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 관찰사 남구만은 1671년, 집안 어른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굶어 죽은 시체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장차 살아남는 사람이 없게 생겼으니, 더 말씀드려 무엇 하겠습니까. 매일 밥상을 마주할 때마다 목에 바늘이 걸린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 경신대기근(庚辛大飢饉)의 기록이다. 1670년과 1671년 2년에 걸쳐 가뭄과 홍수가 겹쳐 조선 팔도가 동시에 흉작이 됐고, 당시 인구 1,600만 명 중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그리고 24년 뒤, 또 왔다. 1695년부터 1699년까지 을병대기근(乙丙大飢饉) — 이번에는 141만 명으로 집계된 인구 감소. 당시 조선의 사관 스스로 "기록된 사망자가 열에 두셋도 안 될 것"이라 인정했으니 실제 피해는 더 컸다. 두 번의 대기근 사이와 전후로도 크고 작은 흉년은 끊이지 않았다. 조선은 기근과 함께 500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 참혹한 역사가 한 가지 독특한 유산을 남겼다. 조선은 기근을 행정적으로 체계화했다. 굶주림에서 백성을 구하는 방법을 국가 차원에서 문서화하고 보급했다 — 『구황촬요(救荒撮要)』, 『구황벽곡방(救荒辟穀方)』, 그리고 『경국대전』의 비황조(備荒條). 어떤 식물이 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독성을 제거하는지, 무엇을 비축해야 하는지를 한글 언해본으로 펴내 백성들에게 배포했다. 굶주림의 지식이 국가 문서가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메밀막국수와 도토리묵은 그 문서들의 후손이다.


세계사에서 기근에 대한 대응은 대부분 사후적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기근을 예방하고 버티는 방법을 국가 문서로 만들어 백성들에게 배포했다 — 그것도 한글 언해본으로. 세종 때 시작된 구황서 편찬 사업은 명종 때 『구황촬요』 간행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단순히 어떤 식물이 먹을 수 있는지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영양실조로 쓰러진 사람을 소생시키는 응급법, 독성을 제거하는 구체적 조리법, 비상용 술 담그는 법까지 수록했다. 기아 대응 종합 매뉴얼이었다.
『경국대전』의 비황조(備荒條)는 더 적극적이었다. 백성들이 평소에 구황 물자를 해마다 비축하도록 의무화했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기근에 대비하는 것이 개인의 선택이 아닌 법적 의무가 된 것이다. 이 체계 안에서 도토리·칡·메밀·쑥 같은 식물들은 국가가 공인한 비상식량 목록에 오른 공식 구황 식재료가 됐다. 조선의 기근 기록이 오늘날 우리 식탁의 일부를 규정했다.

메밀의 가장 큰 강점은 속도였다. 흉년이 들어 봄 작물이 망했을 때, 여름에 씨를 뿌려 가을에 거둘 수 있는 작물이 필요했다. 대부분의 작물은 이 역할을 할 수 없었다 — 생육 기간이 너무 길었다. 메밀은 파종 후 10~12주면 수확된다. 7월 하순에 뿌리면 9~10월에 거둘 수 있다. 흉작이 확정된 순간, 농민들은 메밀 씨앗을 꺼냈다. 이것이 조선 구황서가 메밀을 핵심 긴급 구황작물로 지목한 이유다.
메밀의 또 다른 덕목은 척박한 땅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논농사가 불가능한 산간 경사지, 돌이 많은 밭에서도 자랐다. 강원도·함경도·평안도의 산간 지역이 메밀 문화권이 된 것은 이 이유에서다. 쌀농사가 어려운 땅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메밀은 생존의 곡물이었고, 그 생존의 곡물이 막국수와 냉면이라는 음식 문화로 꽃피었다.
메밀꽃은 희다. 1936년 이효석은 강원도 봉평의 메밀밭 야경을 "소금을 뿌린 듯이"라는 표현으로 담았다. 「메밀꽃 필 무렵」의 이 문장 하나가 메밀에게 새로운 운명을 부여했다. 배고픔의 곡물이 서정의 풍경이 됐다. 조선 시대 굶주린 사람들이 여름에 급히 심던 그 메밀이, 20세기 문학에서 달빛 아래 하얗게 피는 꽃으로 부활한 것이다.

도토리는 조선왕조실록에 되풀이 등장한다. 흉년이 들 때마다 조정은 도토리 수집을 명하고, 도토리 분배 현황을 보고받았다. 도토리가 곡식이 아닌 나무 열매임에도 국가 식량 관리 체계 안에 공식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것이 조선 기근 대응의 특징이었다 — 산에 자라는 것들을 단순히 개인이 먹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가 체계적으로 조직화했다.
도토리묵은 그 체계화의 산물이다. 쓴 도토리를 먹을 수 있게 만드는 탈삽 기술은 개인의 발명이었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글로 적어 전국에 배포한 것은 국가였다. 『구황촬요』에 수록된 도토리 처리법은 오늘날 도토리묵을 만드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같다 — 찧고, 물에 우리고, 끓여서 굳힌다. 수백 년의 기근 속에서 완성된 레시피가 현대의 주방으로 이어진 것이다.
묵(纆)이라는 음식 형태 자체도 구황의 발명이다. 전분을 물에 풀어 끓여 굳히면, 부피 대비 포만감을 주는 음식이 된다. 칼로리는 낮지만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쓴맛의 원료를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변환하는 기술, 그리고 그 기술로 만든 음식이 수백 년을 거쳐 일상 반찬이 됐다. 오늘날 막걸리 안주로 도토리묵을 집어먹을 때, 그 음식의 뿌리에는 참 오랜 굶주림이 있다.
도토리 (Acorn)
도토리(Acorn)탄닌과 전분이 빚어낸 겔화(Gelling)의 물리학극한의 떫은맛을 정제하여 얻어낸, 탄력적인 그물망 구조참나무 숲의 바닥을 뒹구는 자그마한 열매, 도토리(Acorn). 서양에서는 주로 돼지(
hanzoomworld.tistory.com
| 식재료 | 구황 시절 역할 | 오늘날 |
|---|---|---|
| 메밀 | 흉작 후 응급 대작. 파종 10~12주 만에 수확. 산간 흉작지 비상 식량 | 막국수·평양냉면·메밀전병. 봉평 메밀 축제. 글루텐 프리 건강 곡물 |
| 도토리묵 | 조선 전기 구황식물 1위. 흉년마다 국가 배급 품목. 탈삽 기술로 독성 제거 | 저칼로리 건강 반찬. 막걸리 안주. 강원도 향토 명물 |
| 쑥 | 보릿고개 봄철 최초 구황 식물. 단군신화에도 구황 역할로 등장 | 봄 된장국·쑥떡·쑥개떡. 건강 차. 강화약쑥 고급 약재 |
| 솔잎·송기(松肌) | 최후 수단의 구황식. 『구황촬요』에 솔잎 먹는 법 기록. 영양 보충 어려워 보조 역할 | 솔잎차·솔잎주. 향토 음식 소재. 구황식에서 건강·풍류 음식으로 |
| 칡 | 보릿고개 봄 구황 식물. 녹말 추출해 칡죽·칡떡 제조 | 칡즙·칡냉면·칡차. 이소플라본 건강 성분. 숙취 해소 음료 |
| 고구마·감자 | 조선 후기 신대륙 도입 구황작물. 고구마 1763년 조엄 도입, 감자 1825년 청나라 경유 | 주식에서 간식·부식으로 전환. 군고구마·찐감자 추억의 음식. 구황작물에서 일반 작물로 완전 편입 |
다산 정약용은 그의 농시(農詩)에서 보릿고개를 이렇게 묘사했다. "보릿고개 험하고 험해 태행산의 협곡 같네, 단오절이 지나야만 보리 수확이 시작되지." 단오(음력 5월)까지 버텨야 보리를 먹을 수 있다. 그 사이의 빈자리를 메밀과 도토리와 칡과 쑥이 채웠다. 정약용이 이것을 시로 썼다는 것은, 이 굶주림이 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었음을 말해준다.
조선이 기근을 체계화했다는 것의 의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그만큼 기근이 상수(常數)였다는 것 — 국가가 대비책을 법전에 새길 정도로 반복됐다. 다른 하나는 그 체계화가 오늘날 한국 식문화의 지층이 됐다는 것이다. 도토리묵과 막국수와 쑥떡과 칡냉면 — 이것들이 오늘날 한국 음식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된 배경에는, 수백 년의 굶주림 속에서 그것들을 먹는 방법을 익히고 전수한 사람들의 역사가 있다.


막국수는 이름 그대로 "막 만든 국수"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국수틀에 눌러 바로 김칫국물이나 육수에 말아 먹었던 것이 원형이다. 흉작이 든 해, 그나마 수확한 메밀로 끼니를 해결하던 방식이 강원도 산간 지역의 향토 음식이 됐다. 오늘날 막국수는 여름 별미이지만, 그 출발은 배를 채우기 위한 가장 단순한 한 그릇이었다.
[비빔 양념장] 고추장 1.5큰술 · 간장 1큰술 · 참기름 1큰술 · 식초 1큰술 · 설탕 1작은술 · 다진 마늘 1작은술 · 참깨 약간
[물막국수 육수] 동치미 국물 2컵 + 육수(멸치·다시마) 1컵 혼합. 냉장 보관해 차갑게 낼 것
1. 면 삶기 끓는 물에 메밀국수를 넣고 3~4분 삶는다. 메밀은 글루텐이 없어 너무 오래 삶으면 풀어진다. 삶은 즉시 찬물에 여러 번 헹궈 전분기를 제거하고 물기를 꼭 짠다. 이 냉각 단계가 메밀 조리의 핵심이다.
2. 비빔 버전 양념장 재료를 모두 섞는다. 냉각된 면에 양념장을 넣고 골고루 버무린다. 김치·오이 채·달걀 반으로 올린다.
3. 물막국수 버전 냉각된 면을 그릇에 담고 차가운 동치미+육수 혼합 국물을 붓는다. 고추장 한 술을 따로 내서 취향껏 풀어 먹는다. 오이 채와 달걀을 올린다.
포인트 메밀 함량이 높을수록 면이 거칠고 잘 끊어진다. 강원도 전통 막국수는 가위 없이 치아로 끊어 먹는다 — 그것이 메밀면의 식감이다. 동치미 국물은 새콤하고 시원해 여름 막국수의 맛을 완성한다.

막국수를 먹을 때 이효석의 문장 하나를 기억해보면 어떨까.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1936년 이 문장이 쓰이기 수백 년 전, 같은 봉평 메밀밭의 메밀은 흉작이 든 해 사람들의 목숨을 붙들어 매는 식물이었다. 메밀 함량 높은 막국수를 고를 때는 건면 포장지의 메밀 함량(40% 이상)을 확인하고, 면이 거뭇거뭇할수록 껍질이 많이 포함된 것으로 향이 강하다. 루틴이 혈압에 효과적이라는 연구가 있으니, 고혈압이 걱정되는 분들에게 막국수는 맛있는 예방식이 될 수도 있다.
| 주요 사실 | 한국어 참고 자료 | 영어·학술 참고 자료 |
|---|---|---|
| 경신대기근 1670~1671년, 사망자 100만 명 이상. 을병대기근 1695~1699년, 인구 감소 141만 명 | 위키백과 "경신 대기근"; 나무위키 "경신대기근"·"을병대기근"; 파이낸셜리뷰 (financialreview.co.kr) | KCI "17세기 중국과 조선의 기근과 국제적 곡물유통" (kci.go.kr) |
| 『구황촬요』명종 시기 진휼청 간행 한글 언해본. 구황식물 종류·조리법·응급처치 수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황촬요" (encykorea.aks.ac.kr); 우리역사넷 "구황작물" (history.go.kr)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황식품" 항목 |
| 메밀: 파종 10~12주 수확. 구황벽곡방·구황촬요 공식 기록. 발해 시기 탄화 메밀 출토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메밀"; 위키백과 "메밀"; 나무위키 "메밀" | 농촌진흥청 "우리 메밀" (rda.go.kr); 디지털강릉문화대전 "메밀" |
| 도토리묵의 신석기 유적 출토 및 조선 구황식 1위 위상. 도토리·감 동시 섭취 비권장(타닌 과잉) |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묵 역사 (kfr.or.kr); 디지털강릉문화대전 "도토리묵무침" | Frontiers in Plant Science, "Ethnological approach to acorn utilization in prehistory" (PMC9623170, 2022) |
| 고구마 1763년 조엄 도입, 감자 1825년 청나라 경유. 이전 대표 구황작물은 메밀·도토리·칡 | 나무위키 "구황작물"; 우리역사넷 "구황작물" | chaovietnam.co.kr "구황작물의 역사" |
어떤 풀이 먹힐 수 있는지,
어떻게 쓴맛을 빼는지,
기절한 사람을 어떻게 소생시키는지.
그 문서들이 한글로 인쇄되어
팔도 백성의 손에 쥐어졌다.
메밀은 흉년의 긴급 파종이었다가
달빛 아래 소금 뿌린 꽃밭이 됐고,
도토리는 쓴맛을 물에 우려낸 인내가
묵이라는 음식이 됐다.
굶주림의 기록이
오늘의 밥상이 됐다."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근이 바꾼 식탁 EP.5] 중국 대약진과 풀뿌리 요리 — 고구마·옥수수잎·나무껍질, 마오 시대 기근이 만든 민중 음식 (2) | 2026.06.13 |
|---|---|
| [기근이 바꾼 식탁 EP.4] 벵골 대기근과 식민지의 음식 정치학 — 쌀·콩·렌틸, 영제국의 식량 착취 구조 (0) | 2026.06.12 |
| [기근이 바꾼 식탁 EP.2]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역설 — 감자·귀리, 단작 붕괴가 미국 식문화를 바꾼 방식 (0) | 2026.06.09 |
| [기근이 바꾼 식탁 EP.1] 굶주림이 발명한 음식들 — 도토리·칡·쑥, 인류가 기근 앞에서 발견한 구황 식재료 (1) | 2026.06.08 |
| [종교가 바꾼 식탁 EP.8] 현대의 신성한 식탁 (0) | 202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