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폭발의 여파로 성층권에 퍼진 화산재가 태양빛을 차단했고, 이듬해인 1816년 북반구 전역에 여름이 오지 않았다. 역사는 이 해를 "여름 없는 해(Year Without a Summer)"라고 부른다. 유럽과 북미의 곡물 작황이 처참하게 무너졌다. 스위스에서는 6월에도 눈이 내렸고, 뉴잉글랜드에서는 7월에 서리가 맺혔다. 굶주린 사람들은 들판으로 나갔다. 그들이 먹은 것은 쐐기풀, 야생 순무, 나무껍질로 만든 빵이었다.
기근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교사다. 인간이 오늘날 먹는 수많은 식재료들 중 상당수는 사실 굶주림이 발명한 것이다. 탄닌이 쓴 도토리를 물에 우려 묵으로 만드는 기술, 단단한 칡뿌리를 캐내어 녹말을 뽑는 방법, 쑥의 독한 향에 익숙해지며 봄철 허기를 채우는 지혜 — 이것들은 풍요로운 시절의 발명이 아니다. 벼랑 끝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이 땅에서 건져낸 것들이다.
이 시리즈는 기근이 인류의 식탁을 어떻게 바꿨는가를 따라간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에서 시작한다 — 인간은 굶어야 할 때 무엇을 먹었는가. 그리고 그 먹음이 오늘날 우리의 식탁 위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기근의 역사가들은 인간의 기근 대응을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첫째, 비상 식량 비축을 소비한다. 둘째, 가진 것을 팔고 사서 이주한다. 셋째, 그것도 없으면 먹을 수 없었던 것을 먹는다 — 야생 식물, 나무껍질, 뿌리. 이 세 번째 단계에서 인류의 식재료 목록이 확장됐다. 먹을 수 없다고 여겼던 것을 먹는 방법을 개발하면서, 독성을 제거하는 기술이 생겨났고, 새로운 맛과 조리법이 탄생했다.
도토리는 그 전형적인 예다. 도토리의 타닌(tannin)은 생으로 먹으면 강한 쓴맛과 함께 소화 장애를 일으킨다. 그러나 물에 장시간 담가 타닌을 용출시키면 먹을 수 있는 전분 덩어리로 변한다. 이 기술이 언제 발명됐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 다만 전 세계에서 독립적으로 발명됐다는 것을 고고학은 말해준다. 한반도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이베리아 반도의 청동기 유적에서도, 일본 조몬(縄文) 시대(기원전 14,000~기원전 300년)의 유적에서도 도토리를 가공한 흔적이 발견됐다. 굶주림이 동일한 해법을 각자에게 가르쳤다.

도토리가 쓴 것은 나무의 전략이다. 도토리 속 타닌은 동물이 마구 먹지 못하도록 방어하는 화학 무기다. 그러나 인간은 이 방어를 무력화하는 법을 알아냈다 — 물이다. 타닌은 수용성이라 물에 담그면 빠져나온다. 도토리를 찧어 가루 낸 뒤 찬물에 반복적으로 수침하면, 처음에는 검붉은 물이 빠져나오다가 점차 맑아진다. 이 과정이 끝난 도토리 전분으로 묵을 쑤면 부드럽고 은은한 향의 도토리묵이 된다.
이 기술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전 세계에서 독립적으로 동일한 해법이 발명됐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한반도 신석기 유적, 이베리아 철기시대 유적, 일본 조몬 시대 유적 모두에서 도토리를 가공한 흔적이 발견된다. 굶주림이 서로 다른 문명에 동일한 기술을 가르쳤다. 현대 영양학은 그 쓴맛의 원인이었던 타닌을 항산화 물질로 재평가한다. 기근의 먹거리가 건강식이 되는 데 수천 년이 걸렸다.
591년, 6세기 프랑크 왕국의 역사가 투르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Tours)는 "숲의 기근(forest famine)"을 기록했다. 홍수와 폭우로 밀 수확이 전멸하자, 사람들은 포도주 찌꺼기에 약초를 섞어 빵을 만들고 "진짜 음식"이라고 불렀으며, 일부는 숲으로 가서 도토리와 나무 뿌리를 먹었다. 이 기록은 도토리가 극한 상황에서만 쓰인 것이 아니라, 중세 유럽에서도 반복적인 기근 식품이었음을 보여준다. 조선에서도 사정은 같았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흉년이 들 때마다 도토리를 모아 굶주린 백성을 먹였다는 기록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도토리 (Acorn)
도토리(Acorn)탄닌과 전분이 빚어낸 겔화(Gelling)의 물리학극한의 떫은맛을 정제하여 얻어낸, 탄력적인 그물망 구조참나무 숲의 바닥을 뒹구는 자그마한 열매, 도토리(Acorn). 서양에서는 주로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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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는 단순히 배고픈 시기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다. 가을 수확한 쌀은 겨울을 나며 바닥나고, 여름 보리가 익기 전인 4~6월은 한 해 중 식량이 가장 부족한 때였다. 이 시기 한국 농촌 사람들이 기댄 것 중 하나가 칡이었다. 얼었던 땅이 풀리는 이른 봄, 삽과 괭이를 들고 야산에 올라 칡뿌리를 캐내는 것이 봄철 생존 루틴이었다. 칡뿌리를 찧어 녹말을 뽑고, 그 녹말로 죽을 끓이거나 떡을 만들어 먹었다. 쫄깃하고 달착지근한 칡의 맛은 그 시절 사람들에게 허기와 안도가 뒤섞인 맛이었다.
칡의 아이러니는 미국에서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1930~40년대 미국 농무부는 남부의 토양 침식을 막기 위해 칡을 대대적으로 심었다. 그러나 천적도, 기후적 제약도 없는 미국 남부에서 칡은 하루 30cm씩 자라며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남부를 먹어치운 덩굴(the vine that ate the South)"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칡은 생태계 교란종이 되었다. 역설적으로, 이 침략적 식물은 뿌리부터 잎까지 전부 식용이다. 한국에서 수천 년간 사람들의 목숨을 구한 그 식물이, 미국에서는 생태계를 잠식하는 적이 되어 무한정 자라고 있다.
오늘날 칡은 두 가지 얼굴로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칡즙·칡냉면·칡차로 소비되는 건강식품이고, 동의보감이 기록한 '술독 해소와 갈증 완화' 효능 덕에 숙취 해소 음료의 재료가 됐다. 한편 과도한 번식력 때문에 유해식물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배고팠던 시절 우리를 먹여 살린 식물과의 관계가 그렇게 복잡해졌다.


단군신화에서 쑥과 마늘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다. 신화학적으로는 인간화의 시험 재료지만, 식품사적으로 읽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 쑥이 100일간 끼니를 대신할 수 있는 식물로 신화 속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 경향신문의 분석처럼 "단군신화에서 쑥은 100일 동안 끼니를 대신하는 구황적 기능"을 갖는다. 이것은 한반도 사람들이 쑥을 얼마나 오랜 세월 비상식이자 생존 식물로 의지해왔는지를 신화의 언어로 보존한 것이다.
쑥이 구황 식물로 탁월한 이유는 생명력에 있다. 쑥은 폐허가 된 땅에서도 가장 먼저 자라는 식물이다. 한국어에서 "쑥대밭이 되었다"는 표현은 완전히 황폐해진 곳을 의미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쑥대밭은 가장 먼저 먹을 것이 생기는 곳이기도 하다. 가뭄과 추위,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이른 봄 가장 먼저 돋아나는 식물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보릿고개 전 가장 먼저 구할 수 있는 식재료였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봄이 올 때마다 들판에 나가 쑥을 뜯어왔다.
그리고 2015년, 중국 약학자 투유유는 개똥쑥(A. annua)에서 아르테미시닌이라는 성분을 발견·연구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아르테미시닌은 말라리아 치료에 혁명적인 효과를 보였다 — WHO가 가장 효과적인 말라리아 치료제로 선정한 성분이 바로 쑥에서 나왔다. 수천 년간 굶주린 사람들이 뜯어먹고, 뜸을 뜨고, 약으로 달여 마시던 식물이, 21세기에 다시 한번 인류를 구하는 약의 원천이 됐다.

| 음식 | 과거 (구황·빈곤식) | 현재 (위상) |
|---|---|---|
| 랍스터 | 북미 식민지 시대 죄수·빈민 음식. 바닷가에서 너무 흔해 거름으로도 사용 | 고급 해산물의 대명사. 레스토랑 메뉴 최상위권 |
| 굴 | 19세기 유럽·미국 노동자 거리 음식. 1페니 한 개씩 팔던 빈민 단백질 | 고급 레스토랑 전채. 샴페인 페어링 음식 |
| 도토리묵 | 조선 기근기 주식 대용. 쓴맛을 여러 번 우려내야 먹을 수 있는 궁핍의 음식 | 저칼로리 건강식. 한식 레스토랑 반찬·안주로 일상화 |
| 쑥떡 | 보릿고개 봄철 허기 달래기. 들에서 공짜로 뜯어다 만드는 생존식 | 봄 제철 전통음식. 건강식·선물 세트로 판매 |
| 칡냉면 | 기근 시 칡뿌리 녹말로 배를 채우던 임시 음식 | 강원·충청 향토 음식. 칡 성분의 건강 효과로 웰빙 식품화 |
음식의 위상은 고정돼 있지 않다. 기근식의 역사는 이것을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한때 굶주린 자들이 마지못해 먹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 고급 음식이 되고, 한때 왕족의 음식이 서민 음식이 된다. 이 역전의 요인은 다양하다 — 식량 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해당 식품이 희귀해지거나, 해당 식품의 영양·건강 효능이 재발견되거나, 도시화로 들에서 구하기 어려워지거나. 도토리묵이 오늘날 건강식이 된 것은 타닌의 항산화 효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굶주린 자들이 산에서 직접 주워 만들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근식의 또 다른 역설은 영양학적 재평가다. 굶주린 사람들이 먹었던 야생 식물들은 오늘날 현대 의학이 주목하는 성분들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쑥의 아르테미시닌이 말라리아 치료제가 됐고, 칡의 이소플라본이 갱년기 연구에 활용되며, 도토리의 타닌이 항산화 물질로 재조명된다. 기근이 인류를 실험실 삼아 발견하게 한 것들이 수천 년이 지나 과학의 이름으로 귀환하고 있다.


이 상차림 하나에 이번 화의 세 식재료가 모두 들어간다. 쑥 된장국은 봄철 보릿고개에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 먹던 방식이고, 도토리묵 무침은 탈삽 기술의 결과물이다. 칡냉면을 곁들이면 세 가지 구황식을 한 상에 차릴 수 있다. 굶주림이 발명한 것들이 오늘날 건강식 밥상이 됐다.
1. 쑥 손질 봄 어린 쑥순을 골라 물에 씻는다. 억세고 오래된 줄기는 뜸 재료로 별도 보관.
2. 국물 끓이기 멸치·다시마 육수가 끓으면 된장을 풀고 두부를 깍둑썰기해 넣는다.
3. 마무리 끓는 국에 쑥과 다진 마늘을 넣고 30초 이내로만 끓인다. 쑥의 향은 오래 가열하면 사라진다. 대파를 송송 썰어 올린다.
포인트 쑥 된장국은 5월 이전 어린 쑥순이 가장 향이 좋다. 여름 이후 쑥은 억세어 식용보다 약재용으로 적합하다.

1. 묵 준비 도토리묵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쓴맛이 강한 경우 찬물에 30분~1시간 담가 타닌을 추가 제거.
2. 양념 만들기 양념 재료를 모두 섞어 양념장 완성.
3. 무치기 묵에 양념을 넣고 가볍게 버무린다. 묵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구운 김을 부숴 얹고 쪽파를 송송 썰어 올린다.
포인트 도토리묵 특유의 쌉싸름한 뒷맛이 이 음식의 정체성이다. 완전히 없애려 하기보다 어느 정도 남기는 것이 맛있다.
쑥 된장국은 봄철 냉이 된장국과 함께 이 계절에만 제대로 즐길 수 있는 한국의 봄맛이다. 시장에서 쑥을 살 때는 잎 뒷면이 흰 솜털로 덮인 것이 쑥이고, 향이 진하고 줄기가 연할수록 좋다. 도토리묵은 시판 제품도 충분히 좋지만, 강원도 직거래 제품은 타닌이 덜 제거된 경우가 있어 쌉쌀한 맛이 더 강하다. 취향에 따라 선택하되, 그 쌉쌀함이 바로 선조들이 기근 속에서 우려낸 맛의 흔적임을 기억하면 어쩐지 음식이 다르게 느껴진다.

| 주요 사실 | 한국어 참고 자료 | 영어·학술 참고 자료 |
|---|---|---|
| 조선 전기 도토리가 가장 중요한 구황식물 1위. 『경국대전』·『구황촬요』 수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황식품" 항목 (encykorea.aks.ac.kr); 한식문화사전 "도토리" 항목 | Frontiers in Plant Science, "Ethnological approach to acorn utilization in prehistory: A case study of acorn mook making in South Korea" (PMC9623170, 2022) |
| 일본 조몬 시대(기원전 14,000~기원전 300년) 도토리 대규모 활용 | 일본 고고학 관련 국내 문헌 | Nutgeeks.com, "The History of Acorns" (nutgeeks.com); NIH PMC9738068, "Food Security beyond Cereals: Acorn Bread Heritage in Mediterranean and Middle East" |
| 쑥의 단군신화 등장 — 구황적 기능. 아르테미시닌으로 2015년 노벨생리의학상 | 경향신문 "[여적] 개똥쑥의 효능" (khan.co.kr, 2015); 한국식품영양학회지 "쑥의 생리활성 물질과 이용" | Nobel Prize 2015, Physiology or Medicine (Tu Youyou, Artemisinin). WHO Essential Medicine List: Artemisinin-based combination therapies |
| 칡: 콩과 다년생. 동의보감 기록(술독·갈증). 미국 남부 "the vine that ate the South" | 위키트리 "칡" 기사 (wikitree.co.kr); 그라디움 "칡즙 효능" (gradium.co.kr) | Survivopedia, "10 Ingenious Foods People Ate During Famines"; USDA kudzu records on invasive species history |
| 1816년 "여름 없는 해" — 탐보라 화산 폭발로 북반구 기근 발생 | 세계사 관련 국내 교양 서적 | Origins (Ohio State), "Famine: A Short History" (origins.osu.edu); Wikipedia, "Year Without a Summer" |
물에 담가 쓴맛을 기다리던 인내가
그것이 묵이 되어 상에 오를 때까지
굶주림은 창조의 어머니였다.
오늘 우리가 건강식이라 부르는 것들이
한때는 살기 위해
마지못해 먹었던 것들이다.
쑥의 쓴맛이 노벨상이 됐고
칡의 쫄깃함이 냉면이 됐고
도토리의 타닌이 항산화 물질이 됐다.
기근이 발명한 것들이
아직 우리 식탁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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