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밥심으로 행진한다고 했다.
나폴레옹은 그 밥을 병 속에 넣어버렸다."
1795년, 프랑스는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강했다. 빠른 기동력, 분산 병력, 전술적 천재성.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여름이면 식량이 바닥났다. 상한 고기, 썩은 빵, 이질. 총탄보다 배탈이 더 많은 병사를 쓰러뜨렸다.
나폴레옹은 알았다. 전쟁은 전술만으로 이기지 않는다. 먹어야 싸운다. 그래서 그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렸다. 식품 보존법을 발명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겠다고.
그 현상금이 인류의 식탁을 영원히 바꿨다.


중탕살균. 통조림의
원조
개발. 오늘날 캔의
직계 조상
따개가 없었다.
대검으로 뜯었다
파스퇴르가 설명한
건 50년 후
1795년, 프랑스 총재 정부는 공고를 냈다. "방부제 무첨가로 식품을 장기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는 자에게 1만2,000프랑을 지급한다." 현재 가치로 약 5,000~6,000만 원. 거금이었다.
응모자는 많았다. 그러나 15년 동안 아무도 상금을 타지 못했다. 소금절임, 훈제, 건조 — 기존 방법의 변형만 나왔다. 진짜 혁신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파리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던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 1749~1841)는 요리사 출신이었다. 그는 1795년부터 혼자 식품 보존법을 연구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샴페인 병에 음식을 넣고 코르크를 막고 끓이는 실험을 반복했다.
아페르의 방법은 단순했다. 샴페인 유리병에 잘게 썬 채소와 고기를 넣고, 코르크 마개를 느슨하게 막은 뒤 끓는 물에 30~60분간 가열한다. 뜨거울 때 마개를 촛농으로 밀봉한다. 끝. 음식은 썩지 않았다. 왜 그런지는 몰랐다. 루이 파스퇴르가 미생물의 존재를 밝히는 것은 50년 후의 일이었다. 아페르는 원리도 모른 채 결과만 얻었다.
자료마다 상금 수령 연도가 1809년, 1810년으로 엇갈립니다. 정확히는 1810년이 맞습니다. 아페르는 이 해에 상금을 받는 동시에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 『모든 동식물의 장기 보관법』을 출판했습니다. 특허를 내는 대신 방법을 공개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 결과 기술은 즉시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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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식재료 EP.6] 통조림의 발명 — 나폴레옹 전쟁이 식품 보존 기술을 만든 역사
2026.05.04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4)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4)2026.05.02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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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이전에 전염병과 식재료 시리즈에서 다룬적이 있다.
1803년, 아페르의 병조림은 프랑스 해군의 시험 항해에 처음 투입됐다. 채소, 과일, 고기, 생선, 유제품 — 18가지 식품이 유리병에 담겨 배에 실렸다.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병사들이 병을 열었다. 음식은 멀쩡했다.
나폴레옹은 이 기술이 전술의 판도를 바꿀 것을 직감했다. 기존 군대는 식량 보급을 위해 수레 행렬을 달고 다녀야 했다. 무겁고 느렸다. 그러나 병조림이 있으면 각 병사가 식량을 직접 들고 이동할 수 있었다. 소규모 분산 병력이 빠르게 기동하는 나폴레옹 특유의 전술이 비로소 완성됐다.
1809년 프랑스 신문 쿠리에 드 뢰로프는 이렇게 썼다. "아페르는 계절을 붙잡아두는 방법을 발명했다. 정원사가 유리돔 아래에 연약한 식물을 보호하듯, 아페르는 병 안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물론 단점도 있었다. 유리병은 무겁고 깨졌다. 행군 중 배낭 안에서 산산조각 나는 병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이었다.

병조림의 아이디어는 유리에서 금속으로,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군대에서 민간으로 빠르게 번졌다.



통조림은 프랑스가 발명했다. 그런데 이 기술을 가장 빠르게 발전시킨 것은 영국이었다. 나폴레옹과 전쟁 중이던 바로 그 적국이. 피터 듀란드는 유리병 대신 주석 도금 철제 캔을 고안했고, 영국 해군은 이를 즉각 채택했다. 깨지지 않고, 가볍고, 배에서 굴러다녀도 안전한 금속 캔은 해양 강국 영국에 완벽히 맞았다.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에서 패했다. 하지만 그가 걸었던 현상금이 만들어낸 통조림은 계속 행진했다. 이후 미국 남북전쟁, 1차대전, 2차대전 — 모든 근현대 전쟁에서 통조림은 병사의 배를 채웠다.
1865년 미국 미주리강에서 증기선 버트랜드호가 침몰했다. 1968년 인양 작업 중 화물이 발굴됐고, 1974년에는 통조림들이 나왔다. 브랜디에 절인 복숭아, 굴, 토마토, 꿀. 100년이 넘은 통조림이었다. 전문가들이 성분을 분석했을 때 식품은 여전히 섭취 가능한 상태였다. 아페르의 방법은 그만큼 완벽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연간 생산되는 통조림은 수천억 개. 참치캔, 복숭아캔, 고추참치, 스팸. 그 모든 캔의 첫 번째 조상은 1795년 파리의 제과점 주인이 샴페인 병에 양배추를 넣고 끓이던 실험에서 시작됐다.

병조림과 통조림의 등장은 단순한 식품 보존 기술의 발전이 아니었다. 음식이 처음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됐다. 제철 음식, 지역 음식의 개념이 흔들렸다. 겨울에도 여름 채소를, 내륙에서도 해산물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군사적으로는 — 보급선의 개념 자체가 달라졌다. 이전까지 군대는 현지 약탈에 의존하거나 무거운 수레 행렬을 끌고 다녔다. 통조림은 병사 개인이 식량을 들고 이동하는 시대를 열었다. 나폴레옹의 빠른 기동 전술은 사실 병조림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페르는 미생물을 몰랐다. 살균이 왜 되는지 몰랐다. 하지만 결과는 알았다. 인류는 종종 원리를 모른 채 혁명을 만들어낸다. 통조림이 그랬다.

"아페르는 계절을 붙잡아두는 방법을 발명했다.
병 안에 봄과 여름과 가을을 살아있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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