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5.03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3)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3)
2026.05.01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1)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1)🦠 1화 냄새가 병을 막는다고 믿었을 때 — 흑사병과 향신료냄새가 병
hanzoomworld.tistory.com
2026.05.04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4)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4)
2026.05.02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2)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2)2026.05.01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
hanzoomworld.tistory.com
🦠 5화 — 옥수수만 먹으면 왜 죽었나
펠라그라의 미스터리 — 옥수수, 니아신, 그리고 닉스타말
붉은 것이 나타나면 죽음이 왔다.
18세기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농민들은 그것을 알아챘다. 봄이 오면 먼저 피부가 변했다. 해가 닿는 부위부터였다. 목덜미, 손등, 발등.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거칠어졌다. 염증인가 싶었지만 가라앉지 않았다. 다음은 배였다. 설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정신이 무너졌다. 환자는 혼란스러워하다가, 멍해지다가, 사라졌다.
이탈리아 의사 프란체스코 프라폴리(Francesco Frapolli)가 1771년 이 병에 이름을 붙였다. Pelle agra. 이탈리아어로 '거친 피부'라는 뜻이었다. 펠라그라(Pellagra).
아무도 원인을 몰랐다. 감염병인가 했다. 나쁜 공기인가 했다. 독소인가 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 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왔다. 그리고 그들이 주로 먹는 것이 하나였다.
옥수수였다.

📜 역사와 문화
옥수수가 유럽에 온 날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것들 중에 옥수수가 있었다. 스페인어로 maíz. 아라와크어에서 온 말이었다. 이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로 퍼지는 데 채 200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옥수수는 강했다. 밀이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에서도 자랐다. 수확량이 많았다. 보관이 쉬웠다. 무엇보다 쌌다. 유럽의 지주들은 소작농들에게 임금 대신 옥수수를 주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노예무역 시대에 노예 배급식으로 옥수수가 선택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싸고, 오래가고, 배를 채웠다.
스페인 북부 아스투리아스 지방,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방, 나중에는 미국 남부의 가난한 백인과 흑인들이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다. 옥수수 가루로 만든 폴렌타, 콘그리츠, 호미니. 이것이 그들의 밥이었다.
그리고 병이 왔다.

4D의 병
펠라그라는 '4D'로 불렸다.
Dermatitis. Diarrhea. Dementia. Death.
피부염, 설사, 치매, 죽음. 네 단계가 순서대로 왔다. 피부가 먼저 무너지고, 소화기가 무너지고, 정신이 무너지고, 몸이 따라갔다.
18세기 스페인에서 처음 보고된 이후 19세기 내내 유럽 전역의 빈곤층에게 퍼졌다. 1900년대 초 미국 남부에서는 대유행이 됐다. 1906년부터 1940년 사이에 미국에서만 300만 명 이상이 펠라그라에 걸렸고, 약 10만 명이 사망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조지아, 앨라배마의 가난한 농촌 지역이 특히 심각했다. 정신병원 입원 환자의 상당수가 실은 펠라그라로 인한 치매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당시 의학계는 갈렸다. 감염병이라는 설이 강했다. 모기나 해충이 전파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옥수수에 피는 특정 곰팡이의 독소가 원인이 아닌가. 음식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오히려 소수였다.

조세프 골드버거 — 음식이 원인이라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사람
1914년 미국 공중보건국의 의사 조세프 골드버거(Joseph Goldberger, 1874~1929)가 파견됐다. 임무는 펠라그라의 원인을 찾는 것이었다.
골드버거는 현장에서 한 가지를 즉시 알아챘다. 환자는 병원의 가난한 수용자들이었다.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와 간호사는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감염병이라면 의료진도 걸려야 했다. 차이는 하나였다. 식사였다. 의료진은 다양한 음식을 먹었다. 환자들은 옥수수 위주의 식사를 했다.
골드버거는 실험을 설계했다. 교도소 자원자들에게 옥수수 위주의 식사를 먹였다. 6개월 안에 펠라그라 증상이 나타났다. 반대로 펠라그라 환자에게 다양한 식사를 제공하자 증상이 사라졌다.
증거는 분명했다. 하지만 의학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감염병이라는 고정관념이 너무 강했다. 골드버거는 더 나아갔다. 동료들과 함께 펠라그라 환자의 피부 조각, 혈액, 소변을 자신의 몸에 직접 주입했다. 아무도 걸리지 않았다. 음식으로만 전파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골드버거는 1929년 원인 물질을 완전히 규명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니아신(niacin, 비타민 B3)이 결핍이 펠라그라의 원인임이 확인된 것은 1937년, 생화학자 콘래드 엘베헴(Conrad Elvehjem)에 의해서였다.

닉스타말 — 아메리카 원주민이 수천 년 전에 알고 있었던 것
여기서 가장 큰 아이러니가 등장한다.
옥수수를 수천 년 동안 주식으로 먹어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펠라그라에 걸리지 않았다. 멕시코, 과테말라, 미국 남서부 원주민들은 옥수수만으로도 건강하게 살았다.
이유는 조리법이었다.
닉스타말(nixtamal).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옥수수를 알칼리 용액에 처리했다. 나무재를 물에 녹인 용액, 또는 석회수(수산화칼슘, 소석회 물)에 옥수수를 불리고 가열한 뒤 껍질을 씻어내는 과정이었다. 나우아틀어(아스텍 언어)로 nextli(석회)와 tamalli(옥수수 반죽)를 합친 말이 닉스타말이다.
이 처리를 한 옥수수로 만든 것이 오늘날 멕시코 타코의 토르티야, 타말, 엔칠라다의 기본 재료다. 미국 남부의 호미니(hominy)도 같은 원리다.
닉스타말 처리가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옥수수 껍질의 단단한 외피(페리카르프)를 제거해 소화를 돕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옥수수에 묶여있는 니아신을 유리시킨다.
옥수수에는 니아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있다. 다만 *나이아신틴(niacytin)*이라는 결합 형태로 존재해서 인간의 소화 효소로 흡수할 수 없다. 알칼리 처리를 하면 이 결합이 끊어진다. 유리 니아신이 된다. 흡수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그 원리를 몰랐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수천 년의 경험이 닉스타말을 만들었고, 닉스타말이 그들을 살렸다.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은 옥수수만 가져갔다. 조리법은 가져가지 않았다.
그것이 300년에 걸친 펠라그라의 씨앗이었다.


🔬 영양과 과학
니아신(Niacin, 비타민 B3)의 역할
니아신은 수용성 B군 비타민이다. 화학적으로는 니코틴산(nicotinic acid)과 니코틴아미드(nicotinamide) 두 형태가 있으며, 체내에서 상호 전환된다.
세포 수준에서 니아신의 기능은 핵심적이다. NAD(니코틴아미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와 NADP의 전구체로, 에너지 대사의 중심에 있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ATP로 전환되는 모든 과정에서 NAD/NADH 쌍이 전자 전달을 담당한다. 니아신이 부족하면 세포의 에너지 생산 자체가 멈춘다.
피부, 소화관, 신경계가 특히 빠르게 타격을 받는다. 세포 분열이 활발한 조직은 에너지 수요가 높아 결핍의 영향이 먼저 나타나기 때문이다.
| 증상 단계 | 기전 |
| 피부염 (Dermatitis) | 피부 세포의 DNA 수리 기능 손상, 자외선에 취약해짐 |
| 설사 (Diarrhea) | 장 점막 세포 손상, 흡수 기능 저하 |
| 치매 (Dementia) | 신경세포 에너지 결핍, 신경전달물질 합성 저하 |

트립토판 — 니아신의 숨겨진 보충 경로
인체는 필수 아미노산 트립토판(tryptophan)에서 니아신을 합성할 수 있다. 트립토판 60mg이 니아신 1mg으로 전환된다(효율이 낮다). 고기, 달걀, 유제품이 트립토판의 주요 급원이다.
펠라그라가 옥수수만 먹는 가난한 층에 집중된 이유가 여기 있다. 옥수수 자체의 니아신은 흡수 불가. 단백질 공급원(고기, 달걀, 콩류)도 없어 트립토판 경로마저 막혔다. 이중으로 차단된 것이다.
반면 같은 시대 멕시코 농민들이 옥수수와 함께 콩(프리홀레스)을 항상 함께 먹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콩에는 트립토판이 풍부하다. 닉스타말 + 콩의 조합은 니아신 이중 공급 체계였다.

닉스타말의 알칼리 화학
석회수 처리의 화학적 핵심은 수산화칼슘(Ca(OH)₂)이다.
옥수수의 나이아신틴은 니아신이 다당류 및 펩타이드에 공유결합으로 묶인 형태다. pH가 높은(알칼리성) 환경에서 이 결합의 에스테르 결합과 아미드 결합이 가수분해된다. 유리 니코틴산이 방출된다.
동시에 알칼리 처리는 옥수수 세포벽의 헤미셀룰로오스를 부분 분해해 소화율을 높이고, 칼슘이 옥수수에 침투해 칼슘 함량도 증가한다. 닉스타말 처리 옥수수는 미처리 옥수수보다 칼슘 함량이 수 배 높다.
| 처리 방식 | 나이아신 흡수율 | 비고 |
| 미처리 옥수수 | ~10% (나이아신틴 형태) | 대부분 미흡수 |
| 닉스타말 처리 (석회수) | ~90% 이상 (유리 니아신) | 완전 흡수 가능 |
| 닉스타말 처리 (나무재 용액) | 유사한 알칼리 효과 | 전통 방식 |
🍽️ 대표 요리와 활용
🫓 토르티야 — 닉스타말이 만든 멕시코의 밥
닉스타말 처리된 옥수수를 건조·분쇄한 마사(masa) 반죽을 얇게 펴서 코말(comal) 위에 굽는다. 토르티야다. 맛은 미처리 옥수수 가루와 다르다. 고소하고, 약간 광물 냄새가 나고, 씹을수록 풍미가 깊다. 알칼리 처리로 생긴 특유의 향이다.
오늘날 시판 마사 하리나(masa harina, 닉스타말 처리 옥수수 가루)를 사면 집에서도 만들 수 있다. 물과 1:1.2~1.5 비율로 섞어 반죽, 8~10분 휴지, 볼 크기로 분할, 코말 또는 달군 팬에 1~2분씩 굽는다.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우리나라에서 파는 일반 옥수수 가루와 마사 하리나(masa harina)는 다릅니다. 마사 하리나가 닉스타말 처리된 것입니다. 타코나 토르티야를 만들 때 반드시 마사 하리나를 써야 제대로 된 맛이 나고, 니아신도 제대로 흡수됩니다. 요즘은 대형마트 수입식품 코너나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 폴렌타 — 처리 없이 먹다 죽어간 유럽의 옥수수죽
닉스타말 처리를 모르던 이탈리아 북부에서는 옥수수 가루를 그냥 물에 끓였다. 폴렌타. 18세기부터 빈농의 주식이 됐다. 부드럽고 배를 채웠다. 그리고 펠라그라를 불렀다. 오늘날 폴렌타는 식당의 고급 사이드 디시가 됐지만, 그 역사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 호미니와 그리츠 — 미국 남부의 닉스타말
호미니(hominy)는 미국 원주민의 닉스타말 처리 옥수수가 유럽 정착민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석회수나 잿물(lye)에 처리한 것이라 모양이 크고 쫄깃하다. 이를 건조 분쇄한 것이 그리츠(grits)다. 미국 남부 아침식사의 상징.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남부 주에서 가난한 층이 폴렌타처럼 처리하지 않은 옥수수 가루를 먹다 펠라그라로 죽어갔고, 원주민 전통의 호미니를 제대로 먹은 이들은 살았다.



결말 — 지식은 국경을 넘지 못했다
1492년 옥수수가 대서양을 건넜다. 그러나 닉스타말은 건너지 못했다. 300년 동안.
골드버거가 펠라그라의 원인이 식단이라는 것을 증명한 뒤에도 미국 정부는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1930년대 뉴딜 시대가 되어서야 남부 빈곤층의 식단 개선 프로그램이 실시됐다. 이후 1940년대 미국에서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에 니아신을 강제 첨가(강화)하는 정책이 도입됐다. 펠라그라가 급격히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에서 파는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에도 니아신이 강화되어 있다. 마트에서 산 옥수수 가루 봉지 뒷면을 보면 '나이아신'이 영양 성분에 표기되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레몬 한 알이 괴혈병을 막았듯, 석회수 한 솥이 수천 년 동안 대륙을 살렸다. 알고 한 것도, 모르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해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조리법을 버린 이들이 죽었다.
식재료를 가져올 때, 그것을 먹는 방식도 함께 가져왔어야 했다.
"옥수수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었다. 방법을 모른 채 먹은 것이 사람을 죽였다."
✅ Fact-check
| 항목 | 내용 | 출처 |
| 펠라그라 명명 | 1771년 프란체스코 프라폴리, 이탈리아어 '거친 피부' | Frapolli, F. (1771). Animadversiones in morbum vulgo Pelagram |
| 미국 펠라그라 유행 | 1906~1940년, 300만 명 이상 감염, 약 10만 명 사망 | CDC MMWR 역사 기록 |
| 조세프 골드버거 | 1874~1929, 미국 공중보건국, 식단-펠라그라 연관 증명 | Goldberger, J. (1914~1926). 공중보건국 보고서 |
| 니아신(비타민 B3) 결핍 규명 | 1937년, 콘래드 엘베헴, 위스콘신 대학 | Elvehjem et al. (1937). 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
| 닉스타말 기원 | 기원전 1500년경, 중앙아메리카 | Staller, J. & Carrasco, M. (eds.), Pre-Columbian Foodways (2010) |
| 나이아신틴 → 유리 니아신 전환 | 알칼리 처리(pH 상승)로 결합 가수분해 | Kodicek, E. & Wilson, P. W. (1959). Biochemical Journal |
| 트립토판 → 니아신 전환율 | 60:1 (트립토판 60mg → 니아신 1mg) | Institute of Medicine (1998). Dietary Reference Intakes |
| 미국 니아신 강화 정책 | 1940년대 시작, 밀가루·옥수수 가루 강제 강화 | FDA Enrichment Standards |
2026.05.06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6)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6)
2026.05.04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4)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4)2026.05.02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
hanzoomworld.tistory.com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염병과 식재료 EP.7] 스페인 독감과 식량 배급 — 전쟁과 전염병이 동시에 왔을 때 (1) | 2026.05.06 |
|---|---|
| [전염병과 식재료 EP.6] 통조림의 발명 — 나폴레옹 전쟁이 식품 보존 기술을 만든 역사 (1) | 2026.05.06 |
| [전염병과 식재료 EP.4] 결핵과 우유 — 파스퇴르 저온살균법이 발명된 역사 (0) | 2026.05.04 |
| [전염병과 식재료 EP.3] 콜레라와 물의 역사 — 차·맥주·끓인 물이 전염병을 이긴 이유 (2) | 2026.05.03 |
| [전염병과 식재료 EP.2] 괴혈병의 진실 — 레몬 하나가 대영제국 항로를 바꾼 비타민C의 역사 (1) | 2026.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