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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전염병과 식재료 EP.7] 스페인 독감과 식량 배급 — 전쟁과 전염병이 동시에 왔을 때

by 소금꽃한스푼 2026. 5. 6.

2026.05.05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5)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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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6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6)

 

"죽음이 바꾼 식탁" - 전염병과 식재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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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 전쟁과 전염병이 동시에 왔을 때

스페인 독감과 배급 — 밀, 돼지고기, 그리고 배급표


1918년 가을, 두 개의 재앙이 겹쳤다.

하나는 전쟁이었다. 4년째 이어진 세계대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참호 속 병사들은 진흙 위에서 죽어갔다. 전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유럽의 들판은 포탄 구덩이로 가득했다.

다른 하나는 병이었다. 봄부터 이상한 독감이 돌았다. 처음에는 가볍게 지나갔다. 그런데 가을에 돌아왔을 때는 달랐다. 숨을 쉬지 못했다. 피부가 파랗게 변했다. 건장한 청년들이 수일 만에 사라졌다. 노인과 어린이가 아니었다. 한창 건강해야 할 20대, 30대가 쓰러졌다.

그것을 사람들은 스페인 독감이라 불렀다.

전쟁터에서 죽지 않은 병사들이 막사에서 죽었다. 전선을 버티던 나라들이 안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탁이 흔들렸다.

Spanish flu -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8/sep/09/spanish-flu-pandemic-centenary-first-world-war


📜 역사와 문화

스페인 독감 —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은 병

1918년의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기원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미국 캔자스 주 군 기지에서 처음 보고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1918년 3월 캠프 펀스턴(Camp Funston)에서 수백 명의 병사가 동시에 독감 증세를 보였다. 그들은 유럽 전선으로 이동했다. 참호 속에서 바이러스가 퍼졌다.

그렇다면 왜 스페인 독감인가.

전쟁 중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모두 참전국이었다. 참전국들은 군 사기와 전쟁 수행을 위해 언론을 검열했다. 독감이 창궐해도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은 1차대전에서 중립이었다. 스페인 언론은 검열 없이 독감 유행을 보도했다. 국왕 알폰소 13세도 독감에 걸렸다는 소식이 그대로 실렸다. 세상은 스페인에서만 독감이 도는 것처럼 보았다. 이름이 붙었다.

독감은 세 차례 파도로 왔다. 1918년 봄의 1차 유행, 1918년 가을의 2차 유행, 1919년 초의 3차 유행. 가장 치명적인 것은 2차였다. H1N1 바이러스였다. 1차에서 변이를 거쳐 돌아온 것이었다.

전 세계 감염자는 5억 명으로 추산된다. 당시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이었다. 사망자는 2,000만~5,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4년간의 1차대전 사망자보다 많다는 설도 있다. 수치는 기록이 부실했던 지역이 많아 지금도 논란이다.

Camp Funston - https://veteran-voices.com/world-war-i-training-camps/camp-funston/
https://www.history.com/articles/spanish-flu-pandemic-dead

참호와 바이러스 — 전쟁이 전염병을 키운 방식

전쟁은 바이러스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수십만 명의 병사가 좁은 참호에 밀집해 있었다. 영양 상태는 최악이었다. 수면 부족, 극도의 스트레스, 오염된 물, 불충분한 식량. 면역 체계가 무너진 몸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기침 한 번으로 수십 명에게 바이러스가 전달됐다.

병사들은 최전선과 후방을 오갔다. 이동할 때마다 바이러스를 실어 날랐다. 대서양을 건너는 군함에는 수천 명이 탔다. 항해 중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 부두에 도착한 병사들이 도시로 퍼져 나갔다.

전쟁이 없었다면 이 독감은 그토록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지지 않았을 것이다.

참호와 단체 이동 등은 전염병 확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 https://www.iwm.org.uk/collections/item/object/205193959
https://www.bridgemanimages.com/en/noartistknown/british-soldiers-on-a-ship-in-world-war-two-waiting-to-be-evacuated-from-dunkirk-may-1940-b-w-photo/black-and-white-photograph/asset/3528904

배급제 — 전쟁과 전염병이 만든 식탁의 규칙

전쟁 전부터 식량은 부족했다. 청장년 농부들이 전선으로 떠났다. 농업 노동력이 급감했다. 말과 소가 군용으로 징발됐다. 비료 생산에 쓰이던 화학공장이 화약 공장으로 전환됐다. 수확량이 줄었다. 해상 봉쇄로 수입이 막혔다.

독일은 1914년부터 식량 위기에 빠졌다. 1916~1917년 겨울, '순무 겨울(Turnip Winter)'이 됐다. 감자 수확이 실패하면서 독일 민간인들은 순무로 연명했다. 하루 섭취 칼로리가 1,000kcal 아래로 떨어졌다. 이 영양 결핍 상태가 독감에 대한 저항력을 무너뜨렸다.

영국과 미국도 배급제를 도입했다. 미국의 식량관리국(Food Administration)은 1917년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의 지휘 아래 출범했다. 법이 아닌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방법은 단순했다. 이름을 붙였다.

'밀 없는 월요일·수요일(Wheatless Monday & Wednesday)', '고기 없는 화요일(Meatless Tuesday)', '돼지고기 없는 목요일·토요일(Porkless Thursday & Saturday)'. 일주일에 네 끼는 밀을 쓰지 말고, 고기를 줄이고, 돼지고기를 아끼라는 것이었다. 포스터가 붙었다. 신문이 광고를 실었다. 유명인들이 동참을 선언했다.

효과가 있었다. 미국의 밀 수출은 1917~1918년 사이 3배 이상 늘었다. 절약된 식량이 연합군 병사들에게 갔다.

영국은 1918년 1월 공식 배급제를 시행했다. 설탕부터 시작됐다. 3월에는 육류가 배급표 통제 아래 들어갔다. 배급표 없이는 정육점에서 살 수 없었다. 국민 1인당 주간 육류 배급량은 250~350g 수준이었다.

Turnip winter - https://roadstothegreatwar-ww1.blogspot.com/2016/09/100-years-ago-coming-of-turnip-winter.html
요일별로 밀과 고기를 제한하는 형태를 유도했다 - https://hoover.blogs.archives.gov/2019/10/09/the-original-meatless-monday/

돼지고기가 아낀 이유 — 군수품과 식량 사이

왜 돼지고기였을까.

돼지는 곡물을 먹어 살을 찌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이 돼지를 통해 돼지고기가 되는 과정에서 에너지의 대부분이 손실된다. 곡물 1kg을 직접 먹으면 1kg의 칼로리를 얻는다. 그 곡물로 돼지를 키워 먹으면 훨씬 적은 칼로리가 남는다. 전시에는 비효율이었다.

소와 닭도 같은 원리지만, 당시 소는 유제품과 노동력(경작)을 겸했고 닭은 달걀을 낳았다. 돼지는 고기 외에 다른 역할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배급 감축 대상으로 먼저 지목된 것이 돼지고기였다.

밀은 다른 이유로 아꼈다. 밀은 군용 빵의 원료였다. 전선의 병사들에게 빵은 기본 식량이었다. 후방 민간인이 밀을 덜 써야 전선 병사가 빵을 먹을 수 있었다. 미국 식량관리국은 밀 대신 옥수수, 보리, 호밀, 감자를 쓰도록 권장했다. 빵집은 '빅토리 브레드(Victory Bread)'를 만들었다. 밀가루에 다른 곡물 가루를 섞은 것이었다. 그리 맛있지 않았다. 그러나 전선으로 밀이 갔다.

Victory Bread - https://www.motherearthnews.com/homesteading-and-livestock/victory-bread-zbcz1402/


🔬 영양과 과학

H1N1 바이러스 — 왜 젊고 건강한 사람이 더 많이 죽었나

스페인 독감의 가장 이상한 특징은 사망자 분포였다.

일반적인 독감은 U자형 사망 곡선을 그린다. 면역이 약한 영유아와 노인이 많이 죽고 중간 연령대는 비교적 안전하다. 그러나 1918년 독감은 W자형이었다. 영유아, 노인뿐 아니라 20~40대 청장년 사망률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건강하고 면역이 강한 사람들이 더 많이 죽었다.

이것을 설명하는 가설이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면역 체계가 반응한다. 인터루킨, 종양괴사인자(TNF) 등 사이토카인이 분비된다. 염증 반응이 일어나 바이러스를 공격한다. 그런데 면역 반응이 지나치게 강하면 자기 몸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폐 조직이 손상된다. 액체가 차오른다. 숨이 막힌다. 면역이 강한 청장년일수록 이 과도한 반응을 더 격렬하게 일으켰다.

피부가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cyanosis)은 산소 부족의 증거였다. 폐가 기능을 잃으면서 혈액에 산소가 부족해졌다. 당시에는 인공호흡기도, 항바이러스제도 없었다.

특성 1918 H1N1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유형 Influenza A, H1N1
특이 사망 분포 20~40대 청장년 초과 사망 (W자형 곡선)
주요 사망 기전 사이토카인 폭풍 → 폐렴 → 호흡부전
폐렴 합병증 세균성 폐렴 (2차 감염)이 주요 사인
치료 수단 (당시) 없음. 아스피린 과용 처방이 출혈 악화 기여

Cyanosis - https://www.healthline.com/health/peripheral-cyanosis

영양 결핍과 면역 — 굶주림이 바이러스를 돕는 방식

배급과 식량 부족이 독감 피해를 키웠다.

면역 체계는 에너지와 영양소를 소비한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항체 합성이 줄어든다. 비타민 A 결핍은 점막 방어 기능을 약화시킨다. 아연(Zinc) 결핍은 T세포와 NK세포 기능을 저하시킨다. 비타민 D 결핍은 대식세포의 항균 펩타이드 생산을 줄인다.

1918년 유럽 민간인들은 이 중 여러 결핍이 동시에 진행된 상태였다. 육류 부족으로 단백질과 아연이 부족했다. 지방 부족으로 지용성 비타민(A, D)의 흡수가 떨어졌다. 겨울의 일조량 부족까지 겹쳤다. 바이러스 앞에 방어선이 허물어진 몸들이었다.

독일의 '순무 겨울' 시기, 영양 부족 상태의 민간인들 사이에서 독감 사망률이 특히 높았다. 굶주림과 감염병은 항상 함께 다닌다.

1차 세계대전 - https://www.iwm.org.uk/history/the-food-that-fuelled-the-front

밀 — 전쟁이 가장 원하는 음식

밀의 주성분은 전분이다. 탄수화물. 몸이 가장 빠르게 쓸 수 있는 연료다. 빵 한 덩어리는 수백 그램의 탄수화물을 담는다. 보관이 쉽다. 운반이 편하다. 1인분으로 나누기도 쉽다.

밀 단백질인 글루텐(gluten)은 점탄성 구조를 형성한다. 효모를 넣으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글루텐 그물망이 기포를 가둬 빵이 부푼다. 같은 무게 대비 부피가 커져 식감도 포만감도 올라간다. 밀가루로 만든 빵은 같은 칼로리를 더 많이 먹은 것처럼 느끼게 한다.

전선 배급 빵인 'hardtack(건빵류)'은 밀가루, 물, 소금뿐이었다. 수분이 거의 없어 수년간 보관됐다. 한국전쟁, 2차대전, 1차대전을 관통하는 군용 식량의 원형이다.

Hardtack 이 먹기 힘듦을 풍자한 그림 - https://militaryhistorynow.com/2014/07/11/hard-to-swallow-a-brief-history-of-hardtack-and-ships-biscuit-2/


🍽️ 대표 요리와 활용

🍞 빅토리 브레드(Victory Bread) — 밀이 아껴진 자리

1차대전 미국에서 실제로 배포된 레시피다. 밀가루 비율을 줄이고 옥수수 가루, 귀리, 보리 가루, 감자 가루를 섞었다. 식감은 더 거칠고 조밀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의 맛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순밀 빵이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그 부드러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잠시 기억했다.

🥓 베이컨과 돼지기름 — 전쟁이 절약을 가르친 것

'돼지고기 없는 날'의 역설은, 돼지기름(lard)이 부족해진 것이었다. 당시 미국 가정에서 쿠킹오일의 상당 부분은 돼지기름이었다. 돼지 소비를 줄이자 부엌의 기름이 줄었다. 식용유 산업이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이 시기다. 면실유, 대두유가 돼지기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코(Crisco), 마가린이 보급됐다. 전쟁의 배급이 식용유 시장을 바꿨다.

🍲 뚝배기 속의 역사 — 부대찌개 전 단계

한국은 1918년 독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조선에도 독감이 들어왔다. 당시 기록으로는 무오년 독감, '무오독감'으로 불렸다. 1918년이 무오년이었다. 조선인 감염자는 수백만 명으로 추정되며, 사망자가 14만 명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1,600만 명 남짓이었으니 치명적인 비율이었다.

배급과 식량 부족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음식을 보면, 6화에서 다룬 통조림이 부대찌개로 이어지는 선이 보인다. 1차대전의 배급이 전시 식량 절약 문화를 만들었다면, 한국전쟁의 미군 부대 잉여 식량은 부대찌개를 만들었다. 전쟁과 전염병이 식탁에 남긴 흔적은 형태를 바꾸며 이어졌다.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고기 없는 날'은 1918년의 전쟁 배급 캠페인에서 시작됐지만, 2003년 이후 환경 운동의 언어로 부활했습니다. UN 보고서가 축산업이 전체 온실가스의 약 14.5%를 차지한다고 밝히면서 '미트리스 먼데이(Meatless Monday)'가 다시 세계로 퍼졌습니다. 같은 이름의 캠페인이 백 년 전의 전쟁 배급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고기없는 월요일 캠페인은 다시 각광받고 있다 - https://www.mondaycampaigns.org/meatless-monday


결말 — 병은 끝났지만 식탁은 바뀌었다

1918년 11월 11일, 1차대전이 끝났다. 독감도 서서히 물러갔다.

그러나 식탁은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쟁과 배급이 가르친 것들이 남았다. 통조림 소비 습관이 남았다. 식용유 시장의 재편이 남았다. 정부가 국민의 식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선례가 남았다.

2차대전에서 각국은 1차대전의 배급 경험을 꺼내 더 정밀하게 다듬었다. 영국의 배급표 시스템, 미국의 전시 식량 관리가 1차대전 모델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전쟁과 전염병은 그렇게 식량 시스템을 새로 설계했다.

스페인 독감은 이름도 틀렸고, 원인도 오래 몰랐고, 치료법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전 지구적 전염병 대응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신이 국제연맹 보건기구(LNHO)가 1920년 설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스페인 독감의 직접적인 교훈에서 나온 것이었다.

밀이 아껴졌다. 돼지고기가 줄었다. 빵의 레시피가 바뀌었다. 그 모든 절약이 전선의 병사에게 갔다. 병사는 독감으로 죽기도 하고, 총알로 죽기도 했다. 살아 돌아온 자들은 배급이 끝난 식탁 앞에 앉아, 오래 먹지 못했던 것들을 먹었다.

"전쟁이 식탁을 비웠고, 독감이 그 자리마저 흔들었다. 그렇게 한 세대가 허기를 기억 속에 새겼다."


✅ Fact-check

항목 내용 출처
스페인 독감 최초 보고 1918년 3월, 미국 캔자스 캠프 펀스턴 Taubenberger & Morens (2006). Emerging Infectious Diseases
스페인 독감 명칭 유래 스페인 중립국으로 언론 검열 없어 보도 자유 Barry, J. (2004). The Great Influenza
전 세계 감염자·사망자 추산 5억 명 감염, 2,000만~5,000만 명 사망 Johnson & Mueller (2002). Bulletin of the History of Medicine
조선의 무오독감 피해 감염자 수백만, 사망자 14만 명 이상 추정 박윤재 (2005). 한국 근현대 의료사
W자형 사망 분포 20~40대 초과 사망, 사이토카인 폭풍 기전 Morens & Fauci (2007). Journal of Infectious Diseases
미국 식량관리국 설립 1917년, 허버트 후버 초대 국장 Hoover, H. (1951). The Memoirs of Herbert Hoover
밀 없는 월요일·수요일 캠페인 1917~1918년, 미국 자발적 배급 캠페인 US Food Administration Records, National Archives
영국 육류 배급 시행 1918년 3월 UK Ministry of Food records
국제연맹 보건기구 설립 1920년, WHO 전신 WHO official history
UN 축산업 온실가스 전체 인위적 온실가스의 약 14.5% FAO (2013). Tackling Climate Change Through Live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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