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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기근이 바꾼 식탁 EP.6] 전쟁과 기근, 레닌그라드의 900일 — 빵·톱밥·가죽, 포위된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 먹은 것들

by 소금꽃한스푼 2026. 6. 14.
 
기근이 바꾼 식탁 — 굶주림이 발명한 것들
Episode 6 / 8
전쟁과 기근, 레닌그라드의 900일
빵 · 톱밥 · 가죽 — 2차 대전 포위 속 도시가 살아남기 위해 먹은 것들
 

125그램. 손바닥에 올리면 작은 식빵 두 조각 남짓한 무게다. 1941년 11월, 레닌그라드 시민들에게 하루치로 주어진 빵의 양이 그것이었다. 그조차 진짜 빵이 아니었다 — 밀가루는 절반도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톱밥, 셀룰로오스, 목화씨 깻묵, 호수에서 건져 올린 썩은 밀이 채웠다. 한 덩이가 주는 열량은 약 300킬로칼로리. 사람이 하루를 살려면 2,000킬로칼로리가 필요하다. 레닌그라드 시민들은 그 7분의 1로 겨울을 났다.

독일군은 총과 포탄이 아니라 굶주림을 무기로 선택했다. 1941년 9월 8일부터 1944년 1월 27일까지, 약 872일 — 흔히 "900일"이라 불리는 — 동안 나치 독일은 레닌그라드를 완전히 포위했다. 도시를 점령하는 대신 굶겨 죽이기로 한 것이다. 식량도, 연료도, 전기도 끊겼다. 그 겨울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떨어졌다.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주로 굶주림으로 죽었다. 현대 도시에서 벌어진 단일 사건 중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비극이었다.

앞선 화들의 기근은 흉작이거나(EP.1~3), 식민 통치였거나(EP.4), 정책 실패(EP.5)였다. 레닌그라드의 기근은 다르다 — 그것은 명백한 전쟁 무기였다. 굶주림을 일부러 만들어 적을 항복시키려는 의도된 봉쇄. 이번 화는 그 인위적 굶주림 속에서 한 도시가 무엇을 먹으며, 무엇을 지키며 살아남았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가죽을 끓이고 벽지를 긁어먹으면서도, 어떤 이들은 먹을 수 있는 씨앗 수십만 종을 끝내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레닌그라드 봉쇄는 처참한 결과를 만들었다 - 출처 : https://www.france24.com/en/europe/20210908-an-unprecedented-humanitarian-catastrophe-the-siege-of-leningrad-80-years-on

📜 역사
레닌그라드 포위전 — 굶주림을 무기로 쓴 900일
레닌그라드 포위전(1941~1944) 기본 정보
기간과 규모1941년 9월 8일~1944년 1월 27일, 약 872일(흔히 "900일"). 나치 독일 북부 집단군이 도시를 완전 포위. 민간인 사망 약 100만~110만 명(대부분 아사·동사·질병). 현대 도시 단일 포위 사건 중 최대 사망. 스탈린은 1945년 레닌그라드에 "영웅 도시" 칭호 부여
의도된 굶주림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점령하지 않고 굶겨 없애기로 결정 — 시가전의 손실을 피하고 도시를 지도에서 지우려는 의도. 식량·연료·전기 공급선을 모두 차단. 굶주림을 전쟁 무기로 사용한 전형. EP.4~5의 '인재(人災)'를 넘어 '의도적 학살'에 가까운 성격
빵 배급의 추락1941년 9월부터 다섯 차례 배급 삭감. 11월 20일 최저점 — 육체노동자 250g, 그 외 시민·아동·노인 125g. 125g의 열량은 약 300kcal로 생존 필요량(2,000~2,500kcal)의 7분의 1 수준. 배급 카드를 잃거나 도둑맞으면 곧 죽음을 의미했다
생명의 길(Road of Life)라도가(Ladoga) 호수가 유일한 외부 통로. 여름엔 배, 겨울엔 얼어붙은 호수 위로 트럭·썰매가 식량을 날랐다. 독일군의 폭격과 얇은 얼음으로 수많은 차량이 호수에 빠졌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 길로 약 140만 명의 시민(주로 여성·아동)이 소개됐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
타냐의 일기11세 소녀 타냐 사비체바(Tanya Savicheva)는 가족이 한 명씩 죽어가는 것을 짧은 일기로 기록했다. "모두 죽었다. 타냐만 남았다." 타냐 자신도 소개 후 병으로 사망. 그 일기는 레닌그라드 비극의 상징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에 전시
전략적 의미레닌그라드가 끝내 항복하지 않은 것은 전쟁의 향방을 바꿨다. 도시를 포위한 독일 북부 집단군이 묶이면서 모스크바 방면 전력이 분산됐다. 만약 레닌그라드가 함락됐다면 독소전쟁의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평가. 굶주림을 견딘 것이 곧 저항이었다
굶주림이 무기가 될 때 — 의도된 기근

레닌그라드의 기근은 이 시리즈에서 다룬 다른 기근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흉작도, 역병도, 정책 실패도 아니었다. 그것은 적을 굶겨 죽이려는 의도된 전략이었다. 히틀러는 레닌그라드를 시가전으로 점령하면 막대한 손실이 따를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른 길을 택했다 — 도시를 완전히 둘러싸고, 아무것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기다리는 것. 굶주림이 총알을 대신했다.

EP.4의 벵골에서 아마르티아 센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레닌그라드는 그 명제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한다 — 굶주림은 무지나 실수의 결과일 뿐 아니라, 의도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 포위 공격(siege)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술 중 하나이며, 그 본질은 언제나 식량 차단이었다. 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투석기가 아니라 굶주림이었다. 레닌그라드는 그 고대의 전술이 20세기 산업 도시에 적용됐을 때 어떤 규모의 비극이 되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도시는 항복하지 않았다. 라도가 호수 위 '생명의 길'로 가느다란 보급이 이어졌고, 시민들은 공원과 마당에 채소를 심었으며, 공장은 포격 속에서도 돌아갔다. 굶주림을 견디는 것 자체가 저항이었다. 그리고 그 저항에는 전략적 무게가 있었다 — 레닌그라드를 포위한 독일군이 그곳에 묶이면서, 다른 전선의 압박이 줄었다. 한 도시가 굶주림을 견딘 것이 전쟁 전체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다.

고립된 그들은 식량이 없었다 - 출처 : https://www.opendemocracy.net/en/scraping-off-syrup-siege-of-leningrad-seventy-years-on/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갔다 - 출처 : https://www.theguardian.com/books/gallery/2011/sep/15/siege-leningrad-history-anna-reid

🍞 식재료 1
블로카드니 흘레브 — 절반이 톱밥이었던 '봉쇄의 빵'
봉쇄의 빵(Blokadny khleb) 기본 정보
배급량의 변화포위 직전 노동자 600g → 9~11월 다섯 차례 삭감 → 11월 20일 최저: 노동자 250g, 비노동자·아동·노인 125g. 빵이 거의 유일한 공식 식량이었다. 도시는 처음부터 한두 달치 식량밖에 없었고, 봉쇄가 길어지며 '빵의 부피를 늘리는' 것이 생존의 과제가 됐다
무엇으로 만들었나밀가루(호밀가루)는 절반 이하. 나머지: 식용 셀룰로오스(목재에서 추출), 톱밥, 목화씨 깻묵(면실박), 옥수수·보리 겨, 호수에 침몰한 수송선에서 건진 썩은 밀. 일부 시기엔 셀룰로오스가 빵 무게의 절반 이상을 차지 — 영양이 아니라 '씹을 것'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다
열량의 산수125g의 봉쇄 빵 = 약 300kcal. 성인 하루 필요 열량 2,000~2,500kcal의 약 7분의 1. 셀룰로오스는 인간이 소화할 수 없어 실제 흡수 열량은 더 낮았다. 사람들은 빵을 한 번에 먹지 않고 부스러기까지 아껴 하루 종일 나눠 먹었다 — 빵을 다루는 의식(儀式)이 생겨났다
배급 카드배급은 카드(ration card)로 통제됐다. 카드를 잃거나 도둑맞으면 재발급이 사실상 불가능 — 곧 죽음을 의미했다. 카드 절도, 사망자의 카드를 숨기고 배급을 타는 일도 벌어졌다. 빵 한 조각이 생사를 가르는 화폐가 됐다
기억의 음식봉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봉쇄의 빵'은 평생의 기억이 됐다. 러시아에서는 매년 1월 27일(봉쇄 해제일) '봉쇄의 빵 125g'을 나누는 추모 행사를 연다. EP.7에서 다룰 '기근의 음식 기억'이 가장 의례화된 사례 — 빵 한 조각이 국가적 기억의 상징이 됐다
EP.3·5와의 연결나무에서 무언가를 뽑아 빵에 넣는 것은 EP.3 조선의 송기(松肌, 소나무 속껍질), EP.5 중국의 나무껍질과 같은 문법. 셀룰로오스 빵은 그 산업적 버전이었다 — 도시는 산에서 나무껍질을 벗기는 대신, 공장에서 목재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빵에 섞었다
빵의 부피를 늘려라 — 굶주림의 산업적 대응

레닌그라드의 빵은 EP.3 조선이나 EP.5 중국의 구황식과 같은 원리를 따랐다 — 먹을 수 없는 것을 섞어 부피를 늘리는 것. 다만 방식이 달랐다. 조선의 농민이 산에서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가루에 섞었다면, 레닌그라드는 공장에서 목재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빵 반죽에 넣었다. 같은 굶주림의 문법이 농촌에서는 손으로, 산업 도시에서는 기계로 구현된 것이다. 호수에 침몰한 수송선에서 잠수부가 건져 올린 썩은 밀까지 빵이 됐다.

이 빵의 무게 125그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루의 생사를 가르는 경계였다. 사람들은 빵을 한 번에 삼키지 않았다 — 작은 조각으로 나누어 하루 종일 아껴 먹었고, 떨어진 부스러기 하나도 손끝으로 눌러 집어 입에 넣었다. 빵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 됐다. 배급 카드를 잃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기에, 카드를 둘러싼 절도와 비극도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 러시아에서는 매년 1월 27일, 봉쇄가 풀린 그날을 기리며 시민들에게 '봉쇄의 빵 125그램'을 나눠준다. 톱밥이 섞인 그 거친 빵 조각은 이제 음식이 아니라 기억이다. EP.7에서 우리는 기근을 겪은 사회가 음식에 어떤 기억을 새기는지 보게 될 텐데, 레닌그라드의 빵은 그 가장 의례화된 형태다 — 한 조각의 빵이 한 도시의 영웅적 저항을 상징하는 국가적 기억이 됐다.

억지로 부피를 늘린 빵 - 출처 : https://www.38rus.com/more/110228
봉쇄의 빵 125그램 - 출처 : http://www.rewizor.ru/news/po-125-gramm-blokadnogo-hleba-razdadut-v-buryatii/

🥾 식재료 2
가죽과 풀 — 신발을 끓이고 벽지를 긁어먹다
봉쇄 속 비상 식량 기본 정보
가죽 젤리가죽 벨트·신발·가방을 오래 끓이면, 가죽을 무두질할 때 쓴 동물성 콜라겐이 녹아 젤리 형태가 됐다. 약간의 단백질과 열량을 얻을 수 있었다. 가죽 특유의 악취와 무두질 화학물질 때문에 끔찍한 맛이었지만, 생존자들이 평생 기억하는 '음식'이 됐다
벽지풀과 목공풀당시 벽지를 붙이던 풀(접착제)은 감자·곡물 전분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벽에서 벽지를 떼어내 풀을 긁어 물에 끓여 멀건 죽으로 먹었다. 책 제본용 풀, 목공용 아교도 같은 방식으로 소비됐다 — 전분과 동물성 젤라틴이 미량의 열량원이 됐다
솔잎과 비타민 C장기 영양실조로 괴혈병(비타민 C 결핍)이 돌자, 당국은 소나무·전나무 솔잎을 끓여 비타민 C를 추출해 배급했다. 쓰고 떫었지만 잇몸 출혈과 괴혈병을 막았다. EP.1 조선의 쑥·솔잎과 같은 '약이 된 구황식'의 사례 — 영양이 아니라 특정 결핍을 막기 위한 식물
동물과 도시 채집반려동물·쥐·새·곤충까지 식량이 됐다. 1941~42년 겨울, 도시의 개·고양이가 거의 사라졌다. 공원·마당·공터에는 양배추 등 채소를 심었다 — '생명의 길'로 들어온 종자로 도시 농업이 시작됐다. EP.4 벵골의 우렁이·토란잎, EP.5 중국의 야생 채소와 같은 보편 문법
두란다(Duranda)해바라기·아마(린넨) 씨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깻묵(oil-cake). 본래 가축 사료였으나 봉쇄 중 귀한 식량이 됐다. 약간의 단백질과 지방이 남아 있어 떡처럼 뭉쳐 구워 먹었다. EP.4 벵골의 '가난한 자의 고기' 콩처럼, 버려지던 부산물이 단백질원이 된 사례
먹을 수 없는 것의 경계EP.5 중국의 관음토처럼, 레닌그라드에서도 영양이 전혀 없는 것을 삼키는 단계가 있었다. 가죽·풀·셀룰로오스는 미량의 열량이라도 있었지만, 그 너머는 죽음이었다. 굶주림의 막바지는 어느 문명에서나 같은 경계에 다다른다
콜라겐 한 줌을 위하여 — 가죽을 끓이는 화학

신발을 끓여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절박함의 상징이 아니라 나름의 화학이었다. 가죽은 동물 가죽을 무두질해 만든 것이고, 그 안에는 콜라겐 — 동물성 단백질 — 이 남아 있다. 오래 끓이면 콜라겐이 젤라틴으로 분해되어 젤리 형태가 되고, 약간의 단백질과 열량을 얻을 수 있다. 곰탕을 오래 끓이면 국물이 걸쭉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맛은 끔찍했다. 무두질에 쓴 화학물질과 가죽 냄새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그 한 줌의 콜라겐이 누군가를 하루 더 살게 했다.

벽지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벽지를 붙이던 풀은 감자나 곡물 전분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벽에서 벽지를 떼어 풀을 긁어내 물에 끓였다. 책 제본용 풀, 목공용 아교까지 같은 방식으로 소비됐다 — 전분과 동물성 젤라틴이라는, 미량이지만 진짜 열량원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굶주린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무엇에 열량이 있는가'를 알아냈다. 그것이 EP.5의 관음토(흙)와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이다. 흙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가죽과 풀에는 적어도 무언가가 있었다.

괴혈병이 돌자 당국은 솔잎을 끓여 비타민 C를 추출해 배급했다. 쓰고 떫었지만 잇몸 출혈을 막았다. 이것은 EP.1에서 본 조선의 쑥과 솔잎, 즉 '약이 된 구황식'의 또 다른 사례다. 굶주림 속에서 인간은 칼로리만이 아니라 특정 영양소의 결핍과도 싸워야 했고, 그 싸움에서도 식물이 답이 됐다.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공원과 마당에 양배추를 심었다 — '생명의 길'로 들어온 종자로 시작한 도시 농업이었다. 포위된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먹을 것을 직접 길러내기 시작했다.

굶주림에 지친 그들에게 신발 가죽은 하나의 식량이었다 - 출처 : https://burdastyle.ru/stati/chto-sdelat-iz-starykh-kozhanykh-sapog-12-potryasayushchikh-idey-/
솔잎으로 괴혈병을 막았다 - 출처 : https://ru.dreamstime.com/photos-images/%D1%85%D0%B2%D0%BE%D1%8F-%D0%BC%D0%BE%D0%BB%D0%BE%D1%82%D0%B0%D1%8F.html

🌱 씨앗을 지킨 사람들
바빌로프 종자은행 — 먹을 수 있는 씨앗을 지키며 굶어 죽다

레닌그라드에는 세계 최초의 종자은행이 있었다.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Nikolai Vavilov)가 5개 대륙을 돌며 수집한, 18만 7천여 종의 씨앗과 덩이줄기. 쌀, 밀, 옥수수, 콩, 감자 — 그곳은 인류 식량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존한 보물 창고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가득했다. 쌀자루, 감자, 곡물이 톤 단위로 쌓여 있었다.

봉쇄가 시작되자 바빌로프 연구소(식물산업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 이 씨앗을 먹고 살 것인가, 아니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지킬 것인가. 그들은 지키기로 했다. 과학자들은 창문을 막고 연구소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굶주린 시민과 독일군으로부터 종자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쌀과 감자에 둘러싸인 채, 그것을 먹지 않고 한 명씩 굶어 죽어갔다. 쌀 담당 과학자, 감자 담당 과학자, 땅콩 봉지를 손에 쥔 과학자... 아홉 명, 혹은 그 이상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왜 그랬을까. 바빌로프가 평생을 바쳐 막으려 한 것이 바로 기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미래의 기근을 막을 열쇠라고 믿었다 — EP.2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이 단일 품종 의존 때문에 일어났듯이, 다양한 종자를 보존하는 것이 인류를 굶주림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정작 바빌로프 본인은 스탈린의 눈 밖에 나 1943년 감옥에서 굶어 죽었다. 기근을 막으려던 사람이 기근으로 죽고, 그의 제자들이 씨앗을 지키려 굶어 죽었다. 그들이 지킨 종자은행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현대 농업과 세계 종자 보존의 토대가 됐다.

니콜라이 바빌로프 - 출처 : https://www.themarginalian.org/2023/03/08/nikolai-vavilov/
바빌로프 종자은행 - 출처 : https://ru.wikipedia.org/wiki/%D0%92%D1%81%D0%B5%D1%80%D0%BE%D1%81%D1%81%D0%B8%D0%B9%D1%81%D0%BA%D0%B8%D0%B9_%D0%B8%D0%BD%D1%81%D1%82%D0%B8%D1%82%D1%83%D1%82_%D1%80%D0%B0%D1%81%D1%82%D0%B5%D0%BD%D0%B8%D0%B5%D0%B2%D0%BE%D0%B4%D1%81%D1%82%D0%B2%D0%B0_%D0%B8%D0%BC%D0%B5%D0%BD%D0%B8_%D0%9D._%D0%98._%D0%92%D0%B0%D0%B2%D0%B8%D0%BB%D0%BE%D0%B2%D0%B0
📌 EP.2와의 연결

EP.2에서 우리는 아일랜드 대기근이 단일 품종(럼퍼 감자)에 의존한 탓에 일어났음을, 그리고 그 교훈이 노르웨이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 같은 현대 종자은행으로 이어졌음을 보았다. 바빌로프의 종자은행은 그 모든 종자 보존 운동의 출발점이었다. 굶주림 속에서 씨앗을 먹지 않고 지킨 과학자들의 희생이, 미래의 굶주림을 막는 인류의 보험이 됐다. 한 기근에서 배운 교훈이 다른 기근의 한복판에서 지켜진 것이다.


🍽️ 이번 화의 한 접시
호밀흑빵 — 봉쇄의 빵을 기억하는 진짜 빵 한 조각

봉쇄의 빵(블로카드니 흘레브)은 톱밥과 셀룰로오스가 절반이었기에 그대로 재현할 수도, 재현해서도 안 되는 음식이다. 대신 그 빵이 본래 되었어야 할 모습 — 러시아의 전통 호밀흑빵(rye bread) — 을 만들어본다.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봉쇄 전 먹던, 그리고 봉쇄 후 다시 먹게 된 진짜 빵이다. 거칠고 묵직하고 시큼한 이 빵 한 조각의 무게를 손으로 느끼며, 125그램이 어떤 의미였는지 가늠해보는 것 — 그것이 이 레시피의 목적이다.

간단 호밀흑빵 (No-knead Rye)
재료 (작은 빵 1덩이): 호밀가루 200g · 통밀가루 또는 강력분 100g · 물 230ml(미지근한 것) · 드라이이스트 3g · 소금 5g · 당밀 또는 꿀 1큰술 · (선택) 캐러웨이씨 1작은술 · 코리앤더씨 약간

1. 반죽 미지근한 물에 이스트와 당밀(꿀)을 풀어 5분 둔다. 호밀가루·밀가루·소금·캐러웨이씨를 섞은 뒤 이스트 물을 부어 주걱으로 섞는다. 호밀은 글루텐이 약해 끈적이는 반죽이 정상 — 치대지 않아도 된다.

2. 1차 발효 그릇을 덮어 따뜻한 곳에서 1~1.5시간, 부피가 1.5~2배 될 때까지 발효한다.

3. 성형·2차 발효 반죽을 둥글게 모아 유산지 깐 틀이나 팬에 올린다. 40분 더 발효한다. 윗면에 물을 살짝 바르고 코리앤더씨를 뿌린다.

4. 굽기 200℃로 예열한 오븐에서 35~40분 굽는다. 두드렸을 때 빈 소리가 나면 완성. 완전히 식힌 뒤 썰어야 속이 질지 않다.

포인트 호밀빵은 갓 구운 것보다 하루 지난 것이 풍미가 깊다. 버터나 치즈, 청어 절임과 잘 어울린다. 한 조각을 125g 잘라 손에 올려보면 — 그것이 한 사람의 하루 전부였다는 사실이 다르게 다가온다.

호밀흑빵 - 출처 : https://www.karenskitchenstories.com/2013/01/no-knead-rye-bread.html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호밀흑빵은 만들기 쉬우면서도 한국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빵이다. 호밀가루 비율이 높을수록 묵직하고 시큼하며 소화도 천천히 된다 — 그래서 적은 양으로도 오래 든든하다. 봉쇄 시절 레닌그라드 사람들이 빵 한 조각을 하루 종일 나눠 먹었던 것은 단지 양이 적어서만이 아니라, 호밀빵 특유의 묵직한 포만감 덕분이기도 했다. 캐러웨이씨를 넣으면 특유의 향이 살아난다. 빵을 다 구웠다면, 한 조각을 저울에 올려 125g을 재어보길 권한다. 손바닥 위의 그 작은 무게가, 한 도시가 900일을 버틴 하루치 전부였다. 음식을 남기지 않는 가장 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 팩트 체크
주요 내용 검증 — 참고 문헌
주요 사실 한국어 참고 자료 영어·학술 참고 자료
레닌그라드 포위전 1941.9.8~1944.1.27(약 872/900일), 민간인 사망 약 100만~110만 명 위키백과 "레닌그라드 포위전"; 한국일보 "레닌그라드 872일간의 저항" History.com "The Siege of Leningrad"; Wikipedia "Siege of Leningrad"
빵 배급 125g(비노동자)/250g(노동자), 톱밥·셀룰로오스·목화씨 깻묵 혼합. 125g ≈ 약 300kcal 위키백과 "레닌그라드 포위전"; 남북경협뉴스 봉쇄 식량 기사 Wikipedia "Effects of the Siege of Leningrad"; History.com; Pravda EN
가죽·벽지풀·솔잎(비타민C)·동물·두란다(깻묵) 식용. 라도가 호수 '생명의 길' 남북경협뉴스; 인천투데이 "독소전쟁 900일 봉쇄" Bushcraft Buddy; Wikipedia "Road of Life"; Wikipedia "Effects of the Siege of Leningrad"
바빌로프 종자은행(18.7만 종) 보호하며 과학자 다수 아사. 바빌로프 본인 1943년 옥사 관련 국내 과학사 자료 Washington Post (1992); Russia Beyond; Science History Institute "The Tragedy of the World's First Seed Bank"
타냐 사비체바의 일기. 매년 1월 27일 '봉쇄의 빵 125g' 추모 행사 한국일보 "레닌그라드 872일간의 저항"(타냐 일기) Wikipedia "Tanya Savicheva"; 러시아 봉쇄 추모 관련 보도
" 모두 죽었다. 타냐만 남았다. — 타냐 사비체바(Tanya Savicheva), 11세, 레닌그라드 봉쇄 중 가족의 죽음을 기록한 일기에서
기근이 바꾼 식탁 EP.6 — 소금꽃한스푼
"하루에 빵 백이십오 그램.
그 절반은 톱밥이었다.

사람들은 신발을 끓였고
벽에서 풀을 긁어냈고
솔잎을 달여 괴혈병과 싸웠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쌀과 감자에 둘러싸인 채
그것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
먼 훗날의 굶주림을
막기 위한 씨앗이었기에.

굶주림은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기 앞에서도
사람은 내일을 위해
한 줌의 씨앗을 지킬 수 있다."
 
소금꽃한스푼 — hanzoomworld.tistory.com
SERIES
기근이 바꾼 식탁 (전 8화)
EP.1 굶주림이 발명한 음식들 / EP.2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의 역설 / EP.3 조선의 흉년과 구황 음식 / EP.4 벵골 대기근과 식민지의 음식 정치학 / EP.5 중국 대약진과 풀뿌리 요리 / EP.6 전쟁과 기근, 레닌그라드의 900일 / EP.7 기근 이후, 배고팠던 나라들의 과식 문화 / EP.8 21세기의 기근, 기후와 식탁의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