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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 결핵균을 눈으로 본 날
결핵과 우유 — 흰 죽음이 밥상 위에 있었다
흰 것이 사람을 죽였다.
19세기 유럽에서 결핵은 '흰 역병(White Plague)'이라 불렸다. 환자들은 창백하게 여위었다. 뺨은 붉고 눈은 깊어졌다. 기침을 했다. 피를 뱉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라졌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이 죽음을 낭만적이라고까지 했다. 존 키츠가 죽었다. 쇼팽이 죽었다. 체호프가 죽었다. 그들이 그토록 창백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결핵 때문이라는 말이 돌았다.
낭만은 없었다. 19세기 전반기 유럽에서 결핵은 전체 사망 원인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밥상 위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먹이는 그 흰 것 속에.
우유였다.

📜 역사와 문화
결핵 — 가축과 함께 시작된 수천 년의 병
결핵은 인류가 소를 기르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다. 기원전 7000년경 인도 유골에서 결핵의 흔적이 발견됐다. 이집트 미라에서도 척추 결핵의 증거가 나왔다. 인류가 소를 길들이고, 소에서 우유를 짜기 시작한 것과 결핵의 확산이 시간적으로 겹친다.
결핵을 일으키는 세균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과 소 결핵균(Mycobacterium bovis)이 있다. 공기로 퍼지는 폐결핵은 사람 결핵균이 주범이다. 그런데 19세기 도시 아이들에게 만연했던 또 다른 형태의 결핵 — 림프절이 붓고 뼈가 무너지는 — 은 소 결핵균이 원인이었다. 감염된 소의 우유를 생으로 마시면서 소화기로 침입하는 경로였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이 문제는 폭발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렸다. 소는 도심 안 비좁은 우사에 갇혀 스트레스와 불결함 속에 살았다. 감염된 소의 우유가 아무런 가공 없이 바로 시장으로 나갔다. 런던, 파리, 베를린의 아이들은 매일 그 우유를 마셨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만 소 결핵균으로 인한 사망자가 연간 수만 명으로 추정됐고, 특히 어린이 결핵 사망의 상당 비율이 생우유와 연관됐다.

로베르트 코흐 — 보이지 않는 적을 보다
1882년 3월 24일, 베를린.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가 독일 생리학회 강연장에 섰다. 그는 그날 결핵균 Mycobacterium tuberculosis를 현미경으로 직접 관찰하고 배양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청중 중에는 당대 최고의 의사들이 있었다. 강연장이 조용해졌다.
수천 년 동안 원인을 몰랐던 병이 그날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냈다.
오늘날 3월 24일이 세계 결핵의 날인 이유가 여기 있다.
코흐가 결핵균을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핵균은 성장이 매우 느리고, 당시의 염색법으로는 현미경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코흐는 새로운 염색법을 직접 개발했다. 알칼리성 메틸렌블루로 처리하면 결핵균이 파랗게 물들어 다른 조직과 구분됐다. 기술이 발견을 가능하게 했다.
코흐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균을 순수 배양했다. 배양한 균을 건강한 동물에 주입하면 결핵이 발생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그 동물에서 다시 같은 균을 분리해냈다. 이것이 '코흐의 공준(Koch's Postulates)' — 특정 균이 특정 병의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논리적 절차다. 이후 모든 감염병 연구의 방법론적 기초가 됐다.
코흐는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같은 시대에 발효 연구로 세균학의 다른 기초를 놓은 파스퇴르(아래 발효의 식탁 9화 참조)는 노벨상이 제정되기 전인 1895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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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결핵균(M. bovis) — 우유 속의 두 번째 결핵
코흐가 사람 결핵균을 발견했다면, 소 결핵균 Mycobacterium bovis의 체계적 연구는 이후 이어졌다. 두 균은 유전적으로 99.95% 이상 동일하다. 소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소로 교차 감염도 가능하다.
소 결핵균은 폐가 아니라 소화기와 림프절을 주로 공격한다. 19세기 영국에서 '연주창(scrofula)'이라 불리던 경부 림프절 결핵 — 목 옆이 크게 부어오르는 병 — 의 상당수가 이것이었다. 오죽하면 영국 왕이 연주창 환자에게 손을 얹어주면 낫는다는 전통이 있었을 정도다. 왕의 손길(King's Touch)이라 불렸다. 에드워드 왕조까지 실제로 행해진 의식이었다. 원인을 모를 때 사람들은 기적에 기댄다.
어린이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다. 면역이 약한 아이들은 M. bovis에 감염되면 뼈와 관절, 척추로 균이 번졌다. 척추가 무너져 '곱추'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포트병(Pott's disease)이라 불리는 척추 결핵이다. 이집트 미라에서도 발견되는 그 오래된 병이 19세기 런던 빈민가 아이들을 계속 쓰러뜨리고 있었다.


살균 의무화 — 과학이 이겨도 싸움은 남았다
파스퇴르가 저온살균법을 발표한 것은 1865년이었다. 코흐가 결핵균을 발견한 것은 1882년이었다. 그렇다면 곧바로 우유 살균이 의무화됐을까.
그렇지 않았다.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우유 살균을 의무화한 것은 뉴욕 시였다. 1908년. 파스퇴르의 발견으로부터 43년, 코흐의 결핵균 발견으로부터 26년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항이 있었다. 낙농업자들은 살균 설비 비용을 댈 수 없다고 했다. 의학계 일부는 "생우유가 더 영양가 있다"는 주장을 고집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것이 더 건강하다"는 믿음이 있었다. 가열하면 비타민이 파괴된다는 우려도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은 계속 죽었다.
결정적인 전환점을 만든 것은 의사가 아니라 사회운동가였다. 미국의 네이선 스트라우스(Nathan Straus)는 뉴욕에서 저가 살균 우유 배급소를 직접 운영했다. 1893년부터 1920년까지 그가 운영한 배급소에서 수백만 컵의 살균 우유가 빈곤층 아이들에게 배급됐다. 살균 우유를 받은 아이들의 사망률이 극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수치로 드러났다. 과학이 주장한 것을 현장이 증명한 것이다.
영국은 1922년 우유법을 통해 살균 우유 판매를 공식 허가했다. 그러나 생우유 판매를 금지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잉글랜드·웨일스에서 생우유를 법적으로 구입할 수 있다. 한국은 생우유 직접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 영양과 과학
Mycobacterium bovis의 특성과 열 저항성
M. bovis는 결핵균 복합체(Mycobacterium tuberculosis complex)에 속하는 그람 양성 간균이다. 세포벽에 미콜산(mycolic acid)이라는 독특한 지질 성분이 두껍게 쌓여있어 일반 세균보다 내성이 강하고, 항생제 침투도 어렵다. 이 특성 때문에 결핵 치료에는 일반 항생제가 아니라 장기간의 복합 요법이 필요하다.
열에 대한 저항성은 일반 세균보다 강한 편이지만, 다음 처리로 완전히 사멸한다.
| 처리 방법 | 조건 | 결과 |
| 저온장시간살균 (LTLT) | 63°C, 30분 | M. bovis 사멸 |
| 고온단시간살균 (HTST) | 72°C, 15초 | M. bovis 사멸 |
| 초고온살균 (UHT) | 135°C 이상, 2~5초 | 완전 멸균 |
| 생우유(미처리) | — | 감염 위험 존재 |
현재 한국 시판 우유 대부분은 HTST 또는 UHT 방식으로 처리된다.
저온살균이 영양소에 미치는 영향
살균 반대론의 핵심 주장은 "가열하면 영양소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실제 영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단백질: 거의 변화 없음. HTST 조건에서 단백질 변성은 미미하다.
- 지방: 변화 없음.
- 칼슘, 인 등 무기질: 살균의 영향 없음.
- 비타민 B1(티아민), B12: 소량 감소(10~20% 수준).
- 비타민 C: 생우유에 소량 존재하나 우유는 원래 비타민 C의 주요 급원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저온살균은 영양학적으로 유의미한 손실 없이 M. bovis, 살모넬라, 리스테리아 등 주요 병원균을 사멸시킨다. 트레이드오프는 압도적으로 살균 쪽에 유리하다.
코흐의 공준(Koch's Postulates) — 감염병 과학의 기초
코흐가 결핵균을 증명한 방식은 이후 모든 감염병 연구의 표준이 됐다. 논리는 네 단계다. 첫째, 특정 병에 걸린 모든 환자에서 같은 균이 발견된다. 둘째, 그 균을 순수 배양한다. 셋째, 배양한 균을 건강한 동물에 주입하면 같은 병이 발생한다. 넷째, 병에 걸린 동물에서 다시 같은 균을 분리한다. 이 네 단계를 모두 통과하면 그 균이 그 병의 원인임이 증명된다.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포함해 현대의 모든 신종 감염병 원인 규명도 이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 대표 요리와 활용
🥛 리코타(Ricotta) — 살균 우유가 만드는 신선 치즈 이름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다시 익힌(re-cooked)'이라는 뜻이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whey)을 다시 가열해 만드는 데서 유래했다. 현대 리코타는 살균 우유를 80°C 이상으로 가열한 뒤 레몬즙이나 식초로 산을 가해 응고시켜 만든다. 가열과 산 처리가 이중으로 병원균을 제어한다. 라자냐, 칸놀리, 파스타 속 재료로 광범위하게 쓰인다.
🧀 에멘탈(Emmental) — 시간이 살균을 대신하는 치즈 스위스 전통 경질 치즈. 숙성 과정에서 산도와 소금, 긴 시간이 대부분의 병원균을 제어한다. 미국 FDA 기준으로 숙성 60일 이상 경질 치즈는 생우유 사용이 허가된다. 신선 치즈류는 반드시 살균 우유를 써야 하는 것과 대비된다. 파스퇴르가 열로 균을 죽이는 방법을 찾았다면, 치즈 장인들은 수천 년 전부터 산도와 시간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 미음과 죽 — 결핵 요양식의 한국식 답 19세기 서양 요양원에서 결핵 환자에게 우유와 달걀, 부드러운 음식을 처방했다면, 한국의 결핵 환자들에게 처방된 것은 쌀미음이었다. 이른바 '보양식'의 원형이다. 소화 부담이 적고 수분과 탄수화물을 동시에 공급한다. 결핵은 극심한 소모성 질환이라 체중 감소와 영양 결핍이 빠르게 진행된다. 고칼로리·고단백 식사가 치료 보조의 핵심이다. 지금도 결핵 치료 중 영양 상태 관리가 치료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임상적으로 확인되어 있다.
🍼 조제분유 — 살균의 연장 19세기 말 산업화된 도시에서 모유 수유가 어려운 어머니들이 생우유를 아이에게 먹이면서 결핵과 각종 감염이 급증했다. 살균 기술과 분유 기술의 발전이 맞물려 현대 조제분유가 탄생했다. 오늘날 조제분유는 UHT 기준을 따른다. 코흐와 파스퇴르가 19세기에 닦아놓은 위생 과학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마트에서 사는 우유는 이미 살균된 것입니다. 생우유를 따로 구해 마실 경우에는 반드시 끓여 드세요. 특히 영유아, 임산부, 면역 저하자에게는 생우유와 생우유로 만든 비숙성 치즈를 피하는 것이 국제 식품 안전 권고 사항입니다. 코흐가 1882년에 발견한 균을, 냉장고와 마트가 이미 당신을 위해 매일 처리하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흰 것을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것, 150년 전에는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 Fact-check
| 항목 | 내용 | 출처 |
| 코흐 결핵균 발표 | 1882년 3월 24일, 베를린 생리학회 | Koch, R. (1882). Berliner Klinische Wochenschrift |
| 세계 결핵의 날 | 3월 24일 | WHO 공식 지정 |
| 코흐 노벨 생리의학상 | 1905년 수상 | Nobel Foundation |
| M. bovis HTST 사멸 조건 | 72°C, 15초 | FDA Pasteurized Milk Ordinance (PMO) |
| 뉴욕시 우유 살균 의무화 | 1908년, 세계 최초 | NYC Dept. of Health records |
| 네이선 스트라우스 배급소 운영 | 1893~1920년, 뉴욕 | Straus, L. (1917). Disease in Milk |
| 영국 우유법 | 1922년 살균 우유 판매 허가 | UK Milk (Special Designations) Act |
| M. tuberculosis complex 유전적 동일성 | M. bovis와 99.95% 이상 일치 | Brosch et al. (2002). PN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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