개됐다. 100g 한 통에 카페인 200mg — 에너지 음료 몬스터나 레드불의 5~6배에 달하는 농도다. 전차 승무원과 U보트 승조원, 루프트바페(공군) 조종사들에게 지급돼 긴장감과 피로, 공포심을 줄이는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했다.
두 식품의 공통점도 있다. 둘 다 군용으로 시작했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았다는 것. 스팸은 전 세계 마트 선반의 단골이 됐고, 쇼카콜라는 지금도 독일에서 판매되며 아우토반을 달리는 트럭 운전사들의 졸음 방지용으로 사랑받는다.

스팸이 한국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50년 한국전쟁이었다. 미군 보급품으로 들어온 스팸은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귀한 단백질원이었다. 미군과 연줄이 있는 부유층만 접할 수 있었던 시절, 스팸은 자연스럽게 '고급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됐다.
1946년 호멜사는 2차대전에 참전했던 여성 음악가 60여 명을 모아 '호멜걸스(Hormel Girls)'라는 공연단을 결성했습니다. 음악과 코미디 공연을 곁들여 마트와 가정을 방문하며 스팸을 홍보했고, 일요일 저녁 전국 송출 라디오쇼에도 출연했습니다. 참전 여성들을 내세운 애국 마케팅은 큰 효과를 냈고, 1950년 스팸 생산량은 10억 개에 달했습니다.

2003년 기준 스팸은 6개 대륙 41개국에서 판매되고 100여 개국에 상표 등록됐다. 2007년 한 해에만 약 70억 개가 팔렸다. 필리핀에서는 연 125만kg이 소비되며 문화의 상징이 됐고, 하와이에서는 '스팸 무스비'라는 독자적 요리 문화가 생겼다. 홍콩에서는 2차대전 후 부족한 고기를 대신해 스팸 국수가 등장했다.
버려지던 돼지 어깻살 하나가, 전쟁이라는 거대한 물류 시스템을 타고 전 세계 식탁에 안착했다. 미군이 가는 곳마다 스팸이 함께 갔고, 그 자리에 각 나라의 방식으로 재해석된 요리가 새로 태어났다. 부대찌개, 스팸 무스비, 스팸 국수 — 모두 한 통조림이 남긴 흔적이다.
버려지던 어깻살이 전쟁을 거쳐 식문화가 됐다. 미군의 보급품이 한국의 명절 선물이 되고, 적국 독일의 초콜릿은 지금도 트럭 운전사의 동반자로 남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식탁 위의 흔적은 8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스팸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군대에 식량을 공급할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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