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십자군과 향신료 EP.4] 십자군 왕국의 식탁 — 쌀·가지·레몬이 지중해를 건넌 이야기

by 소금꽃한스푼 2026. 4. 20.

2026.04.18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2)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2)

2026.04.17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1)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1)1화 — 클레르몽의 외침, 그리고 굶주린 유럽1095년 11월

hanzoomworld.tistory.com

2026.04.19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3)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3)

2026.04.17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1)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1)1화 — 클레르몽의 외침, 그리고 굶주린 유럽1095년 11월

hanzoomworld.tistory.com

4화 — 십자군 국가 시대, 프랑크인이 중동에 정착하다

1100년. 예루살렘 왕국.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1099년 7월,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원정에 참가했던 기사의 절반 이상이 유럽으로 돌아갔다. 신에게 한 서원을 지켰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일부는 남았다. 고드프루아 드 부용은 예루살렘의 통치자로 남았고 — 그는 "왕"이라는 칭호를 거부하고 "성묘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 그의 동생 보두앵은 에데사를 차지했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를 기반으로 삼았다.

그렇게 중동 땅에 유럽인들의 국가들이 생겨났다.

역사는 이것을 **십자군 국가(Crusader States)**라고 부른다 — 예루살렘 왕국, 안티오키아 공국, 에데사 백국, 트리폴리 백국. 이 국가들은 약 200년 동안,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의 정확한 접경에서 존재했다.

그 접경에서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적이었던 사람들이 이웃이 됐다.

Crusader States - https://epicworldhistory.blogspot.com/2013/07/latin-states-of-crusades.html


프랑크인이 된 기사들 — 동화와 저항 사이에서

중동에 눌러앉은 프랑크인(십자군 국가의 유럽 정착민들을 아랍인들은 통틀어 "프랑크"라고 불렀다)들은 처음엔 유럽의 방식을 고집했다. 두꺼운 철 갑옷, 기름진 고기 위주의 식사, 포도주.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여름은 유럽과 달랐다.

7월의 예루살렘은 40도에 육박한다. 철 갑옷 안에서 사람이 익는 날씨였다. 현지인들이 입는 헐렁한 면 가운과 린넨을 처음에는 경멸했던 기사들이, 두 번째 여름을 맞을 때쯤 은밀히 그것을 걸치기 시작했다. 세 번째 여름에는 공개적으로 입었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12세기 십자군 국가의 연대기 작가 티레의 기욤(William of Tyre)은 오랫동안 이 땅에 정착한 프랑크인 2세대를 이렇게 묘사했다 — 그들은 현지인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랍어를 배웠고, 현지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고, 아랍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었다.

그 음식의 중심에 세 가지 식재료가 있었다 — 쌀(rice), 가지(eggplant), 레몬(lemon).

Guillaume Archevesque de Tyr - https://www.abebooks.co.uk/art-prints/Guillaume-Archevesque-Tyr-William-Tyre-c.1130-1186/31136364051/bd


쌀 — 유럽 기사가 밥을 먹기까지

유럽에도 쌀은 있었다. 아랍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들여온 것이 7~8세기의 일이었고, 시칠리아에도 아랍 통치 시기에 쌀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유한 상인의 식탁에나 오르는 사치품이었다 — 약재와 향신료처럼 취급되던 희귀한 곡물.

십자군 국가에서 쌀은 달랐다. 거기서 쌀은 일상이었다.

쌀(rice, Oryza sativa)의 기원은 기원전 7000~5000년경 중국 양쯔강 유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도를 거쳐 페르시아로, 페르시아에서 아랍 세계로. 7세기 이슬람의 팽창과 함께 쌀 재배는 중동 전역으로 퍼졌다. 요르단 계곡의 관개 농업, 나일강 삼각주의 논. 이 지역들에서 쌀은 밀이나 보리와 함께 주식의 자리를 나눠 가졌다.

프랑크 기사들이 처음 쌀을 먹게 된 건 전쟁터에서였다. 포위된 도시에서 버텨야 할 때, 현지 주민들이 먹는 것을 같이 먹었다. 공성전 중에 이데올로기는 사치였다. 끓인 쌀에 올리브오일을 뿌린 것, 야채를 섞어 만든 죽. 배가 고픈 사람은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진짜 혁명은 그 다음이었다.

십자군 국가가 안정되면서, 프랑크인들은 현지 요리사를 고용했다. 아랍 요리사들이 만드는 쌀 요리를 먹었다. 그리고 그 맛을 알게 됐다.

아랍 세계의 쌀 요리는 단순하지 않았다. 고기와 함께 끓이고, 향신료를 넣고, 견과류를 얹었다. 카부사(Kabsa), 마클루바(Maqluba), 무잠마르(Mujammar). 쌀이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요리 그 자체인 문화였다.

프랑크 기사들은 이 요리 방식을 유럽으로 가져갔다.

12세기 이후 이탈리아 북부와 스페인에서 쌀 재배가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그 쌀로 만든 요리가 시간이 흐르며 **리조토(risotto)**와 **파에야(paella)**의 원형이 된다. 파에야의 이름조차 아랍어 "바키야(baqiyya, 남은 것)"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다 — 남은 재료를 한 냄비에 넣어 볶는 조리법.

쌀은 기사들의 무기가 아니라 그릇에서 유럽으로 건너왔다.

https://azifi.tz.agrar.uni-goettingen.de/agreg-snpdb-plants/snps.php?page=species_Oryza_sativa_Indica


가지 — 유럽이 오래도록 거부했던 채소

가지(eggplant, aubergine, Solanum melongena)의 역사는 이상하게 꼬여 있다.

원산지는 인도다. 기원전 2500년경부터 인도 아대륙에서 재배됐다. 페르시아를 거쳐 아랍 세계로 전해졌고, 아랍 농업혁명과 함께 중동과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까지 퍼졌다. 그런데도 중세 유럽은 오랫동안 가지를 거부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 두려움과 편견.

중세 유럽의 의학 이론, 갈레노스 체계에서 가지는 "냉하고 습한" 식품으로 분류됐다. 우울증과 간질을 유발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것은 아랍인들의 채소였다 — 이슬람의 음식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 낙인이 팔레스타인에서 조용히 깨졌다.

십자군 국가에서 가지는 어디에나 있었다. 아랍 시장에서, 현지 농민의 밭에서. 가지를 처음 먹은 프랑크인들은 그것이 맛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다. 먹어선 안 된다고 들었는데, 먹어보니 좋았다.

현대 영양학의 시각에서 가지는 흥미로운 채소다. 칼로리는 100g당 25kcal에 불과하다. 그러나 안토시아닌(anthocyanin) — 보라색 껍질에 든 항산화 물질 — 이 풍부하다. 나수닌(nasunin)이라는 특정 안토시아닌은 뇌세포 보호 효과가 연구되고 있다. 식이섬유도 풍부해 포만감이 크다. 아랍 의학에서는 이미 가지를 소화 보조, 혈압 조절, 담즙 분비 촉진에 활용하고 있었다.

프랑크인들이 가장 자주 접한 가지 요리는 **무타발(Mutabbal)**과 **마크두스(Makdous)**였다. 무타발은 구운 가지에 타히니(참깨 페이스트), 레몬즙, 마늘을 섞은 딥 소스 — 오늘날 중동 식탁의 기본 메뉴다. 마크두스는 가지를 소금에 절여 호두, 고추, 올리브오일로 속을 채운 발효 음식이었다. 장기 보관이 가능해 원정 식량으로도 활용됐다.

가지는 십자군이 끝난 뒤에도 이베리아 반도와 시칠리아를 통해 서유럽으로 계속 스며들었다. 이탈리아의 파르미지아나(Parmigiana di melanzane), 프랑스의 라타투이(ratatouille), 그리스의 무사카(moussaka) — 이 요리들의 핵심 재료가 가지다. 유럽이 그토록 오래 거부하던 채소는, 결국 유럽 음식의 일부가 됐다.

https://hanzoomworld.tistory.com/79

 

가지 (茄子)

보라빛 침묵 —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없으면 안 되는가지는 억울한 채소다.색깔은 화려한데 맛은 조용하다. 익히면 흐물흐물해지고, 기름을 너무 잘 흡수해서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애매하

hanzoomworld.tistory.com


레몬 — 신맛이 가져온 혁명

레몬(lemon, Citrus limon)을 처음 마주친 프랑크 기사들은 아마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노란 껍질, 강렬한 향, 그리고 한 입 베어 물었을 때의 충격적인 신맛.

레몬의 기원은 인도 북동부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추정된다. 기원전부터 재배됐으나 서쪽으로의 전파는 느렸다. 아랍인들이 10세기경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에 들여왔고,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는 11~12세기에 이미 흔한 과일이었다.

유럽에 레몬이 있었냐고? 거의 없었다. 기록상 레몬이 유럽에 처음 본격 등장하는 시기가 정확히 십자군 원정 이후다. 이탈리아 제노바의 1150년경 기록에 레몬이 언급된다. 우연이 아니었다 — 제노바는 십자군의 상업 파트너였다.

레몬이 중동 요리에서 하는 역할은 단순히 "신맛"이 아니었다.

레몬즙은 음식 보존제였다. 산성 환경에서는 미생물이 자라기 어렵다. 생선, 고기, 야채에 레몬즙을 뿌리면 부패를 늦출 수 있었다. 냉장고가 없는 세계에서, 뜨거운 중동의 날씨에서, 이것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레몬즙은 또 철분 흡수율을 높인다. 비타민C가 비헴철(식물성 철분)을 몸이 흡수하기 쉬운 형태로 바꾼다. 긴 원정에서 철분 부족으로 인한 피로와 빈혈은 흔했다 — 레몬이 든 식사는 그 자체로 의학적 효과가 있었다. 아랍 의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프랑크인들은 나중에서야 이해했다.

십자군 국가의 귀족 식탁에서 레몬은 음료와 소스에 모두 쓰였다. 레몬즙에 설탕과 물을 탄 음료 — 아랍어로 "샤라브 알 라이문(Sharab al-laymun)" — 이 유럽 기사들 사이에 퍼졌다. 이것이 오늘날 레모네이드의 먼 조상이다.

Lemon - https://www.britannica.com/plant/lemon


정착민의 식탁 — 동서가 섞인 곳에서

십자군 국가에서 100년을 산 프랑크인 3세대는 어떤 밥상을 받았을까.

12세기 팔레스타인의 기록들은 놀라운 그림을 보여준다. 아랍 의사가 프랑크 귀족을 치료했다. 프랑크인 지주의 요리사는 아랍인이었다. 귀족 부인은 아랍어로 된 요리서를 참고했다. 시장에서는 아랍어와 프랑스어가 뒤섞였고, 향신료와 쌀, 레몬과 가지가 함께 팔렸다.

전쟁 중에도 식탁은 협상했다. 아랍 역사가 우사마 이븐 문키드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프랑크 기사와 식탁을 함께한 기억을 남겼다. 처음에는 어색했다고. 그러나 서로의 음식을 권하고 받는 과정에서 뭔가가 달라졌다고.

그 달라짐이 2세기에 걸쳐 유럽 음식의 지형을 바꿨다.

https://successrice.com/recipes/one-pot-greek-eggplant-with-rice/


 

대표 음식

🍚 마클루바 (Maqluba) — 직역하면 "뒤집힌 것." 냄비에 쌀, 가지, 고기, 향신료를 층층이 쌓아 끓인 뒤 통째로 뒤집어 내는 팔레스타인의 국민 요리. 십자군 국가 시대 프랑크인들이 현지에서 접한 쌀 요리의 원형 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팔레스타인, 요르단, 시리아의 대표 음식이다.

🍆 무타발 (Mutabbal) — 불에 직접 구운 가지를 으깨어 타히니, 레몬즙, 마늘, 올리브오일과 섞은 딥 소스. 훔무스와 함께 중동 식탁의 가장 기본적인 메제(전채) 중 하나. 쉽게 말하면 "가지 훔무스."

🍋 샤라브 알 라이문 (Sharab al-laymun) — 레몬즙에 설탕과 장미수를 섞은 중세 아랍의 음료. 레모네이드의 먼 조상. 십자군 국가 귀족들의 연회 기록에도 등장한다. 지금의 레모네이드보다 훨씬 향기롭고, 훨씬 복잡한 맛이었을 것이다.

🥘 파에야 (Paella) — 스페인 발렌시아의 쌀 요리. 십자군 이후 이베리아 반도로 확산된 아랍식 쌀 조리 전통과 무어인 농업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노란빛을 내는 사프란, 풍성한 재료들 — 아랍 쌀 요리의 문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Maqluba - https://www.hungrypaprikas.com/maqluba/
Mutabbal - https://www.tasteatlas.com/mutabal
Paella - https://www.platingsandpairings.com/seafood-paella-with-saffron-aioli/


⚔️ 십자군 편 인터랙티브 지도 보기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 역사 지도

세력권 및 무역로 로마 가톨릭 세력권 그리스 정교 세력권 이슬람교 세력권 제1회 (1096~1099) 제2회 (1147~1149) 제3회 (1189~1192) 제4회 (1202~1204) 제5~7회 원정

splendid-entremet-820fce.netlify.app

이번 지도도 조금.. 퀄리티가 낮습니다. 그래도 각 십자군 원정 루트와 제가 작성하는 글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위치를 파악하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소금꽃 실용 팁

가지 요리에서 쓴맛을 없애는 고전적인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 잘라서 소금을 뿌리고 20~30분 두면 수분이 빠지면서 쓴맛이 함께 나온다. 그런데 현대 품종 가지는 품종 개량으로 쓴맛이 거의 없어서 이 과정을 생략해도 된다. 다만 절이면 기름 흡수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서, 튀기거나 볶을 때 기름을 아끼고 싶다면 여전히 유용하다.

레몬은 상온에서 보관하면 1~2주, 냉장 보관 시 한 달 이상 유지된다. 즙만 짜서 쓸 거라면 전자레인지에 20초 돌리거나 손바닥으로 굴린 뒤 짜면 즙이 훨씬 많이 나온다.


전쟁은 경계를 긋지만, 음식은 경계를 지운다. 프랑크인들이 중동의 밥상에서 배운 것은 요리법만이 아니었다 — 낯선 것을 받아들이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유럽을 바꿨다.


📌 역사적 배경 확인
십자군 국가 4개 — 예루살렘 왕국, 안티오키아 공국, 에데사 백국, 트리폴리 백국 ✅
고드프루아 드 부용의 "성묘의 수호자" 칭호 ✅
티레의 기욤(William of Tyre)의 프랑크 2세대 기록 ✅
쌀 기원 — 중국 양쯔강 유역, 기원전 7000~5000년경 ✅
파에야 어원 — 아랍어 baqiyya 기원설 (학계 논쟁 중, 복수의 어원설 존재) ✅
가지 원산지 — 인도, 기원전 2500년경 재배 ✅
레몬 유럽 최초 기록 — 제노바 1150년경 ✅
우사마 이븐 문키드 — 12세기 아랍 귀족·회고록 작가 ✅
레몬즙 비타민C와 비헴철 흡수 상승 효과 ✅
마클루바 — 팔레스타인·요르단·시리아 전통 쌀 요리 ✅

 

2026.04.21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5)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5)

2026.04.19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3)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의 식탁 (3)2026.04.17 - [역사와 식재료] -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hanzoomworld.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