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크리스마스, 총성이 멈췄다.
영국군과 독일군은 참호 사이에서 초콜릿을 나눠 먹었다."
1914년 여름, 유럽이 불탔다. 4년간 이어진 참호전. 벨기에의 진흙탕 속에서 수백만 명이 서로를 향해 총을 쏘았다. 10킬로미터를 전진하는 데 양쪽 합쳐 수십만 명이 쓰러졌다. 전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병사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참호 속에서 초콜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었다. 칼로리였고, 카페인이었고, 위안이었고, 때로는 화폐였다. 적군과의 교환 수단이기도 했다. 1차대전은 초콜릿을 왕족의 사치품에서 모든 병사의 전투식량으로 바꿨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참전용사들이 집으로 돌아가며 초콜릿 바 시장을 폭발시켰다.

주도. 위안·칼로리·
화폐 역할
쇠고기. 영국군
주요 단백질원
추위와 공포를
달래는 진통제
고기 스튜. 병사들이
가장 싫어한 음식
참호전은 보급의 악몽이었다. 후방에서 끓인 음식은 전선에 도착할 즈음이면 식어 있었다. 겨울 벨기에의 참호는 얼어붙었고, 여름엔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는 취사병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호 가까이 접근해 뜨거운 음식을 병사들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것이 당시 현실이었다.
각 나라 병사들의 식탁은 달랐다. 조직력 차이, 식문화 차이, 보급망 차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영국군 병사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음식은 단연 머카너키(Maconochie)였다. 묽은 고기 수프에 감자와 당근이 둥둥 뜨는 통조림. 병사들은 "뚜껑을 열면 희망이 사라진다"고 했다. 반면 초콜릿은 배급품 중 유일하게 환호를 받았다.



초콜릿이 군용 배급품이 된 것은 1차대전이 처음이 아니었다. 남북전쟁(1861~1865) 때도 초콜릿은 의료품으로 분류됐고, 1780년 대륙군 군의관이 "부상병을 위해 초콜릿 1파운드를 긴급 요청한다"는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그러나 대량 배급이 시작된 것은 1차대전이었다.
영국군은 병사들의 사기 진작과 에너지 보충을 위해 초콜릿을 배급했다. 요크 시장은 고향 출신 병사들에게 로운트리(Rowntree's) 초콜릿 틴을 보냈고, 1915년에는 모든 영국 해외 주둔 병사에게 '조지 5세 초콜릿 틴'이 지급됐다.
당시 영국 최대 초콜릿 제조사 캐드버리(Cadbury), 프라이(Fry), 로운트리(Rowntree)는 모두 퀘이커교도가 운영하는 회사였습니다. 퀘이커교는 평화주의를 핵심 교리로 합니다. 전쟁 배급품을 생산하는 것은 교리에 어긋났지만, 국왕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초콜릿을 군에 납품하되, 전쟁 자체는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캐드버리는 전쟁 기간 동안 총 20,000개의 소포를 전선 병사와 부상병에게 발송했습니다.
1914년 첫 번째 크리스마스, 영국 병사들은 각자 10개들이 '식민지 선물 틴(Colonies Gift Tin)' 초콜릿을 받았다. 레스터셔 연대 병사 리처드 불리모어는 10개 중 단 1개만 먹었다. 나머지 9개는 103년 뒤인 2017년, 그의 훈장·편지·담배와 함께 경매에 나와 3,050파운드에 팔렸다.


1914년 12월 24일 밤. 서부 전선의 총성이 멈췄다. 독일군 참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켜졌다. 캐럴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국군이 참호 밖으로 나왔다. 독일군도 나왔다.
1914년 크리스마스 휴전 동안 연합군은 독일군과 초콜릿을 나눠 먹었고, 일부 구역에서는 독일군이 초콜릿 케이크를 연합군 참호로 보내오기도 했다. 담배, 버튼, 모자와 함께 초콜릿은 가장 빈번하게 교환된 물품이었다. 낮에는 총을 쏘고 밤에는 초콜릿을 나눴다.
영국 슈퍼마켓 세인즈베리는 100주년을 맞아 이 장면을 광고로 재현했다. 영국군과 독일군이 무인지대에서 만나 축구를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초콜릿을 건네는 내용이었다. 광고는 초콜릿을 단순한 식품이 아닌 평화와 선의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초콜릿은 영양가 있는 식품인 동시에 선물이었다. 두 개의 정체성이 동시에 작동했다.


1918년 전쟁이 끝났다. 수백만 명의 참전용사들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4년간 초콜릿을 먹으며 살았다. 단맛에 익숙해진 채로 귀환했다.
미군이 귀국하자 때마침 금주법(1920~1933)이 시작됐다. 술 대신 단 음식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초콜릿 바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20년대 내내 수천 개의 소규모 제과 회사들이 생겨나 시장을 선점하려 경쟁했다. 캐럴스턴 추, 밀키웨이, 베이비 루스 — 이 시대의 산물들이다.
독일 군용 초콜릿 쇼카콜라(Scho-Ka-Kola)는 종종 1차대전 산물로 소개되지만, 정확히는 1935년 베를린의 힐데브란트 회사가 개발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처음 소개됐습니다. 실제 전투식량으로 채택된 것은 2차대전 때입니다. 초콜릿+커피+콜라 열매를 배합한 이 제품은 전차 승무원·파일럿·U보트 승조원에게 각성제 겸 전투식량으로 지급됐습니다. 지금도 독일에서 판매 중입니다.


1차대전 이전, 초콜릿 바는 귀족과 상류층의 사치품이었다. 전쟁이 그것을 대중화했다. 수백만 명의 병사가 4년간 매일 초콜릿을 받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초콜릿 없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초콜릿 산업은 단순히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 소수의 고급 제과점이 공급하던 시장이 대량 생산·대량 소비 시장으로 전환됐다. 캐드버리는 코코아가 "남성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광고했고, 허쉬는 초콜릿 바를 "그 자체로 한 끼"라고 홍보했다. 전쟁이 만든 이미지였다.
오늘날 우리가 편의점에서 집어 드는 초콜릿 바 하나.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00년 전, 벨기에의 진흙탕 참호 속에서 떨고 있던 한 병사의 손에 닿는다.


"초콜릿은 영양가 있는 식품인 동시에 선물이었다.
총성 속에서도 인간은 단 것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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