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인의 식탁
학살에서 살아남은 민족이 세계에 남긴 맛
아르메니아 본국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그러나 세계에 흩어진 아르메니아인은 700만 명이 넘는다. 이 역전된 숫자 뒤에는 1915년이 있다.
로스앤젤레스 글렌데일(Glendale)에 가면 아르메니아어 간판이 즐비하다. 베이커리에서는 라바시가 화덕에서 구워져 나오고, 정육점에서는 바스투르마가 걸려 있다. 인구의 3분의 1이 아르메니아계인 이 도시는 미국 안의 아르메니아다. 이 공동체가 생겨난 것은 이민의 자유로운 선택 때문이 아니었다. 1915년,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면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졌다. 음식은 그들이 쫓겨나면서 유일하게 손에 쥔 정체성이었다.

1915년 — 민족이 지워지고 음식만 남다
아르메니아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독교 국가의 후손이다. 기원후 301년 아르메니아 왕국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다. 이 오래된 민족이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19세기 말부터 조직적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5년, 오스만 정부는 아르메니아인을 아나톨리아에서 시리아 사막으로 강제 추방했다. 추방 과정에서의 학살, 죽음의 행군, 기아로 100만 명에서 15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Genocide)이다.
살아남은 아르메니아인들은 레바논, 시리아, 이란, 프랑스, 미국으로 흩어졌다. 이들이 새로운 땅에 정착하면서 가지고 간 것은 언어, 종교, 그리고 음식 문화였다. 나라는 사라졌지만 라바시를 굽는 법은 살아남았다. 돌마를 빚는 손이 이어졌다. 그것이 아르메니아 음식 문화가 지금 세계 곳곳에 살아 있는 이유다.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 — 음식이 뿌리내린 곳들
🇺🇸 미국 (캘리포니아)
LA 글렌데일 인구의 약 1/3이 아르메니아계.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 약 100만 명 이상. 아르메니아 음식점·베이커리·정육점 밀집.
🇫🇷 프랑스 (파리 근교)
1915년 학살 생존자 및 후손 약 50만 명. 유럽 최대 아르메니아 공동체. 마르세유·파리에 아르메니아 식품 문화 정착.
🇱🇧 레바논 (베이루트)
1915년 이후 시리아·레바논에 약 15만 명 정착. 레바논 인구의 약 4%. 베이루트 아르메니아 구역에 라바시·만티 문화 형성.
🇷🇺 러시아
해외 아르메니아인 중 최대 집단, 약 400만 명. 코카서스 인근 문화권으로 음식 전통 가장 강하게 유지.
라바시 — 유네스코가 인정한 생존의 빵
라바시(Lavash)는 아르메니아의 전통 납작빵이다. 밀가루, 물, 소금만으로 만든 반죽을 얇게 펴서 화덕(타도르, tonir) 벽에 붙여 굽는다. 완성된 라바시는 길이 90~110cm, 너비 40~50cm에 달하는 거대한 얇은 빵이다. 갓 구워내면 부드럽고 유연해 고기나 채소를 싸 먹기 좋고, 시간이 지나 굳으면 수개월 보관이 가능하다. 물에 적시면 다시 부드러워진다.
2014년 유네스코는 라바시를 아르메니아의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의 협력과 기억이 담긴 문화"라는 이유에서였다. 라바시는 전통적으로 여러 여성이 함께 모여 굽는다. 반죽을 펴는 사람, 화덕에 붙이는 사람, 빵을 걷어내는 사람이 나뉘어 리듬을 맞춘다. 그 협동의 풍경 자체가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라바시 (Lavash)
서기 11~12세기 문헌에 "아르메니아 빵"으로 직접 언급된다. 중세 페르시아 문헌에도 "너니 아르마니(아르메니아 빵)"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기원이 오래됐다. 현재 이란, 튀르키예, 레바논에서도 먹지만 유네스코는 아르메니아의 문화 표현으로 인정했다.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가 이주한 곳마다 라바시 베이커리가 생겨났고, 현재 LA, 파리, 베이루트의 아르메니아 구역에서는 전통 방식 그대로 화덕에서 구운 라바시를 살 수 있다.
돌마·만티·코로밧 — 아르메니아 식탁의 세 기둥
아르메니아 음식의 중심에는 세 가지가 있다. 포도잎이나 채소에 고기와 쌀을 넣어 찌는 돌마(Dolma), 다진 고기를 작은 배 모양 피에 넣고 구운 뒤 요거트를 얹는 만티(Manti), 그리고 꼬치에 꿴 고기를 화로 위에 구워내는 코로밧(Khorovats)이다.



돌마 (Dolma)
포도잎·양배추·피망에 고기·쌀·허브를 채워 찌는 요리. 터키, 그리스, 레반트 지역에도 공유되는 중동 코카서스의 공통 음식 문화. 아르메니아 디아스포라와 함께 세계로 퍼졌다.
만티 (Manti)
다진 양고기·소고기를 작은 배 모양 피에 넣고 오븐에 구운 뒤 마늘 요거트 소스를 얹는다. 서아르메니아 요리로 특히 레바논·시리아·미국 아르메니아 공동체에서 강하게 전승됐다.
코로밧 (Khorovats)
아르메니아식 바비큐. 양고기·돼지고기·닭고기를 꼬치에 꿰어 숯불에 굽는다. 아르메니아에서는 단순한 요리가 아닌 가족·공동체의 축제 의식. 라바시에 싸서 먹는 것이 전통.
바스투르마 (Basturma)
소고기를 압착·건조·향신료로 숙성시킨 아르메니아식 육포. 터키 파스트르마의 형제 식품.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이 중동·미국에 전파했고, 오늘날 레바논·이집트 식문화의 일부가 됐다.
이 음식들의 특징은 모두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음식'이라는 점이다. 라바시를 굽는 공동 작업, 돌마를 수십 개씩 함께 빚는 손길, 코로밧을 함께 굽는 화로 앞의 풍경. 아르메니아 음식은 공동체를 전제로 만들어졌다. 흩어진 디아스포라가 새로운 땅에서도 이 음식들을 함께 만들고 나눠 먹으면서 공동체를 유지했다.

레바논 — 아르메니아 음식이 중동에 뿌리내린 곳
1915년 학살을 피해 레바논과 시리아로 건너간 아르메니아인들은 베이루트에 독자적인 구역을 형성했다. 레바논 인구의 약 4%가 아르메니아계인 오늘날, 베이루트의 아르메니아 구역 부르즈 함무드(Bourj Hammoud)는 라바시 베이커리, 아르메니아식 정육점, 바스투르마 가게들이 밀집한 곳이 됐다.
아르메니아 음식이 레바논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아르메니아의 만티가 레바논 식문화에 흡수됐다. 라바시는 레바논의 일상 식품이 됐다. 바스투르마는 레바논, 이집트, 시리아의 식재료 목록에 올라갔다. 이민자들이 가져간 음식이 현지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1975년부터 시작된 레바논 내전으로 아르메니아계를 포함한 레바논인들이 다시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아르메니아 음식은 한 번 더 이동했다.

음식이 언어를 대신하다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 언어는 세대가 지나면 흐릿해진다. 아르메니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2세, 3세는 줄어든다. 특히 서아르메니아 방언은 현재 절멸 위기 언어로 분류된다. 그러나 음식은 언어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라바시를 굽는 법, 만티를 빚는 손 모양, 코로밧을 굽는 숯불의 냄새. 이것들은 언어 없이도 전달된다.
LA 글렌데일의 아르메니아 3세 청년이 영어로 말하면서도 할머니에게 배운 만티 레시피를 간직하고 있는 것, 파리 아르메니아 공동체의 후손들이 아르메니아어는 몰라도 라바시 베이커리를 찾는 것 — 이것이 음식이 정체성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언어는 잊어도 어머니의 돌마 맛은 잊지 못한다. 아르메니아 음식은 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도 민족을 붙들고 있다."
누구의 음식인가 — 공유된 음식, 경쟁하는 기억
아르메니아 음식 이야기에는 복잡한 층위가 있다. 돌마, 라바시, 바스투르마는 아르메니아만의 음식이 아니다. 터키, 그리스, 이란, 레바논, 아제르바이잔 모두 비슷한 음식을 자국 음식이라 주장한다. 유네스코가 라바시를 아르메니아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했을 때 아제르바이잔, 이란, 키르기스스탄이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의 기원 논쟁은 그 음식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과 연결돼 있는지를 방증한다.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아나톨리아와 코카서스에서 수천 년간 여러 민족이 함께 먹고, 나누고, 변형한 음식들. 아르메니아인 학살이 없었다면 이 음식들은 그냥 이 지역의 공유된 식문화로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 대학살이 아르메니아 음식을 '민족의 정체성'으로 만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음식을 붙들었고, 그 음식이 이제 생존의 상징이 됐다.

지워지지 않는 것들
1915년 오스만 제국은 아르메니아인을 지우려 했다. 국가도, 언어도, 사람도 사라지게 하려 했다. 그러나 화덕에서 라바시를 굽는 법은 지워지지 않았다. 돌마를 빚는 손은 이어졌다. 만티를 요거트에 적시는 방식은 레바논에서, 파리에서, 글렌데일에서 살아남았다.
음식은 학살이 지우지 못한 것이었다. 이주민의 식탁은 언제나 그런 것들로 차려진다. 나라는 없어도, 언어는 희미해도, 기억은 입안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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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 바꾼 식탁 · 전체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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