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한국 사람들이 안부를 묻는 가장 흔한 인사다. 영어의 "How are you?"도, 프랑스어의 "Ça va?"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안녕을 묻는 말이 곧 끼니를 챙겼는지 묻는 말이었다. 이 인사 속에는 한 민족의 기억이 새겨져 있다 — 밥을 먹었는지가 그 사람의 안녕을 가르던 시절,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던 시절의 기억이다. 굶주림이 끝난 지 두 세대가 지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밥은 먹었니?"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앞선 여섯 화에서 우리는 굶주림이 무엇을 발명했고, 누가 기근을 만들었고, 사람들이 무엇을 먹으며 살아남았는지를 보았다. 이번 화의 질문은 다르다 — 기근이 끝난 뒤, 그 기억은 어디로 갔는가. 굶주림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음식에 대한 태도로, 식문화로, 심지어 다음 세대의 몸으로 남는다. 어머니가 "한 그릇 더 먹어라"라고 말할 때, 명절에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릴 때, 흰쌀밥 한 공기가 여전히 위로가 될 때 — 그 안에는 배고팠던 시절의 그림자가 있다.
이번 화는 전후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기근을 겪은 사회가 풍요의 시대에 어떻게 음식과 관계 맺는지를 본다. 굶주림에서 태어난 라면이 어떻게 국민 음식이 됐는지, 흰쌀밥과 설탕이 왜 그토록 강렬한 갈망의 대상이었는지, 그리고 그 굶주림의 기억이 어떻게 과식과 비만이라는 정반대의 문제로 이어졌는지 — 이것은 풍요가 도착한 뒤에도 떠나지 않는 굶주림의 이야기다.

한국의 보릿고개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1960년대까지도 봄이면 식량이 바닥났고, 1969년에야 최빈국에서 벗어났으며, 1970년대 통일벼 보급과 새마을운동을 거쳐서야 비로소 보릿고개가 사라졌다. 굶주림이 끝난 것은 불과 두 세대 전이다. 지금 한국의 노년층 상당수가 배고픔을 직접 겪은 세대다. "밥은 먹었니?"라는 인사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그것은 굶주림의 기억이 언어에 새겨진 화석이다.
전후 한국의 상징적 음식이 꿀꿀이죽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잔반 — 스팸과 소시지 찌꺼기, 때로는 담배꽁초까지 섞인 — 을 모아 끓인 죽이었다. 남대문시장에는 이것을 사려는 줄이 섰다. EP.5에서 본 중국의 관음토나 EP.6의 가죽 젤리만큼 극단적이진 않지만, 외국군이 버린 음식 찌꺼기로 끼니를 잇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굶주림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 꿀꿀이죽이 훗날 부대찌개로 변형됐고, 한 보험회사 임원이 그 광경을 보고 라면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국가가 흰쌀밥을 '나쁜 것'으로 규정했다는 점이다. 쌀이 부족하자 정부는 무미일(無米日)을 시행해 일주일에 두 번 쌀 음식 판매를 금지했고, 미국 원조 밀가루를 활용하는 혼분식 장려 운동을 펼쳤다. 학교에서는 도시락의 쌀밥 비율을 검사했다. 수천 년간 모두가 꿈꾸던 흰쌀밥이, 국가 정책에 의해 억눌러야 할 욕망이 된 것이다. 이 모순 — 흰쌀밥을 향한 갈망과 그것을 금하는 정책의 충돌 — 이 전후 한국 식문화의 독특한 풍경이었다.


라면의 탄생에는 굶주림이 깊이 새겨져 있다. 일본에서 안도 모모후쿠가 1958년 치킨라멘을 발명한 것은 전후 식량난 속에서 미국 원조 밀가루를 어떻게 간편한 음식으로 바꿀까 하는 고민에서였다. 한국에서 전중윤이 1963년 삼양라면을 만든 것도 마찬가지였다 — 그는 사람들이 미군 잔반인 꿀꿀이죽을 사 먹으려 줄 선 광경에 충격받았다. 보험회사 임원이던 그는 "지금 필요한 건 보험이 아니라 한 끼"라며 사업을 바꿨다. 라면은 처음부터 굶주림을 메우기 위한 음식이었다.
초기 삼양라면은 일본식 맑은 닭 육수였고, 잘 팔리지 않았다. "밥과 국과 반찬을 먹어야 끼니"라고 여기던 사람들에게 밀가루 인스턴트 음식은 한 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전환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식 후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춧가루를 넣어보라"고 한 것 — 그렇게 매운 빨간 국물 라면이 탄생했다. 다른 하나는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이었다. 쌀을 아끼려 밀가루 음식을 권장하던 국가 캠페인이 라면 판매를 폭발시켰다. 1966년 240만 개였던 라면이 1969년 1,500만 개로, 3년 만에 300배 이상 팔렸다.
EP.2에서 본 코른드 비프를 기억하는가. 아일랜드 이민자가 미국에서 유대계 쇠고기를 받아들여 '아이리시 음식'을 만들었듯, 한국의 라면도 일본에서 온 음식이 고춧가루를 만나 '한국 음식'이 됐다. 그리고 그 라면은 이제 한국이 1인당 소비량 세계 1위를 다투는 국민 음식이자, 세계로 수출되는 K-푸드의 상징이 됐다. 굶주림을 메우려 만든 가장 값싼 음식이, 풍요의 시대에 문화 상품으로 역전한 것이다.



흰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풍요의 꿈이자 부의 증명이었다. 잡곡과 보리에 섞이지 않은 순수한 흰쌀밥 한 공기, 거기에 고깃국 — "이밥에 고깃국"은 굶주림의 시대 모든 사람이 꿈꾸던 삶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밥 문화에는 굶주림의 흔적이 짙다. 그릇 위로 수북이 쌓아 올리는 고봉밥, 손님상을 가득 채우는 환대, "더 먹어라"라는 끝없는 권유. 이 모든 것이 충분히 먹지 못한 시대의 반작용이었다.
설탕도 마찬가지였다. 전후 설탕은 귀하고 강렬한 풍요의 맛이었다. 제일제당이 1953년 국산 설탕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 한국 제조업의 출발점 중 하나가 됐을 만큼, 단맛에 대한 갈망은 컸다. 달고나, 뽑기, 사카린 — 단 것을 충분히 먹지 못한 시대가 남긴 단맛에 대한 애착이다. 명절 선물로 설탕 세트가 인기였다는 사실은 오늘날엔 낯설지만, 그 시절 설탕은 그만큼 귀했다.
이 갈망에는 진화적 뿌리가 있다. 인간은 오랜 기근의 역사 속에서 칼로리 높은 음식 — 당과 지방 — 을 본능적으로 갈망하도록 진화했다. 굶주림이 일상이던 시대엔 단맛과 기름진 맛에 끌리는 것이 생존 전략이었다. 문제는 풍요의 시대에 그 본능이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여전히 기근을 기억하고, 기회가 있을 때 칼로리를 비축하려 한다. 그것이 과식과 비만으로 이어진다. 굶주림의 끝이 곧 새로운 식문제의 시작이 된 것이다.

굶주림의 기억은 마음에만 남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몸에도 새겨진다. 후성유전학(epigenetics)과 'DOHaD'(질병의 발달적 기원) 연구는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 태아기나 유아기에 굶주림에 노출된 사람은, 풍요의 시대에 살아도 비만·당뇨·고혈압·대사증후군에 더 취약하다는 것이다. 굶주린 환경에서 형성된 몸은 '에너지를 최대한 비축하라'는 명령에 맞춰지고(절약 표현형, thrifty phenotype), 그 몸이 풍요로운 환경을 만나면 오히려 병에 걸리기 쉽다.
이것은 추측이 아니라 대규모 역학 연구로 확인된 사실이다. EP.5에서 다룬 중국 3년 대기근(1959~1961) 시기에 태어나거나 자란 사람들을 수십 년간 추적한 연구(China Health and Retirement Longitudinal Study 등)는, 그들이 성인이 된 후 고혈압·당뇨·비만의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것을 보여줬다. EP.6 레닌그라드 포위전 생존자, 네덜란드 '굶주림의 겨울(1944~45)' 노출 세대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타났다. 기근은 그것을 겪은 사람의 몸에, 그리고 때로는 그 자녀의 몸에까지 흔적을 남긴다.

| 기근의 흔적 | 굶주림의 시대 | 풍요의 시대(반작용) |
|---|---|---|
| 음식을 권하는 정서 |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생존의 사랑 | "더 먹어라"가 과식·비만 권유가 됨 |
| 음식을 남기지 않음 | 한 톨도 귀한 시대의 생존 윤리 | 배불러도 남기지 못해 과식. 음식물 죄책감 |
| 흰쌀밥·고봉밥 선호 | 풍요와 환대의 상징 | 탄수화물 과잉. 당뇨 위험 증가 |
| 단맛·기름진 맛 갈망 | 칼로리 비축의 생존 본능 | 설탕·지방 과잉 섭취. 대사질환 |
| 기근 노출 세대의 몸 | 절약 표현형 — 에너지 최대 비축 | 풍요 환경에서 비만·당뇨·대사증후군 취약 |
이것이 기근의 마지막 역설이다. 굶주림을 겪은 사회가 풍요에 도달했을 때, 굶주림의 기억은 정반대의 문제 — 과식과 비만, 대사질환 — 로 모습을 바꿔 돌아온다. 한국과 일본, 중국이 빠르게 부유해지면서 비만율과 당뇨병이 급증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 세대 안에 굶주림에서 풍요로 급격히 이동한 사회일수록 그 충격이 크다. 몸이 미처 적응하지 못한 채 환경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억은 세대에서 끊긴다. 굶주림을 모르는 세대에게 흰쌀밥과 설탕은 더 이상 풍요의 상징이 아니라 '줄여야 할 것'이다. 한 가족의 식탁에서 조부모는 "더 먹어라"라고 하고 손주는 "탄수화물 줄여야 해"라고 말한다. 같은 음식을 두고 두 세대가 정반대의 의미를 읽는다. 굶주림의 기억이 마침내 몸과 마음에서 옅어지는 지점이다. 풍요가 완전히 일상이 될 때, 비로소 "밥은 먹었니?"라는 인사도 그저 습관이 된다.

부대찌개는 전후 한국 식문화의 굶주림과 풍요를 한 냄비에 담은 음식이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스팸·소시지를 김치·고추장과 함께 끓인 이 음식의 뿌리는 꿀꿀이죽이다 — 외국군 잔반으로 끼니를 잇던 가장 가난한 시절의 음식이, 오늘날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푸짐한 한 그릇이 됐다. 라면 사리를 넣는 것은 이 화의 두 주인공(라면과 부대찌개)이 한 냄비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양념장] 고춧가루 2큰술 · 고추장 1큰술 · 간장 1큰술 · 다진 마늘 1큰술 · 후추 약간
1. 재료 준비 스팸과 소시지는 먹기 좋게 썬다. 김치는 한입 크기로, 두부·양파·대파도 썰어둔다. 양념장 재료를 미리 섞는다.
2. 담기 넓은 냄비에 김치를 깔고 스팸·소시지·두부·양파를 보기 좋게 둘러 담는다. 가운데에 양념장을 올린다.
3. 끓이기 육수를 붓고 센 불에서 끓인다. 끓어오르면 중불로 줄여 10분간 끓여 맛이 어우러지게 한다. 베이크드빈을 넣으면 미국식 풍미가 살아난다.
4. 마무리 라면 사리와 떡을 넣고 면이 익으면 치즈 한 장을 올린다. 대파를 뿌려 바로 낸다.
포인트 부대찌개의 핵심은 잘 익은 김치다. 신김치가 들어가야 스팸의 기름진 맛을 잡아준다. 치즈는 호불호가 있으니 취향껏. 이 음식의 모든 재료 — 스팸, 소시지, 라면, 치즈 — 는 전후 미국 원조와 산업화의 산물이다.

부대찌개를 끓일 때, 이 음식의 이름에 '부대(部隊)'가 들어간 이유를 생각해보면 음식이 달리 보인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는 뜻이다. 가장 가난했던 시절 외국군 잔반으로 시작된 음식이, 이제는 일부러 스팸과 소시지를 사다 끓이는 별미가 됐다. 굶주림의 음식이 풍요의 음식이 된 이 시리즈의 마지막 사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 부대찌개는 푸짐하게 끓여 여럿이 나눠 먹는 음식이다. "많이 먹어라"라는 그 시절의 정서가 가장 따뜻하게 살아있는 한 냄비다. 다만 스팸·소시지·라면이 모두 나트륨과 지방이 높으니, 채소를 넉넉히 넣고 국물은 적게 먹는 것이 이 풍요의 시대를 건강하게 누리는 법이다.
| 주요 사실 | 한국어 참고 자료 | 영어·학술 참고 자료 |
|---|---|---|
| 보릿고개 1970년대까지 지속, 1969년 최빈국 탈출. 무미일·혼분식 장려, 초등생 1/4 영양실조, 꿀꿀이죽 | 나무위키 "보릿고개"; 어린이경제신문 "1970년대 후반 마침내 보릿고개 넘다"; 스마트에프엔 "라면의 역사" | 관련 한국 현대사·식생활사 문헌 |
| 인스턴트 라면 1958년 안도 모모후쿠 발명. 전후 식량난·미국 원조 밀가루 배경 | 나무위키 "안도 모모후쿠"; 한국일보 "안도 모모후쿠의 라면 이야기"; 컵누들 박물관 | Cupnoodles Museum; Nissin Foods 공식 연혁 |
| 삼양라면 1963.9.15 출시(전중윤, 100g 10원). 박정희 고춧가루 일화. 1966년 240만→1969년 1,500만 개 | 위키백과 "삼양라면"; 나무위키 "라면/역사"; 국가기록원 "라면"; 스마트에프엔 | 김남석 "라면의 기원과 국내 보급의 역사" (KCI, 2020) |
| "이밥에 고깃국" 풍요 상징, 제일제당 1953년 국산 설탕 생산, 혼분식 장려운동 | 국가기록원 식생활 자료; 관련 한국 식문화사 문헌 | 한국 산업사·CJ 제일제당 연혁 관련 자료 |
| 절약 표현형/DOHaD — 기근 노출 세대의 비만·당뇨·대사증후군 위험 증가 | 관련 국내 의학·영양학 자료 | China Health and Retirement Longitudinal Study (CHARLS) 기근 코호트 연구; Dutch Hunger Winter 연구; Hales & Barker, "Thrifty phenotype hypothesis" |
그것이 우리가 안부를 묻는 말이었다.
흰쌀밥 한 공기가 꿈이던 시절,
설탕 한 봉지가 명절 선물이던 시절,
꿀꿀이죽 한 그릇에 줄 서던 시절이
불과 두 세대 전이었다.
이제 우리는 배불러도 남기지 못하고
손주에게 한 입 더 권하며
몸은 여전히 기근을 기억한다.
굶주림은 끝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사가 되고, 식탁이 되고,
다음 세대의 몸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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