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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 나폴레옹이 만들고, 전쟁이 퍼뜨리다
괴질과 통조림 — 음식이 상하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썩지 않는 것을 만들어야 했다.
1795년, 프랑스 공화국 정부는 현상금을 걸었다. 12,000프랑. 지금 가치로 수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조건은 하나였다. 군대가 먹을 음식을 오랫동안 부패하지 않게 보존하는 방법을 찾아오라.
이유가 있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늘 배고팠다. 전쟁터에서 죽는 병사보다 굶주림과 병으로 죽는 병사가 더 많았다. 군사적 패배의 절반은 식량 문제였다. 대포보다 부패한 고기가 더 많은 병사를 죽이던 시대였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나타났다. 과자 장수였다.

📜 역사와 문화
니콜라스 아페르 — 원리를 모른 채 발명한 사람
니콜라스 아페르(Nicolas Appert, 1749~1841)는 파리의 제과업자였다. 현상금 공모 소식을 듣고 그는 실험을 시작했다. 방법론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해봤다.
고기와 채소를 유리병에 넣었다. 마개를 코르크로 막았다. 그리고 끓는 물에 오랫동안 담가두었다. 꺼냈다. 식혔다. 열었다. 상하지 않았다. 다시 했다. 또 상하지 않았다.
아페르는 14년 동안 이 실험을 반복했다. 어떤 음식을 어떤 온도로 얼마나 가열해야 하는지, 마개를 어떻게 해야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지, 병이 깨지지 않으려면 어떤 조건이어야 하는지를 하나씩 알아갔다.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손이 기억한 지식이었다.
1810년, 아페르는 자신의 방법을 책으로 펴냈다. 제목은 모든 동물성·식물성 물질 보존의 기술(L'Art de conserver). 같은 해, 프랑스 정부는 그에게 12,000프랑을 수여했다. 조건이 있었다. 특허를 내지 말고 방법을 공개하라는 것이었다. 아페르는 그렇게 했다. 그는 현상금을 받았고, 세상은 그의 방법을 얻었다.
그런데 아페르는 자신이 왜 이것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공기를 차단하면 부패가 막힌다고 생각했다. 반만 맞았다. 완전히 맞은 것은 나중에 파스퇴르가 설명해줬다. 가열이 세균을 죽인다는 것을. 아페르가 그것을 안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이었다.


피터 듀랜드 — 유리병을 깡통으로 바꾼 사람
아페르의 방법은 유리병이었다. 훌륭했다. 그러나 전장에서는 문제가 있었다. 유리병은 무겁고, 깨졌다. 행군 중에 병사의 배낭 안에서 산산조각 나는 유리병은 음식이 아니라 위험이었다.
영국의 피터 듀랜드(Peter Durand)는 아페르의 책이 나온 같은 해인 1810년, 다른 방법에 특허를 냈다. 유리 대신 주석도금 철판(tin-plated iron)으로 만든 용기였다. 깨지지 않고, 가볍고, 쌓을 수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통조림(tin can)'의 기원이다.
영국 해군은 즉시 주목했다. 1813년 영국군은 시험 공급을 시작했다. 초기 통조림은 조악했다. 캔을 여는 도구도 없어서 병사들이 칼이나 총검으로 뜯었다. 한쪽에는 라벨도 없었다. 뚜껑 용접 기술이 미숙해 일부는 부패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방향은 맞았다.
결정적인 사건이 1845년에 일어났다.

프랭클린 탐험대의 통조림 — 구하려다 죽다
1845년, 영국 해군 제독 존 프랭클린(Sir John Franklin)은 북극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128명의 대원을 이끌고 출항했다. 선단은 HMS 에러버스, HMS 테러 두 척이었다. 식량으로 대규모 통조림이 실렸다. 3년치 분량이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수십 년에 걸친 수색 끝에 일부 유골과 유품이 발견됐다. 생존자들의 기록, 에스키모인들의 목격담, 발굴된 유골을 분석한 결과가 하나의 결론으로 모였다. 대원들은 굶주림과 추위뿐 아니라 납 중독으로 죽어갔다.
납의 출처는 통조림이었다.
당시 통조림은 납 납땜으로 봉해졌다. 캔 내부 솔기를 납으로 녹여 붙인 것이다. 제조 과정이 부실했을 경우 납이 식품 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프랭클린 대원들의 유골에서는 정상치보다 수십 배 높은 납 농도가 검출됐다. 음식을 보존하려다 음식이 독이 됐다.
이 비극은 통조림 기술 개선의 계기가 됐다. 납 납땜은 점차 퇴출됐다. 캔 오프너가 발명된 것도 이 시기다. 아페르가 제안하고 듀랜드가 구현한 기술이, 프랭클린의 희생을 발판 삼아 비로소 안전해지기 시작했다.



남북전쟁 — 통조림이 대중화된 전쟁
통조림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었다. 북군은 전쟁 기간 동안 통조림 육류, 생선, 채소, 과일을 대량으로 조달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남은 재고가 민간 시장에 풀렸다. 병사들은 집으로 돌아가 통조림 소비 습관을 함께 가지고 왔다.
1860년대 미국의 통조림 생산량은 연간 500만 캔 수준이었다. 1870년에는 3,000만 캔을 넘어섰다. 전쟁이 소비자를 만들었다.
이 시기 통조림 생산 과정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부패였다. 통조림이 제대로 가열되지 않으면 내부에 세균이 살아남았다. 봉해진 통조림 안에서 혐기성 세균이 자라났다. 그 중 가장 위험한 것이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이었다.
보툴리눔 독소.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연 독소 중 하나다. 이것이 통조림 병을 일으켰다. '통조림 중독'이라는 새로운 괴질이 생긴 것이다. 음식을 보존하려던 기술이 새로운 죽음을 만들었다.

🔬 영양과 과학
부패란 무엇인가 — 미생물의 시각에서
음식이 상한다는 것은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한다는 뜻이다. 세균, 곰팡이, 효모가 음식의 단백질과 지방을 먹으며 증식한다. 그 과정에서 악취가 나고, 색이 변하고, 독소가 생긴다.
부패를 막는 방법은 미생물의 증식 조건을 제거하는 것이다. 미생물은 수분, 산소, 적절한 온도, 영양분이 있어야 산다. 이 중 하나라도 차단하면 증식이 멈춘다.
| 보존 방법 | 제거하는 조건 | 원리 |
| 건조 (염장·건어물) | 수분 | 수분 활성도(Aw) 낮춤 |
| 냉장·냉동 | 온도 | 효소·세균 활성 억제 |
| 발효 (김치·된장) | 산도 | pH 낮춰 부패균 억제 |
| 통조림 | 산소 + 세균 사멸 | 가열 후 밀봉 |
| 방부제 | 세균 대사 억제 | 화학적 저해 |
아페르의 방법이 효과를 낸 이유는 두 가지였다. 끓는 물로 가열하면서 대부분의 세균이 사멸했다. 그리고 밀봉으로 외부 공기(산소)와 외부 세균의 재침입을 막았다. 아페르는 그 이유를 몰랐지만 결과를 냈다. 과학이 경험을 뒤늦게 설명한 사례였다.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 통조림의 그림자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은 혐기성 세균이다.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만 산다. 통조림 내부는 그것에게 이상적인 조건이었다.
이 세균의 진짜 위험은 세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생산하는 독소다.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는 신경근 접합부에서 아세틸콜린 방출을 차단한다. 근육에 신호가 전달되지 않는다. 전신 마비가 온다. 호흡근이 마비되면 사망한다.
독성은 극소량으로도 치명적이다. 경구 독성 기준으로 체중 kg당 1~2나노그램(ng) 수준이 치사량으로 추정된다. 복어독(테트로도톡신)보다 수백 배 강하다.
| 특성 | 내용 |
| 균 종류 | 혐기성 그람 양성 간균 |
| 포자 내열성 | 100°C 끓는 물에서 몇 시간 생존 가능 |
| 포자 사멸 조건 | 121°C 이상, 압력살균(오토클레이브) 15~20분 |
| 독소 열 불안정성 | 80°C 이상 10분 가열 시 독소 파괴 |
| 위험 환경 | 밀봉 + 낮은 산도(pH 4.6 이상) + 상온 보관 |
이것이 오늘날 통조림 제조에서 121°C 이상의 레토르트(retort) 공정이 의무화된 이유다. 끓는 물(100°C)로는 보툴리눔 포자를 죽일 수 없다. 압력솥 원리로 온도를 올려야 한다. 아페르가 끓는 물을 사용한 방법은 저산도 식품에서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기까지 또 수십 년이 더 걸렸다.

방부제 — 화학이 통조림을 보조하다
통조림과 함께, 화학 방부제의 역사도 전쟁과 함께 발전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가공식품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방부제 사용이 확대됐다. 대표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소금(NaCl): 인류 최초의 방부제. 수분 활성도를 낮춰 세균의 수분 흡수를 억제한다. 삼투압 원리다. 고농도 소금 환경에서 세균 세포는 수분을 빼앗겨 사멸한다.
아질산나트륨(NaNO₂): 햄·소시지·가공육에 쓰인다. 보툴리눔균 억제 효과가 있어 통조림 육류 제조에 활용됐다. 동시에 육류의 선홍색을 유지시킨다(미오글로빈과 반응). 고온에서 아민 성분과 반응해 니트로사민(발암 가능 물질)을 생성할 수 있어 사용량 기준이 엄격하다.
벤조산나트륨(Sodium benzoate): 산성 환경에서 항균 활성을 가진다. 탄산음료, 과일 소스에 쓰인다. 산성 조건에서 유리 벤조산이 되어 세균의 세포막 기능을 저해한다.
소르브산(Sorbic acid): 곰팡이와 효모 억제에 특히 효과적이다. 빵, 치즈, 음료에 사용된다.
현대 통조림은 방부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레토르트 공정으로 완전 멸균하기 때문에 화학 방부제가 불필요하다. 방부제는 오히려 완전 가열이 어려운 가공식품(빵, 소스류)에서 보조 수단으로 쓰인다.


🍽️ 대표 요리와 활용
🥩 코르네드 비프(Corned Beef) — 통조림의 아이콘
남북전쟁 북군 병사들이 먹던 것. 소고기를 굵은 소금(corn — 중세 영어로 알갱이라는 뜻)에 절인 뒤 통조림으로 가공한 것이 코르네드 비프다. 오늘날에도 아일랜드계 미국인 커뮤니티에서 성 패트릭의 날에 먹는 전통 음식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는 스팸이 통조림 육류의 대명사가 됐지만, 통조림 역사의 원형은 코르네드 비프에 가깝다. 지금도 동남아, 카리브해 지역에서 코르네드 비프는 일상적인 단백질 공급원이다.
🐟 통조림 참치 — 현대 부엌의 구조대원
20세기 초 태평양 어업과 통조림 기술이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 참치 통조림이다. 참치는 고단백·고지방 생선이지만 보존이 어려웠다. 가열 밀봉 통조림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참치 통조림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통조림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김치찌개, 샌드위치, 주먹밥에 빠지지 않는다. 성분 표시를 보면 대부분 방부제가 없다. 레토르트 가열이 보존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 레토르트 식품 — 우주에서 전장까지
현대의 레토르트 파우치(retort pouch)는 통조림의 진화형이다. 금속 캔 대신 여러 겹의 필름을 겹친 파우치에 식품을 넣고 121°C 이상으로 가압 가열한다. 무겁지 않고 불투명 차광 처리가 돼 있어 빛에 의한 산화도 막는다.
한국의 즉석밥, 즉석카레, 3분 짜장이 모두 레토르트 제품이다. 아페르가 유리병에 끓는 물을 부으며 시작한 실험이 이 봉지까지 이어졌다.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통조림 제품을 구입할 때 캔이 凹(음푹 들어간) 모양이 아닌지, 또는 반대로 불룩하게 부풀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세요. 부풀어 오른 캔은 내부에 가스를 생성하는 세균이 증식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절대 열어 드시지 마세요. 보툴리눔 독소는 냄새나 색의 변화 없이 존재할 수 있어 감각으로는 판별이 어렵습니다. 또한, 통조림을 개봉한 뒤 남은 내용물은 반드시 금속 캔에서 꺼내 다른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세요. 개봉된 캔의 절단면에서 금속 이온이 식품으로 녹아들 수 있습니다.


결말 — 보존이 무기가 됐을 때
아페르는 현상금을 받고 공장을 차렸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군대에 통조림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었다. 나폴레옹을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나폴레옹을 이긴 영국 해군에게도 쓰였다. 전쟁이 기술을 퍼뜨리는 방식이 늘 그랬듯이.
그러나 기술은 완전하지 않았다. 프랭클린 탐험대는 납에 죽었다. 남북전쟁의 병사들은 불완전한 밀봉에서 살아남은 보툴리눔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음식을 썩지 않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파스퇴르가 세균학을 완성하고 나서야, 왜 가열이 효과를 내는지 설명됐다. 설명이 되고 나서야, 어떤 온도로 얼마나 가열해야 하는지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었다. 경험이 먼저였고 이해가 나중이었다. 그 간격 사이에 사람들이 죽었다.
통조림은 전염병이 직접 만든 발명품이 아니다. 그러나 전쟁과 굶주림, 부패라는 이름의 괴질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 발명품이 또 다른 괴질을 만들었다. 인류는 그렇게 조금씩, 대가를 치르며, 음식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썩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인류는 먼저 왜 썩는지를 이해해야 했다. 그러나 이해보다 발명이 늘 먼저였다."
✅ Fact-check
| 항목 | 내용 | 출처 |
| 프랑스 현상금 공모 | 1795년, 12,000프랑 | Shephard, S. (2000). Pickled, Potted, and Canned: How the Art and Science of Food Preserving Changed the World |
| 니콜라스 아페르 저서 | 1810년, L'Art de conserver 출판 및 현상금 수상 | Appert, N. (1810). L'Art de conserver toutes les substances animales et végétales |
| 피터 듀랜드 특허 | 1810년, 주석도금 철판 용기 특허 | UK Patent No. 3372 (1810) |
| 프랭클린 탐험대 납 중독 | 유골 분석, 정상치 수십 배 납 검출 | Beattie, O. & Geiger, J. (1987). Frozen in Time |
| C. botulinum 포자 사멸 조건 | 121°C, 15~20분 (오토클레이브) | FDA Bad Bug Book, 2nd ed. |
| 보툴리눔 독소 경구 치사량 | 체중 kg당 1~2 ng 추정 | Arnon et al. (2001). JAMA |
| 미국 통조림 생산량 성장 | 1860년대 500만 캔 → 1870년 3,000만 캔 이상 | Cokelet, W.E. (1986). 미국 캔 제조업 역사 기록 |
| 아질산나트륨 항균 기전 | 보툴리눔 억제, 미오글로빈 반응으로 발색 | USDA FSIS Nitrite Policy |
| 레토르트 파우치 기원 | 미국 육군·NASA 공동 개발, 1960년대 | Military Specification MIL-PRF-440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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