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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발효의 역사 EP.9] 파스퇴르와 산업혁명 — 발효의 과학적 원리가 밝혀진 역사

by 소금꽃한스푼 2026. 4. 28.

2026.04.27 - [역사와 식재료] - "시간이 만든 맛" — 발효의 식탁 (7)

 

"시간이 만든 맛" — 발효의 식탁 (7)

7화 — 동남아시아의 발효, 생선이 소스가 되기까지 / 피시소스·발효새우젓(까삐)생선이 썩으면 버려야 한다.그런데 어느 더운 나라에서는 버리지 않았다.소금을 뿌렸다. 항아리에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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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27 - [역사와 식재료] - "시간이 만든 맛" — 발효의 식탁 (8)

 

"시간이 만든 맛" — 발효의 식탁 (8)

8화 — 발효와 종교, 술을 금하고 빵을 성화하다 / 코셔 와인·누룩 없는 빵·할랄 발효신은 발효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어떤 신은 술을 선물이라 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를 인간에게 줬고, 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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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 산업혁명과 발효, 파스퇴르가 바꾼 것 / 저온살균·통조림과의 경쟁


1856년, 프랑스 릴.

한 양조업자가 루이 파스퇴르를 찾아왔다. 사탕무 발효로 알코올을 만드는 공장인데, 배치(batch)마다 결과가 달랐다. 어떤 통은 알코올이 나왔고, 어떤 통은 신맛 나는 젖산이 나왔다. 왜 그런지 아무도 몰랐다. 공장주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파스퇴르는 현미경을 들이댔다.

좋은 통에는 둥근 효모 세포가 가득했다. 나쁜 통에는 다른 생물이 있었다 — 가늘고 긴 막대 모양. 알코올이 아니라 젖산을 만드는 균이었다.

이 관찰 하나가 인류의 발효 이해를 바꿨다. 발효는 단순한 화학 반응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생물이 하는 일이었다.

수천 년 동안 인류는 발효를 쓰면서 발효를 몰랐다. 1856년에 처음으로 알기 시작했다.

파스퇴르 - https://www.sciencehistory.org/education/scientific-biographies/louis-pasteur/


📜 역사와 문화

파스퇴르 이전 — 발효는 마법이었다

파스퇴르가 나타나기 전, 발효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포도즙이 와인이 되는 것, 밀가루 반죽이 부푸는 것, 우유가 치즈가 되는 것 — 이 모든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아무도 몰랐다. 가장 유력한 설명은 자연 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 이었다. 유기물이 스스로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이론. 파리가 썩은 고기에서 저절로 생기듯, 발효도 그런 식으로 일어난다고 믿었다.

18세기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발효를 화학 방정식으로 쓰기도 했다 — 포도당이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로 분해된다. 옳았다. 그러나 그 반응을 누가 하는지는 몰랐다. 라부아지에에게 발효는 생물 없는 화학이었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도 같은 입장이었다. 효모는 그냥 촉매일 뿐, 살아있는 생물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이것이 주류 견해였다.

파스퇴르는 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

유스투스 폰 리비히 (Justus von Liebig) - https://www.biografiasyvidas.com/biografia/l/liebig.htm

파스퇴르의 실험들

파스퇴르가 릴에서 시작한 발효 연구는 빠르게 확장됐다.

1857년, 그는 젖산 발효도 살아있는 생물이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858년, 알코올 발효도 마찬가지. 효모는 촉매가 아니라 살아서 당을 먹고 알코올을 배출하는 생물이었다. 리비히는 반박했고, 두 사람의 논쟁은 10년 넘게 이어졌다. 결국 파스퇴르가 옳았다.

그 다음 질문은 자연스러웠다. 발효를 일으키는 생물이 있다면, 부패를 일으키는 생물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1863년, 나폴레옹 3세의 요청으로 파스퇴르는 프랑스 와인 산업의 문제를 조사했다. 수출 도중 와인이 변질되는 일이 반복됐다. 파스퇴르는 원인을 찾았다 — 바람직하지 않은 미생물의 번식. 그리고 해법을 내놨다 — 와인을 60~65°C로 수십 분간 가열하면 변질균은 죽고, 와인의 맛과 향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저온살균(pasteurization) — 자신의 이름을 딴 이 기술은 처음에는 와인을 위해 개발됐다. 맥주, 우유로 순서대로 확장됐다. 지금도 전 세계 유제품의 대부분이 이 방법을 쓴다.

pasteurization - https://www.daviddarling.info/encyclopedia/P/pasteurization.html

통조림과의 경쟁 — 또 다른 보존 혁명

파스퇴르가 발효의 원리를 밝히는 동안, 전혀 다른 방향에서 식품 보존 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1810년, 프랑스의 니콜라 아페르는 음식을 밀봉 유리병에 담아 가열하는 방법으로 나폴레옹 군대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 1만 2천 프랑의 상금을 받았다. 같은 해 영국의 피터 듀란드는 양철 캔을 특허로 등록했다. 통조림의 탄생이었다.

통조림은 발효의 직접적인 경쟁자였다. 발효는 시간이 걸리고, 결과가 예측 불가능하고, 특정 조건에 의존했다. 통조림은 빠르고, 일정하고, 어디서든 열 수 있으면 됐다. 군대와 도시 노동자 계층은 통조림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있었다. 통조림이 왜 작동하는지도 처음에는 몰랐다. 아페르는 산소를 차단하면 부패가 막힌다고 생각했다. 옳지 않았다. 실제로는 가열로 미생물을 죽이고, 밀봉으로 재오염을 막는 것이었다. 파스퇴르의 연구가 나오고 나서야 통조림의 원리도 제대로 이해됐다.

두 기술은 경쟁하면서 동시에 서로를 이해하게 해줬다.

https://supermarketnews.co.nz/news/science-tech/a-brief-photo-history-of-cans/

산업혁명이 발효에 가한 것

파스퇴르의 발견은 발효 산업을 두 방향으로 갈랐다.

한쪽에서는 발효가 산업화됐다. 효모를 순수 배양해 일정한 품질의 빵과 맥주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덴마크의 칼스버그 연구소는 1883년 단일 효모 균주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 에밀 한센의 Saccharomyces carlsbergensis. 이 균주로 만든 라거 맥주는 전 세계로 퍼졌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라거 맥주의 조상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위생 혁명이 일어났다. 발효와 부패는 같은 미생물 활동의 다른 결과임이 밝혀졌다. 발효를 통제하려면 환경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온도, 습도, 위생 — 이 세 가지를 관리하는 것이 발효 산업의 핵심이 됐다. 전통 발효 방식이 수백 년의 경험으로 암묵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과학이 언어로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산업혁명은 전통 발효를 위협했다. 공장제 빵이 동네 빵집을 대체하고, 산업 양조가 가정 양조를 밀어냈다. 속도와 균일성이 시간과 개성을 이겼다. 1870년대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홈브루잉(가정 양조)은 급격히 줄었다. 발효는 더 이상 집 안의 일이 아니라 공장의 일이 됐다.

Home Brewing - https://beersnobchick.com/diy-home-brew-room/2018/03/15/

한국의 발효와 근대 — 일제강점기의 균열

서구에서 파스퇴르가 발효를 과학화하던 같은 시기, 한국의 전통 발효는 다른 방식으로 충격을 받았다.

1905년 이후 일제는 주세법(酒稅法)을 시행했다. 가정에서 막걸리를 빚는 것이 불법이 됐다. 수천 년 이어진 가정 양조 문화가 법으로 금지됐다. 허가받은 주조장만이 술을 만들 수 있었고, 세금을 걷기 위한 구조였다. 된장과 간장도 일본식 제조법이 들어오고, 공장 생산이 장려됐다.

전통 발효는 부엌 안에서 명맥만 유지하다, 해방 이후에도 빠른 산업화 속에 위축됐다. 1960~70년대 한국의 급격한 근대화는 전통 발효 대신 화학 조미료와 공장 가공식품을 선택했다. 된장찌개와 김치는 남았지만, 집마다 달랐던 발효의 다양성은 표준화됐다.

https://www.kbanker.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937


🔬 영양과 과학

파스퇴르 이후 발효 과학은 빠르게 진화했고, 그 지식은 우리가 먹는 것을 근본적으로 바꿨다.

저온살균의 원리와 한계 — 저온살균은 병원균을 죽이는 데 효과적이다. 결핵균, 살모넬라, 리스테리아 같은 위험한 균은 63°C 30분, 또는 72°C 15초 처리로 사멸한다. 그러나 완전 멸균이 아니다 — 내열성 포자나 일부 효소는 살아남는다. 저온살균 우유는 살아있는 발효 미생물이 없기 때문에 일반 우유처럼 자연적으로 요거트가 되지 않는다. 치즈를 만들려면 별도로 균을 다시 넣어야 한다.

산업 효모와 야생 효모 — 칼스버그 이후 순수 배양 효모는 발효 산업을 표준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양성을 잃었다. 전통 사워도우 빵은 야생 효모와 젖산균의 복잡한 생태계가 만드는 맛이다 — 100가지 이상의 미생물이 관여하기도 한다. 산업 효모로 만든 빵은 빠르고 균일하지만, 그 복잡성을 갖기 어렵다.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인 사워도우 부활 트렌드는 이 잃어버린 다양성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다.

발효와 프리바이오틱스·프로바이오틱스 — 19세기 파스퇴르가 발효균을 규명했다면, 20세기에는 발효 식품 속 살아있는 균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파스퇴르의 동시대인 엘리야 메치니코프는 불가리아 농부들이 발효유를 먹고 장수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유산균 연구를 시작했다. 지금의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 개념의 시작이다. 파스퇴르가 발효균을 '제어'하는 법을 가르쳤다면, 메치니코프는 그 균과 '공존'하는 법을 물었다.

통조림의 과학 — 통조림 가열 처리는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 포자를 완전히 사멸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 균은 100°C에서도 살아남는 내열성 포자를 만들기 때문에 압력솥 수준의 고온(121°C)이 필요하다. 저산성 식품(고기, 채소)은 반드시 이 온도로 처리해야 한다. 산성 식품(과일, 토마토)은 100°C 처리로도 안전하다. 이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파스퇴르의 미생물학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https://www.mdpi.com/2076-2607/12/2/234
Clostridium botulinum - https://www.news-medical.net/life-sciences/Clostridium-botulinum-Life-Cycle.aspx


🍽️ 대표 요리와 활용

🍺 라거 맥주 — 1883년 칼스버그에서 순수 배양된 하면 발효 효모(Saccharomyces pastorianus, 나중에 파스퇴르의 이름을 따서 명명)로 만들어진 라거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전 세계를 정복했다. 깔끔하고 균일한 맛, 긴 보존기간, 대량 생산 가능성 — 세 가지가 맞아떨어졌다. 오늘날 세계 맥주 소비량의 약 90%가 라거 계열이다.

🥐 산업 빵과 사워도우의 대결 — 20세기 산업 빵은 빠른 발효 효모와 각종 첨가제로 몇 시간 만에 만들어진다. 전통 사워도우는 수십 시간의 저온 발효를 거친다. 글루텐 분해, 피틴산 감소, 소화 흡수율 향상 — 긴 발효가 만드는 영양학적 차이가 연구로 밝혀지면서 사워도우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 저온살균 우유 vs 생우유 — 저온살균 우유와 생우유(raw milk) 논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저온살균은 안전성을 높이지만 일부 효소와 미생물을 죽인다. 생우유 지지자들은 자연 발효 능력과 특유의 풍미를 주장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생우유 판매가 합법이고, 미국은 주별로 다르다. 한국은 생우유 직접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 집에서 만드는 통조림·병조림 — 파스퇴르의 원리를 알면 안전한 집 발효 보존식을 만들 수 있다. 산성이 높은 김치, 피클, 잼류는 일반 끓이기 처리로 안전하다. 고기나 생선이 들어간 제품은 반드시 압력 처리가 필요하다. 이 구분을 모르고 만든 홈메이드 통조림에서 보툴리눔 중독이 발생한 사례가 지금도 간헐적으로 보고된다.

Sour Dough - https://www.thekitchn.com/how-to-make-sourdough-bread-224367
Raw Milk - https://news.llu.edu/health-wellness/raw-milk-%C2%AD%E2%80%93-why-experts-say-you-shouldnt-drink-it

💡 저온살균 제품 고르는 법 시중 요거트와 치즈에는 저온살균 우유로 만들고 나서 살아있는 균을 다시 투입한 것(인큐베이션 제품)과, 만든 후 유통기간 연장을 위해 한 번 더 열처리한 것이 있다. 포장의 '활성 배양균(live active cultures)' 또는 '생균 함유' 표기가 있는 것이 실제 살아있는 발효균을 담고 있다. 가열 처리된 제품은 맛은 비슷하지만 프로바이오틱스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파스퇴르는 발효를 설명했다. 그러나 설명이 곧 정복은 아니었다. 수천 년의 발효 문화는 왜 그것이 작동하는지 몰라도 잘 작동하고 있었다. 과학은 그 이유를 가르쳐줬고, 산업은 그것을 균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세기가 지나자, 사람들은 다시 불균일하고 예측 불가능한 발효의 맛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표준화된 라거 옆에 야생 효모 맥주가 생기고, 공장 빵 옆에 사워도우가 돌아왔다. 파스퇴르가 열어준 문으로 나갔다가, 같은 문으로 돌아온 것이다.


📌 역사적 배경 확인
파스퇴르 릴 발효 연구 1856년 ✅
자연 발생설 논쟁·라부아지에·리비히 ✅
저온살균(pasteurization) 와인→맥주→우유 순서 ✅
나폴레옹 3세 와인 변질 조사 의뢰 1863년 ✅
아페르 병조림 1810년·듀란드 캔 특허 1810년 ✅
칼스버그 한센 단일 효모 균주 분리 1883년 ✅
메치니코프 프로바이오틱스 연구 시작 ✅
일제 주세법 가정 양조 금지 ✅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121°C 처리 기준 ✅

2026.04.30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 "시간이 만든 맛" — 발효의 식탁 (10)

 

"시간이 만든 맛" — 발효의 식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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