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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이주민이 바꾼 식탁 EP.7] 한국인의 식탁 —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세계에 퍼뜨린 맛

by 소금꽃한스푼 2026. 6. 24.

역사와 식재료 이주민이 바꾼 식탁 EP.7
Episode 07

한국인의 식탁

이주민이 된 한국인들이 세계에 남긴 맛

한국 음식이 세계로 나간 것은 한류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살길을 찾아 배를 탄 한국인들이 먼저 갔다.

김치 불고기 고려인 당근 무침 부대찌개 코기 타코

이 시리즈의 마지막 이주민은 한국인이다. 이 에피소드는 다른 에피소드들과 다른 거리감에서 쓰인다. 유대인, 인도인, 중국인, 아르메니아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이탈리아인의 이야기를 타자의 시선으로 써 온 이 시리즈가, 마지막에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우리도 이주민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음식도, 세계 곳곳에 먼저 간 사람들의 손에서 변형되고 뿌리내렸다.

한국인의 디아스포라 - 출처 : https://www.reddit.com/r/korea/comments/1ii1nmi/korean_diaspora_countries_with_the_highest/
01
 

한국인 이주의 세 물결

한국인의 해외 이주는 크게 세 흐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이주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인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때부터 1905년 이민이 공식 중단될 때까지 약 7,900명이 하와이로 건너갔다. 같은 시기 러시아 연해주로도 한인들이 이주해 정착했다.

두 번째는 19세기 말~20세기 초 러시아 극동으로 이주한 한인들이다. 이들은 19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고려인(Koryŏ saram)'이라 불리는 이 집단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에 정착했다. 세 번째는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의 대규모 이민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재미 한인 사회가 형성됐고, LA 코리아타운이 만들어졌다.

고려인 - 출처 : https://geohistory.today/koryo-saram-friendship-ussr/

한인 디아스포라 — 음식이 뿌리내린 곳들

🇺🇸 미국 (LA 코리아타운)

재미 한인 약 250만 명. LA 코리아타운은 세계 최대 규모. 1965년 이민법 개정 이후 급성장.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이끈 베이스캠프.

🇰🇿 중앙아시아 (고려인)

소련 강제 이주 한인 후손 약 50만 명.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중심. 한국어는 잊었지만 독자적인 음식 문화('고려인 음식')를 형성.

🇯🇵 일본 (재일 한인)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및 이주 한인 후손 약 50만 명. 야키니쿠(焼肉) 문화의 실질적 창시자. 일본 속의 한국 음식 문화.

🇭🇦 하와이

1903년 최초 이민의 땅. 미트 전(肉煎)이라 불리는 하와이식 한국 음식이 현지화. 한인·일본인·필리핀인 음식 문화가 섞인 '플레이트 런치' 문화의 일부.

02
 

고려인의 당근 무침 — 김치를 만들 수 없을 때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이 만들어낸 음식 중 가장 독특한 것이 '고려인 당근(морковь по-корейски)'이다. 얇게 채 썬 당근을 마늘, 고수, 고춧가루, 식초, 참기름으로 무쳐 숙성시킨 음식으로, 지금은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 슈퍼마켓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대중적인 반찬이 됐다.

이 음식의 탄생 배경이 김치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들은 김치의 핵심 재료인 배추를 구할 수 없었다. 중앙아시아의 기후에서는 배추가 자라지 않았다. 대신 당근이 있었다. 고려인들은 김치를 담그는 방식 — 채소를 소금에 절여 양념에 무치는 방법 — 을 당근에 적용했다. 발효는 시키지 않지만, 양념의 구성은 한국 음식 그대로다. 나라를 잃고, 언어를 잃어가면서도, 음식의 방법론만은 지켜낸 결과물이다.

고려인 당근 - 출처 : https://www.gastronom.ru/recipe/56028/klassicheskaya-morkov-po-korejski

고려인 당근 무침 (морковь по-корейски)

1937년 강제 이주 이후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창안. 현재 구소련 전 지역에서 '코리안 당근'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대중 식품. 러시아·우크라이나 슈퍼마켓의 반찬 코너에서 쉽게 발견된다. 한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한국계 음식 중 하나다. 한국인이 만들었지만 한국에는 없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이 시리즈의 다른 음식들과 정확히 같은 구조다.

03
 

야키니쿠 — 일본의 '고기 구이'를 만든 사람들

일본에서 야키니쿠(焼肉)는 국민 음식이다. 숯불 위에 얇게 썬 고기를 직접 구워 먹는 방식. 그런데 야키니쿠의 기원을 따라가면 재일 한인이 나온다.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일본에 정착한 한인들이 한국식 불고기와 갈비 문화를 일본에 들여왔고, 이것이 전후 일본 경제 성장기에 대중화된 것이 야키니쿠다.

일본 야키니쿠 식당의 상당수가 재일 한인 소유였고, 그들이 한국식 양념과 구이 방식을 전파했다. 현재 일본에서 야키니쿠는 연간 수조 엔 규모의 외식 산업이 됐다. 일본인들은 이것을 일본 음식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뿌리는 한반도에서 온 이민자들의 식문화에 있다.

야키니쿠 - 출처 : https://www.deli-koma.com/dk/shop/?clid=1024115
한국인은 재일 외국인 중 근래까지 가장 많았다 -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Koreans_in_Japan#/media/File:Foreign_residents_in_Japan.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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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코리아타운 — 한국 음식이 세계로 나간 베이스캠프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으로 아시아계 이민 문호가 열리면서 한인들의 미국 이주가 급증했다. 이들은 LA 올림픽 대로 일대에 정착했고, 이곳이 코리아타운(K-Town)이 됐다. 코리아타운에는 한국 식당, 마트, 베이커리, 반찬 가게가 들어섰다. 고향의 맛이 그대로 재현됐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의 음식은 한국 음식 그대로가 아니었다.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 미국인의 입맛, 이민자들의 새로운 생활 방식이 더해졌다. LA 갈비는 미국에서 구하기 쉬운 쇠갈비를 한국식 양념으로 구운 음식이지만, 뼈를 자르는 방식 자체가 미국의 정육 방식이다. 비빔밥이 미국인들의 '건강식 열풍'과 만나며 새로운 인기를 얻었다. 코리아타운의 음식은 미국화된 한국 음식과 한국화된 미국 음식 사이 어딘가에 있다.

LA 코리아 타운 - 출처 : https://www.escape.com.au/destinations/north-america/usa/los-angeles/best-things-to-do-in-koreatown-los-angeles/image-gallery/d531e04d18e7bce547de4891ea53b170
한인타운 모습 - 출처 : https://www.independent.co.uk/travel/north-america/usa/california/los-angeles/koreatown-la-los-angeles-food-culture-guide-b28936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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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 타코 — 한국 음식이 미국 주류로 진입한 순간

서울에서 태어나 LA에서 자란 셰프 로이 최(Roy Choi). 2008년 11월, 그는 한국식 바비큐를 타코 속에 넣은 코기 BBQ 푸드 트럭을 LA 거리에 내놨다. 불고기와 갈비를 옥수수 토르티야에 올리고 김치 살사를 얹었다. 타코 한 개에 2달러. Newsweek는 이를 "최초의 바이럴 음식점"이라 불렀다. 트위터로 트럭 위치를 알리자 수천 명이 몰려들었다.

셰프 코리 리는 "코기 트럭이 한국 음식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가져다줬다. 그것은 혁명이었다"고 말했다. 코기 타코는 한국 음식 자체가 아니라 LA의 음식이었다. 그러나 로이 최 본인이 말하듯 "코기 타코는 한국 음식을 대표하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 뭔가가 역으로 한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코기 이후 한국 음식이 미국 주류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로이 최 - 출처 : https://www.foodandwine.com/author/roy-choi
고기 타코 - 출처 : https://kogibbq.com/menu/

코기 이후 — 한국 음식의 세계화 경로

이민자 경로 (底流)

코리아타운 식당 → 현지 주민 유입 → 지역 음식화. 느리지만 깊게 뿌리내리는 방식. LA·뉴욕·시드니·파리의 한식당들이 이 경로.

한류 경로 (表流)

K팝·드라마·영화 → 음식 호기심 촉발 → 김치·떡볶이·라면 수요 급증. 빠르지만 얕을 수 있는 방식. 이민자 커뮤니티가 그 수요를 받쳐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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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찌개 — 이주민의 음식이 역으로 탄생한 경우

이 시리즈 전체를 통해 우리는 이주민이 자기 나라 음식을 새 땅에 가져가 변형시키는 이야기를 해왔다. 부대찌개는 그 반대 방향의 사례다. 이주민이 온 것이 아니라, 외국 군대가 한국에 왔다. 미군이 가져온 식재료 — 스팸, 핫도그, 베이크드 빈, 아메리칸 치즈 — 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인들의 손에서 김치, 고추장과 결합했다. 전쟁 이후 한국인들이 미군 부대 근처에서 구한 잉여 군용 식품으로 만든 이 음식이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는 한국 음식인가, 미국 음식인가. 물어보면 다들 한국 음식이라고 말한다. 스팸과 핫도그가 들어가도 한국 음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먹는 방식, 담그는 방식, 함께 먹는 반찬이 한국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가 보여주듯, 음식의 기원보다 그것을 어떻게 먹느냐가 그 음식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부대찌개 - 출처 : https://takestwoeggs.com/budae-jjigae/

"고려인의 당근 무침은 한국에 없는 한국 음식이고, 부대찌개는 미국 재료로 만든 한국 음식이다. 이 두 음식이 한국인 이주의 역사를 가장 솔직하게 담고 있다."

우리도 이주민이었다

한국 음식이 세계로 퍼진 것은 한류 때문만이 아니다.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간 사람들, 1937년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려진 사람들, 전후 일본에 눌러앉은 사람들, 1965년 이후 LA에 정착한 사람들. 이들이 먼저 갔고, 새 땅에서 김치 대신 당근을 무치고, 불고기를 타코 속에 넣었다. 그것이 한국 음식을 세계에 심은 뿌리다.

이 시리즈를 시작할 때 던진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주민의 음식이란 무엇인가. 고향의 맛을 기억하려는 시도이자, 새 땅에서 살아남으려는 창의성이자,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저항이다. 그리고 한국 음식도, 그 모든 것이다.

지금 k-food 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이민자들의 한식이 있었다 - 출처 : http://was.snu.ac.kr/k-food-%EB%AF%B8%EA%B5%AD%EC%9D%98-%EC%8B%9D%ED%83%81%EC%9D%84-%EC%A0%90%EB%A0%B9%ED%95%98%EB%8B%A4/
수출이 늘고 있는 한국 음식들 - 출처 :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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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6 이탈리아인의 파스타

이민자의 냄비에서 세계의 접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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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8 총결산

이주민의 음식이 세계를 바꾼 방식

이주민이 바꾼 식탁 · 전체 에피소드

EP.1 유대인의 부엌 EP.2 인도인의 향신료 EP.3 중국인의 식탁 EP.4 아르메니아인의 식탁 EP.5 소울푸드 EP.6 이탈리아인의 파스타 EP.7 한국인의 식탁 EP.8 총결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