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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전염병과 식재료 EP.3] 콜레라와 물의 역사 — 차·맥주·끓인 물이 전염병을 이긴 이유

by 소금꽃한스푼 2026. 5. 3.

2026.05.01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1)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1)

🦠 1화 냄새가 병을 막는다고 믿었을 때 — 흑사병과 향신료냄새가 병을 만든다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1347년 10월, 시칠리아 메시나 항구에 제노바 무역선 열두 척이 닻을 내렸다. 선원 대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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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2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2)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2)

🦠 2화 — 레몬 하나가 제국의 항로를 바꿨다괴혈병의 진실과 비타민 C배가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사람이 죽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잇몸이었다. 붓고 물러지더니 피가 스몄다. 다음은 치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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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 깨끗한 물을 찾는 인류의 역사

콜레라와 물 — 차, 맥주, 끓인 물


물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기까지 수천 년이 걸렸다.

1854년 여름, 런던 소호 브로드 스트리트에서 열흘 만에 500명이 죽었다. 골목 한쪽에 펌프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펌프에서 물을 길어 마셨다. 의사 존 스노우(John Snow)는 사망자 지도를 그렸다. 죽은 사람들의 집이 모두 그 펌프를 중심으로 모여있었다. 그는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펌프 손잡이를 제거했다.

사망이 멈췄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존 스노는 왜 물이 병을 일으키는지 알지 못했다. 세균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대였다. 그는 단지 관찰했을 뿐이다. 펌프와 죽음 사이의 연결. 보이지 않는 원인, 보이는 결과.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펌프 물을 마시지 않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장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맥주를 마셨다. 인근 수녀원 수녀들은 물 대신 차를 끓여 마셨다. 죽지 않았다.

끓인 물이 사람을 살렸다. 이유도 모른 채로.

https://todayinhistory.blog/2018/08/28/august-28-1854-broad-street-well/
https://lookup.london/john-snow-water-pump/


📜 역사와 문화

콜레라 — 19세기를 휩쓴 물의 역병

콜레라는 인도 갠지스 강 삼각주에서 오랫동안 풍토병으로 존재해왔다. 19세기 이전까지는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바꾼 것은 영국의 인도 지배였다. 군대가 이동했다. 무역선이 움직였다. 수백만 명이 오염된 물을 매개로 연결됐다.

1817년, 1차 콜레라 대유행이 인도에서 시작돼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동부까지 퍼졌다. 이후 1923년까지 6차례 대유행이 유럽과 아메리카를 포함한 전 세계를 강타했다. 1차 유행 시기 영국 인도군에서만 수만 명이 사망했다. 1831년 유럽에 처음 상륙한 콜레라는 1832년 단 한 해에 파리에서만 18,000명을 죽였다.

콜레라의 증상은 참혹했다. 감염 후 수 시간 만에 격렬한 설사와 구토가 시작됐다. 탈수가 빠르게 진행됐다. 피부가 파랗게 변하고(청색증), 눈이 함몰됐다. 심한 경우 증상 시작 후 12시간 이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었다. '파란 죽음(Blue Death)'이라 불린 이유였다.

당시 유럽의 도시는 그야말로 콜레라를 위해 설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1800년대 런던의 인구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수 처리 체계가 없었다. 분뇨는 거리와 템스강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식수도 같은 템스강에서 끌어올렸다. 같은 강에서 배설하고, 같은 강에서 마셨다.

https://continentalhospitals.com/diseases/cholera/

존 스노우와 역학(疫學)의 탄생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의사였다. 마취의학의 선구자이기도 했지만, 그를 역사에 남긴 것은 1854년 소호의 콜레라 조사였다.

당시 주류 의학계는 여전히 미아즈마 이론을 믿었다. 콜레라는 나쁜 공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존 스노우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환자들을 일일이 방문해 어디서 물을 마셨는지 물었다. 데이터를 모았다. 지도를 그렸다.

브로드 스트리트 펌프에서 가장 멀리 사는 주민들 중에도 사망자가 있었다. 이유를 추적해보니 그들이 특별히 그 펌프 물을 좋아해서 멀리서도 가져다 마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대로 펌프 바로 옆에 있던 작업장 노동자들은 맥주를 마셔서 살았다. 인근 수녀원은 별도의 우물이 있었다. 사망자가 없었다.

존 스노우는 펌프 손잡이 제거를 교구 위원회에 요청했다. 처음에는 거부당했다. 그의 이론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손잡이가 제거됐고, 사망이 멈췄다.

그러나 의학계는 여전히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미아즈마 이론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존 스노우는 1858년, 자신의 이론이 공식 인정받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콜레라균 비브리오 콜레라(Vibrio cholerae)가 로베르트 코흐에 의해 확인된 것은 1883년이었다.

오늘날 런던 소호 브로드 스트리트(현재 브로드윅 스트리트)에는 기념 펌프가 세워져있다. 손잡이가 없는 펌프. 역학(疫學, epidemiology)의 탄생을 기념하는 것이다.

https://microbenotes.com/epidemiology-definition-components-scope-history/

맥주와 차 — 의도하지 않은 생존의 음료

존 스노우의 조사에서 살아남은 두 집단이 있었다. 브로드 스트리트 인근의 양조장 노동자들과 수녀원 수녀들.

양조장 노동자들은 양조 과정에서 끓인 물로 만든 맥주를 하루 종일 마셨다. 배급으로 받은 것이었다. 오염된 펌프 물을 마실 이유가 없었다. 맥주 제조 과정의 가열이 비브리오 콜레라를 사멸시켰다.

수녀원 수녀들은 하루에 여러 차례 차를 끓여 마셨다. 그들의 우물이 따로 있다는 점도 있었지만, 끓이는 행위 자체가 보호막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집단이 자신들이 왜 살아있는지 몰랐다는 점이다. 맥주를 마셔서 살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끓인 물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저 살아있었다.

이것이 의학 지식이 경험보다 수백 년 뒤처지는 방식이다. 살아남는 사람들은 있었다. 왜 살아남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https://www.londonmuseum.org.uk/collections/london-stories/john-snow-cholera-broad-street-pump/

차(茶) — 아시아가 유럽보다 덜 죽은 이유

19세기 콜레라 대유행에서 차를 마시는 문화권은 그렇지 않은 문화권보다 사망률이 낮았다는 역학적 관찰이 있다. 중국, 일본, 한국, 인도의 차 문화권에서는 물을 반드시 끓여서 마셨다. 이것이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습관이었다.

중국에서 차를 마시는 문화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수천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에 따르면 신농(神農)이 끓는 물에 나뭇잎이 떨어져 처음 마셨다고 한다. 어떤 기원이든, 중요한 것은 찻물을 끓인다는 행위가 관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중국인들은 콜레라균 이전부터, 균이 무엇인지 알기 수천 년 전부터, 물을 반드시 끓여 마셨다.

유럽인들이 콜레라를 두려워하며 물 끓이기를 배우던 19세기에,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이미 그것이 당연한 일상이었다.

조선 역시 끓인 물 문화가 있었다. 숭늉(누룽지 물)을 식후에 마시는 전통, 각종 탕·국 문화, 식혜·수정과 같은 달인 음료 전통이 그것이다. 오염된 생수를 직접 마시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https://discover.hubpages.com/food/History-of-tea-and-its-benefits

대역병이 만들어낸 도시 인프라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 사건 이후, 그리고 1858년 '대악취(The Great Stink)' 사건 이후 런던은 바뀌었다. 대악취는 여름 더위에 템스강이 썩으면서 악취가 너무 심해 의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할 지경이 된 사건이다. 의원들이 직접 악취를 맡고 나서야 하수도 건설에 예산을 승인했다.

토목 공학자 조지프 바잘것(Joseph Bazalgette)이 설계한 런던 하수도 시스템이 1865년부터 가동됐다. 오염된 하수를 식수원에서 분리하는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현대 도시 위생 인프라의 시작이었다.

콜레라가 만들어낸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수백만 명의 죽음이 정치인들을 움직였고, 정치인들이 도시를 바꿨다.

https://www.historic-uk.com/HistoryUK/HistoryofBritain/Londons-Great-Stink/


🔬 영양과 과학

비브리오 콜레라(Vibrio cholerae)의 특성

콜레라의 원인균 비브리오 콜레라는 쉼표 모양의 그람 음성 세균이다.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섭취되면, 소장에서 증식하며 콜레라 독소(cholera toxin, CT)를 분비한다.

콜레라 독소의 작용 메커니즘은 의학적으로 정교하다. 독소는 소장 상피세포의 cAMP(고리형 아데노신 일인산) 농도를 비정상적으로 높인다. 이것이 염소 이온의 과도한 분비를 촉진하고, 삼투압 차이로 인해 물이 소장 내로 쏟아진다. 하루 10~20리터에 달하는 수분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치료하지 않으면 탈수로 사망에 이른다.

비브리오 콜레라의 치명적 특성 중 하나는 열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다. 56°C에서 30분, 100°C에서는 즉시 사멸한다. 즉 물을 끓이기만 해도 완전히 제거된다. 현대의 경구 수액 치료(ORS, Oral Rehydration Therapy)가 개발되기 전까지 수분·전해질 보충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는데, 이 수액도 반드시 끓인 물로 만들어야 했다.

https://indiabioscience.org/news/2018/decoding-cholera-how-a-comma-shaped-bacterium-creates-an-epidemic

맥주의 항균성과 알코올

맥주의 콜레라 예방 효과는 두 가지에서 비롯된다. 첫째, 제조 과정에서 물을 끓인다. 맥아를 물에 침출하는 당화(mashing) 과정과 홉을 넣어 끓이는 자비(boiling) 단계에서 물이 충분히 가열된다. 비브리오 콜레라는 이 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둘째, 완성된 맥주에는 알코올과 홉의 항균 성분이 있다. 당시 유럽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낮았다(2~4%). 이 정도 알코올이 비브리오 콜레라를 직접 사멸시키지는 못하지만, 홉의 α-산(alpha acids)과 이소-α-산(iso-alpha acids)은 그람 양성 세균에 대한 항균 효과가 있다. 그람 음성균인 비브리오 콜레라에 대한 직접 효과는 제한적이지만, 끓인 물 효과 자체가 결정적이었다.

Mashing - https://www.wildabouthops.nz/mashing.html

차(茶)와 끓인 물의 이중 효과

차를 끓여 마시는 행위에는 두 가지 보호 효과가 있다.

첫째는 물을 끓인다는 것 자체다. 앞서 설명한 대로 비브리오 콜레라를 포함한 수인성 병원균은 끓이면 사멸한다.

둘째는 차 자체의 항균 성분이다. 녹차, 홍차, 백차 등 카멜리아 시넨시스(Camellia sinensis)로 만든 차에는 카테킨(catechin), 특히 EGCG(에피갈로카테킨 갈레이트)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EGCG는 비브리오 콜레라를 포함한 다양한 세균에 대한 항균 효과가 실험적으로 확인됐다. 세균의 세포막과 결합해 구조를 손상시키고, 독소 생성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료 콜레라 예방 메커니즘 비고
끓인 물 가열로 균 사멸 가장 직접적
차(녹차·홍차) 가열 + 카테킨 항균 이중 효과
맥주 양조 중 가열 + 홉 성분 알코올 직접 효과 미미
와인 산성(pH 낮음) + 알코올 부분적 억제
생수(오염원) 없음 직접 감염 경로

https://www.monaconatureencyclopedia.com/camellia-sinensis/?lang=en

경구 수액 요법(ORS) — 20세기 최대의 의학 발견 중 하나

콜레라 치료의 현대적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물 1리터에 소금 3.5g, 포도당(또는 설탕) 20g을 녹인 경구 수액(ORS)을 마시는 것이다.

1960~70년대 방글라데시에서 개발된 이 치료법은 콜레라 사망률을 50% 이상에서 1% 미만으로 낮췄다. 란셋(The Lancet) 지는 ORS를 20세기 가장 중요한 의학적 발견 중 하나로 평가한 바 있다. 특히 설탕과 소금을 함께 넣는 것이 핵심인데, 포도당이 있어야 나트륨 흡수가 세포 수준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설탕과 소금이 장의 수분 흡수 메커니즘을 활성화한다.

오늘날 ORS는 전 세계 약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치료제 중 하나다. 재료는 물, 소금, 설탕뿐이다.

ORS - https://www.innovativepharma.in/product/ors-oral-rehydration-salts-21-8-g/


🍽️ 대표 요리와 활용

🫖 차(茶) — 살아있는 자들의 음료

끓인 물이 수천 년 동안 인류를 살린 방식. 중국 당나라 시대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은 물의 품질과 끓이는 방법을 상세히 기록한 세계 최초의 차 전문서다. 8세기에 이미 '어떤 물을 어떻게 끓여야 하는가'를 논했다. 그 행위가 결과적으로 수인성 전염병을 막았다. 녹차를 우릴 때는 80~85°C, 홍차는 90~95°C가 적당하지만, 물을 끓이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끓인 후 식혀서 적온에 맞추는 방식이 카테킨 성분도 가장 잘 살린다.

🍺 에일(Ale) — 런던 노동자들의 생존 음료

영국의 전통 에일은 19세기까지 하루 노동자 배급의 일부였다. 물보다 에일이 안전했기 때문이다. 홉을 넣기 전 과거 에일(ale)과 홉을 넣은 비어(beer)의 구분도 있었지만, 가열 과정은 공통이었다. 오늘날 영국 리얼에일 운동(CAMRA)이 보존하려는 것은 이 오래된 양조 방식이다. 런던 소호 지역 브로드윅 스트리트 인근에는 존 스노의 이름을 딴 펍 'The John Snow'가 지금도 영업 중이다.

🍚 숭늉 — 조선의 끓인 물 문화

밥을 짓고 남은 솥 바닥의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인 숭늉은 조선 시대 식후 필수 음료였다. 소화를 돕는다는 전통적 믿음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끓인 물을 마시는 문화였다. 비타민 B군과 탄수화물이 일부 녹아있어 영양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현대에 구내식당이나 한식당에서도 식후 숭늉이나 보리차를 제공하는 문화가 남아있는 것은 이 전통의 흔적이다.

🍵 보리차와 옥수수차 — 한국의 일상 끓인 물

한국 가정에서 냉장고에 보리차나 옥수수차를 상시 보관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이 습관은 끓인 물을 마시던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 보리차(대맥차)는 볶은 보리를 물에 넣어 끓인다. 카페인이 없어 어린이와 노인도 마신다. 볶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소한 향이 특징이다. 옥수수차는 볶은 옥수수 수염 또는 알갱이를 사용한다. 이뇨 효과와 혈압 관련 효능이 민간에서 전해진다.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경구 수액(ORS)은 지금도 집에서 만들 수 있습니다. 끓여서 식힌 물 1리터에 설탕 6 티스푼, 소금 0.5 티스푼. 설사나 구토로 탈수가 심할 때 병원 가기 전에 마시는 응급 수액입니다. 단 포도당과 나트륨의 비율이 정확해야 장에서 제대로 흡수되므로 계량이 중요합니다. 단순한 물이나 이온음료로는 대체되지 않습니다. 콜레라를 막은 것도, 치료한 것도 결국 '올바르게 만든 물'이었습니다.

Ale - https://namu.wiki/w/%EC%97%90%EC%9D%BC
숭늉 - https://ko.wikipedia.org/wiki/%EC%88%AD%EB%8A%89


물이 도시를 만들었다

1854년 브로드 스트리트에서 펌프 손잡이가 제거된 지 170년이 지났다.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의 수도관, 하수도, 정수 시스템은 콜레라가 없었다면 이렇게 빠르게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죽음이 인프라를 요구했다. 런던이 먼저 하수도를 만들었고, 그 모델이 파리, 베를린, 뉴욕, 도쿄로 퍼졌다.

존 스노가 보여준 것은 데이터로 역병을 이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환자를 찾아가 물어보고, 지도를 그리고, 패턴을 보는 것. 그것이 현대 역학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차를 마시던 사람들,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 숭늉을 마시던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살아있었다. 경험이 과학보다 먼저 사람을 살렸다. 2화의 레몬처럼. 1화의 향신료처럼. 항상 그래왔다.

인류는 왜 살아남는지 알기 전에, 먼저 살아남았다.

https://livinglondonhistory.com/the-story-of-the-john-snow-pump-in-soho/


"끓인 물 한 그릇이 레몬 한 알과 같은 일을 했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살아남는 것."


📌 역사적 배경 확인

  • 1817년 1차 콜레라 대유행, 인도 발원 ✅
  • 1832년 파리 콜레라 유행, 18,000명 사망 ✅
  • 존 스노(John Snow, 1813~1858), 소호 브로드 스트리트 조사 1854년 ✅
  • 콜레라 원인균 비브리오 콜레라(Vibrio cholerae), 1883년 로베르트 코흐 확인 ✅
  • 비브리오 콜레라 열에 취약, 100°C 즉시 사멸 ✅
  • 브로드 스트리트 양조장 노동자·수녀원 수녀 생존 — 맥주·차 끓인 물 음용 ✅
  • 1858년 런던 대악취(The Great Stink) ✅
  • 조지프 바잘것(Joseph Bazalgette) 런던 하수도 설계, 1865년 가동 ✅
  • 경구 수액 요법(ORS), 1960~70년대 방글라데시 개발 ✅
  • ORS 콜레라 사망률 50%+ → 1% 미만으로 감소 ✅
  • 차(카멜리아 시넨시스)의 EGCG 항균 효과 — 비브리오 콜레라 억제 실험적 확인 ✅
  • 육우 『다경(茶經)』, 당나라 시대 ✅
  • '파란 죽음(Blue Death)' — 콜레라 청색증 증상에서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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