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9월의 어느 따뜻한 아침, 찬드 알리 카마루는 한 줌의 쌀을 들고 8마일을 걸어 아버지에게 갔다. 쌀과 함께 그가 가진 것은 연못에서 건진 작은 우렁이를 끓인 국물과, 무쇠솥에 찐 토란 잎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한 줌의 쌀조차 소화하지 못하고 길가에서 숨을 거뒀다. 벵골의 작가 사일렌 사르카르가 기록한 이 증언은 1943년 벵골 대기근(Bengal Famine) — 벵골 사람들이 "판차셰르 아칼(Panchasher Akal)"이라 부르는 그 참사의 한 장면이다.
이 기근에는 한 가지 끔찍한 특징이 있다.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아홉 살 소년으로 이 기근을 직접 목격했고, 훗날 경제학자가 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었다 — 벵골 대기근은 식량 부족(food shortage)이 아니라 '권리의 실패(entitlement failure)'였다. 음식은 있었다. 단지 굶주린 사람들이 그것을 살 수 없었을 뿐이다.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정치의 산물이었다.
앞선 세 화에서 우리는 굶주림이 무엇을 발명했는지를 보았다. 이번 화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 기근은 누가 만드는가. 1943년 벵골에서 200만~300만 명이 죽었다. 쌀과 콩과 렌틸이 자라는 비옥한 땅에서. 이것은 굶주림의 음식이 아니라, 굶주림의 정치에 관한 이야기다.


기근에 대한 통념은 단순하다 —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이 굶는다. 그런데 아마르티아 센은 벵골 대기근을 분석하며 이 통념을 뒤집었다. 1943년 벵골에는 인구를 먹일 만큼의 식량이 있었다. 문제는 식량의 총량이 아니라 '누가 그 식량에 접근할 권리(entitlement)를 갖느냐'였다.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쌀값이 폭등하자, 어제까지 임금으로 쌀을 사 먹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 쌀을 살 수 없게 됐다. 음식은 시장에 있었지만 그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었다.
센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자유 언론과 선거가 있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굶주림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벵골 대기근이 일어난 것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 즉 벵골 사람들에게 투표권도, 자유 언론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굶주림은 식량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였다. 이 통찰로 센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영국의 '거부 정책'은 이 비극을 가속했다. 일본이 버마를 점령한 뒤, 영국은 벵골 해안에 일본군이 상륙해 식량을 이용할 것을 우려해 어선 수만 척과 잉여 쌀을 몰수했다. 그 결과 어민들은 생계 수단을 잃었고, 쌀을 운반할 배가 사라졌다. 침략을 막겠다는 명목의 초토화 정책이 자국 식민지 백성의 생존 기반을 먼저 파괴한 것이다. EP.2의 아일랜드처럼, 벵골에서도 천재(天災)는 방아쇠였을 뿐, 그것을 대참사로 키운 것은 식민 통치였다.

벵골 사람들에게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라 정체성이었다. 하루 필요 칼로리의 거의 전부를 쌀에서 얻었다. 그런데 이 절대적 의존이 기근 때 치명적 약점이 됐다. 쌀값이 폭등하자 다른 대안이 없었던 것이다. EP.2의 아일랜드가 감자 하나에 의존하다 무너진 것과 똑같은 구조였다. 비옥한 농업 지대 벵골에서, 비옥함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
기근의 참상은 음식의 위계를 뒤집었다. 평소 밥을 지을 때 넘쳐서 버리던 쌀뜨물(펜, phen)이, 1943년에는 가장 귀한 것이 됐다. 사람들은 쌀뜨물을 구걸하기 위해 지주의 집 앞에 줄을 섰다. 앞서 본 카마루의 증언에서,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구해온 한 줌의 쌀조차 소화하지 못하고 죽었다 — 너무 오래 굶은 몸은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쌀의 나라에서, 쌀이 손에 닿지 않아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쌀과 달(렌틸)을 함께 끓인 키츄리는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쌀의 탄수화물과 달의 단백질이 만나 영양이 균형 잡히고, 부드럽게 끓여 소화가 쉽다. 이 특성 때문에 키츄리는 오랫동안 환자식이자 종교 의례의 음식이었다. 그리고 1943년, 같은 이유로 기근 구호 캠프의 배급식이 됐다. 카마루가 기억하는 키츄리는 "묽고 죽 같은(limp, brothy)" 것이었다 — 굶주린 몸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대한 묽게 끓인, 생존을 위한 한 그릇.
달이 "가난한 자의 고기"라 불린 데는 이유가 있다. 고기를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렌틸과 콩은 핵심 단백질원이었다. 쌀만 먹으면 단백질이 부족하지만, 쌀에 달을 더하면 영양학적으로 완전 단백질에 가까워진다. 수천 년 동안 인도의 채식 인구를 지탱해온 지혜가 '달 바트(콩+밥)'였다. 기근은 바로 이 균형을 무너뜨렸다 — 쌀도, 달도 살 수 없게 된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연못의 우렁이와 토란잎뿐이었다.
흥미로운 역설도 있다. 키츄리는 식민지의 음식이었지만, 영국인들은 그것을 변형해 '케저리(kedgeree)'라는 아침 식사를 만들어 본국으로 가져갔다. 쌀과 생선과 달걀을 섞은 이 음식은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식탁에 올랐다. 벵골의 쌀을 수탈하던 제국이, 벵골의 음식은 사랑했다. 음식은 권력의 방향을 거슬러 흐르기도 한다.

| 착취 메커니즘 | 아일랜드 (EP.2, 1845) | 벵골 (1943) |
|---|---|---|
| 단일 작물 의존 | 빈농이 감자 단일 품종에 절대 의존 | 하루 칼로리의 거의 전부를 쌀에 의존 |
| 식량이 있는데 굶음 | 곡물이 자라는데 영국으로 수출됨 | 식량은 충분했으나 구매력 붕괴(센의 권리 실패) |
| 환금 작물 강요 | 귀리·밀이 지주의 수출 작물로 전환 | 쌀농사를 목화 등 환금 작물로 일부 대체, 자급력 약화 |
| 자유방임/정책 실패 | 레세페르 원칙으로 구호 최소화 | 처칠 내각의 식량 수입 요청 거부·축소 |
| "천재를 인재로" | "신이 역병을, 영국이 기근을 만들었다"(존 미첼) | 거부 정책으로 배·쌀 몰수 → 생계·운송 동시 파괴 |
EP.2의 아일랜드와 EP.4의 벵골은 100년의 시차를 두고 거의 동일한 문법을 반복한다. 같은 제국, 같은 구조 — 단일 작물에 의존하게 만들고, 식량이 있는데도 분배·접근의 실패로 굶기고, 위기 때 자유방임이나 군사 우선 정책으로 구호를 미룬다. 두 기근 모두에서 "천재(天災)는 방아쇠였고 인재(人災)가 방아쇠를 당겼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굶주림이 무엇을 발명하는지를 본 앞 화들과 달리, 이 화는 굶주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르티아 센의 결론은 그래서 묵직하다. 기근을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식량 증산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것. 굶주리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가 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사회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 벵골의 200만~300만 죽음은, 비옥한 땅에서도 권력이 외면하면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을 증언한다. 음식의 역사는 때로 정치의 역사다.

키츄리는 1943년 기근 구호 캠프에서 묽게 끓여 배급되던 음식이자, 인도 아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위로의 음식이다. 쌀과 렌틸을 함께 끓여 영양이 균형 잡히고 소화가 쉽다. 오늘날 인도·벵골 가정에서 비 오는 날,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지칠 때 끓여 먹는 한 그릇이다. 굶주림의 음식이 위로의 음식이 된 전형이다.
[향신료] 강황가루 1작은술 · 커민가루 1작은술 · 고춧가루 ½작은술 · 가람마살라 ½작은술 · 베이리프 1장 · 소금 적당량
[기름] 기(ghee) 또는 식용유 2큰술 + 마무리용 기 1큰술
1. 달 볶기 마른 팬에 무그 달(녹두)을 넣고 중불에서 2~3분 고소한 향이 날 때까지 볶는다(붉은 렌틸은 생략 가능). 쌀과 함께 씻어 둔다.
2. 향 내기 냄비에 기를 두르고 베이리프를 넣어 향을 낸 뒤, 양파와 생강을 넣어 황금빛이 될 때까지 볶는다. 토마토와 강황·커민·고춧가루를 넣고 기름이 분리될 때까지 볶는다.
3. 끓이기 씻은 쌀과 달, 감자, 완두콩을 넣고 가볍게 섞는다. 물 4컵과 소금을 넣고 끓인다. 끓으면 약불로 줄여 뚜껑을 덮고 20~25분, 쌀과 달이 푹 퍼져 죽처럼 될 때까지 끓인다. 물이 모자라면 추가한다.
4. 마무리 가람마살라를 뿌리고 기 1큰술을 올려 향을 더한다. 부드럽고 따뜻하게 낸다.
포인트 물의 양으로 농도를 조절한다 — 환자식이나 위로 음식으로는 묽게, 식사로는 되직하게. 1943년 구호 캠프의 키츄리는 굶주린 몸을 위해 아주 묽게 끓인 것이었다. 기를 넉넉히 쓰면 풍미가 살고, 채소를 더하면 영양이 좋아진다.

키츄리는 쌀과 콩만 있으면 어떤 변형도 가능한 음식이다. 무그 달(녹두)이 없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녹두나 붉은 렌틸로 대체하면 되고, 향신료가 부담스러우면 강황과 소금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맛이 난다. 사실 이 조합 — 쌀에 콩을 더해 단백질을 보충하는 방식 — 은 우리 콩밥과 본질적으로 같은 영양학적 지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난한 밥상은 곡물과 콩을 함께 담아 부족한 단백질을 메웠다. 몸이 지치거나 소화가 부담스러운 날, 키츄리 한 그릇을 묽게 끓여보길 권한다. 80년 전 누군가에게는 생존이었던 이 음식이, 오늘 우리에게는 가장 부드러운 위로가 된다.
| 주요 사실 | 한국어 참고 자료 | 영어·학술 참고 자료 |
|---|---|---|
| 1943년 벵골 대기근, 사망자 약 210만~300만 명, 당시 인구 약 6,030만 명 | 위키백과 "1943년 벵골 대기근"; 나무위키 "벵골 대기근" | Britannica, "Bengal famine of 1943"; Wikipedia, "Bengal famine of 1943" |
| 아마르티아 센의 '권리 실패(entitlement failure)' 이론 — 식량 부족이 아닌 분배·구매력 붕괴가 원인 | 아마르티아 센 관련 국내 경제학 문헌 | Amartya Sen, "Poverty and Famines" (Oxford, 1981); Britannica; Study.com "Bengal Famine of 1943" |
| 영국 '거부 정책(denial policy)' — 배·쌀 몰수. 버마 점령으로 쌀 수입 중단. 처칠 내각 식량 수입 거부 | 위키백과·나무위키 "벵골 대기근"; 한국경제 관련 기사 | Wikipedia, "Bengal famine of 1943" (Denial policies); IIAS "In Search of the Bengal Famine of 1943" |
| 벵골 쌀 의존(칼로리 대부분), 키츄리·달의 역사, 쌀뜨물(펜) 구걸, 우렁이·토란잎 기근 식량 | 관련 국내 식문화 자료 | Atlas Obscura "indian food writing"; The Ubyssey "Bengali food history"; brownhistory "Evolution of Bengali Cuisine" |
| 키츄리의 산스크리트 어원(khiccā), 가장 오래된 인도 음식. 영국 케저리(kedgeree)의 기원 | 관련 국내 음식사 자료 | Wikipedia, "Khichdi (dish)"; SlideShare "Story of the Origin of Some Foods in Bengal" |
시장에는 쌀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굶어 죽었다.
이것은 식량의 부족이 아니라
권리의 부족이었다.
소년은 한 줌의 쌀을 들고
여덟 마일을 걸어갔지만
아버지는 그 쌀조차 삼키지 못했다.
버려지던 쌀뜨물이
가장 귀한 것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안다 —
기근은 하늘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