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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십자군과 향신료 EP.1] 클레르몽 공의회란 — 십자군 전쟁이 호밀·귀리 재배를 바꾼 이유

by 소금꽃한스푼 2026. 4. 17.

1화 — 클레르몽의 외침, 그리고 굶주린 유럽

1095년 11월 27일.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 클레르몽.

야외 광장에 수천 명이 모여 있었다. 주교와 수도원장, 기사와 귀족, 그리고 이름 없는 농민들.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단상에 올랐다. 그가 말을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교회 내부의 이야기였다. 성직 매매의 부패, 기사들 사이의 끝없는 내전, 하느님의 평화(Pax Dei)를 지키라는 촉구.

그러다 그는 방향을 바꿨다.

동방에서 소식이 왔다. 셀주크 투르크가 비잔틴 제국을 침략하고 있었다. 성지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손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형제들이 고통받고 있었다. 교황은 말했다 — 칼을 들고 동방으로 가라. 죄를 사해주겠다. 천국이 보장된다.

군중에서 외침이 터졌다. "데우스 불트!(Deus vult!) — 신이 원하신다!"

그 외침은 두 세기에 걸친 전쟁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유럽의 식탁을 영원히 바꾼 거대한 이동의 출발점이었다.

clermont - https://us.media.france.fr/en/node/6534
https://romancatholicman.com/wp/deus-vult-deus-vult-a-clarion-call-for-a-new-crusade/?__cf_chl_tk=5IipN.VQFyoojW6AD2TOVa1gRDFV1FbB9zINrq1RDes-1776431004-1.0.1.1-A_jr6e8Zcjc6JAg78Qji3i89jBkaQ5myC7BMljzFf_Y


왜 그들은 떠났는가 — 신앙만이 아니었다

역사책은 십자군을 종교 전쟁으로 가르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전부도 아니다.

1095년 유럽은 굶주리고 있었다. 11세기 내내 인구는 늘었지만 농업 생산성은 한계에 부딪혔다. 토지는 분할에 분할을 거듭했고,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물려받을 땅이 없었다. 가뭄과 흉작이 반복됐다. 프랑스와 독일 일대에서는 기근으로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교황의 설교에 "땅과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 세속적 약속이 담겨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순수한 신앙심으로 떠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6만에서 10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응답한 데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 지금 이 땅에서 먹고살 수 없다는 절박함.

그 절박함의 뿌리에, 빵이 있었다.

https://namu.wiki/w/%EC%8B%AD%EC%9E%90%EA%B5%B0%20%EC%A0%84%EC%9F%81
https://www.1news.co.nz/2019/05/20/history-behind-the-crusades-as-the-crusaders-consider-a-name-change/


호밀 — 가난의 곡물, 생존의 기반

중세 유럽 농민의 밥상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호밀(rye)**이다.

밀은 귀족의 곡물이었다. 부드럽고 희고, 가격이 비쌌다. 농민들은 밀을 재배해도 직접 먹지 못했다 — 영주에게 바쳐야 했으니까. 그들의 빵은 호밀로 만들었다. 검고 거칠고 무겁고 시큼한 빵. 귀리를 섞거나, 도토리 가루를 섞거나, 심한 흉년에는 겨와 밀짚 부스러기까지 넣었다.

호밀은 밀이 자라기 어려운 척박한 땅에서도 자랐다. 추위에 강하고, 산성 토양도 견뎌냈다. 북유럽과 중앙유럽 농민들이 호밀에 의존한 이유다. 10~11세기 유럽인 식단에서 곡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칼로리의 70~75%에 달했다. 그 중심에 호밀이 있었다.

그런데 호밀에는 숨겨진 공포가 있었다.

**맥각균(Claviceps purpurea)**이라는 곰팡이가 호밀 이삭에 기생한다. 이 균에 감염된 호밀로 만든 빵을 먹으면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손발 끝이 타는 듯이 아프다. 혈관이 수축되면서 손발이 검게 변하고, 결국 썩어서 떨어진다. 심하면 환각과 경련이 온다. 중세 사람들은 이것을 **'성 안토니오의 불(Ignis Sacer, 聖火)'**이라 불렀다. 신이 내린 저주라고 믿었다.

944년 프랑스에서 한 번의 발병으로만 2만~4만 명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1089년에는 로렌 지방 전역이 이 병에 휩쓸렸다. 이 균이 호밀과 관계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은 17세기 말이었다 — 그 전까지 수백 년 동안 농민들은 자신들이 매일 먹는 빵이 원인인지 알지 못한 채 죽어갔다.

호밀은 생존의 기반이었고, 동시에 죽음의 씨앗이었다.

https://almanacgrain.ca/products/rye-berries?srsltid=AfmBOooyf8XVYFKaWTrKynJZGlE_XsxU76qIOYrtTTqryWjnaVJKoa30


귀리 — 말의 음식이 사람을 먹였다

호밀과 함께 중세 빈농의 식탁을 지킨 또 하나의 곡물이 **귀리(oats)**다.

귀리는 원래 잡초였다. 밀밭에 섞여 자라는 성가신 풀로 여겨졌고,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경멸하며 말과 야만인의 먹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북유럽의 기후는 밀에게 가혹했다. 서늘하고 습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에서 밀은 잘 자라지 않았다. 귀리는 자랐다.

결국 귀리는 사람의 음식이 됐다.

포리지(porridge) — 귀리를 물에 끓인 죽 — 가 아침 식사의 기본이 됐고, 귀리 빵이 식탁에 올랐다. 귀리는 밀보다 저장성이 떨어지고, 빵을 만들면 글루텐이 없어 쉽게 부스러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귀리에는 현대 영양학이 재발견한 비밀이 있다. 베타글루칸(beta-glucan)이라는 수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한데, 이것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당 급등을 억제한다. 귀리를 먹으면 소화가 느리게 진행되어 포만감이 오래 간다 — 중세 농민이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밭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에는, 아침에 먹은 귀리죽 한 그릇의 역할이 있었다.

베타글루칸은 또한 점성이 강해서 장 내에서 젤 형태를 이루며 소화를 늦춘다. 이것이 포만감의 원리다. 현대의 오트밀 열풍이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이유가 여기 있다 — 중세 농민들이 생존 수단으로 먹던 것을, 21세기 사람들이 건강식으로 다시 먹고 있다.

https://www.foodnetwork.com/how-to/packages/food-network-essentials/what-are-rolled-oats


굶주린 군중이 일어나다 — 민중 십자군

교황은 원래 1096년 8월 출발을 명했다. 훈련받은 기사들이 정돈된 군대를 이루어 동방으로 가는 것을 원했다.

그러나 군중은 기다리지 않았다.

은수자 피에르(Peter the Hermit)라는 인물이 프랑스와 독일을 돌아다니며 설교를 퍼뜨렸다. 글을 모르는 농민들, 땅을 잃은 소작농들, 먹을 것이 없는 도시 빈민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1096년 봄, 수만 명의 오합지졸이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출발했다. 무기도 없었고, 군사 훈련도 없었고, 식량 보급 계획도 없었다.

이들이 지나가는 길에서 일어난 일들은 기록하기도 끔찍하다. 독일 라인강 일대에서는 유대인 공동체를 학살했다. 식량이 없으니 약탈했다. 비잔틴 영토에 들어와서도 민간인을 공격했다.

1096년 10월, 이 '민중 십자군'은 아나톨리아로 건너가자마자 셀주크 투르크 군대에 의해 거의 전멸당했다.

굶주린 사람들이 먼저 갔다. 그리고 죽었다.

그 뒤를 따라 진짜 기사들의 군대가 출발했다.

Peter the Hermit - https://theologymix.com/church-history/peter-the-hermit-preaching-the-crusades/


대표 음식

🍞 호밀빵 (Rye Bread) — 중세 유럽 농민의 주식. 검고 묵직하며 특유의 신맛이 나는 것은 자연발효(사워도우) 방식 덕분이다. 오늘날 독일의 단단한 펌퍼니켈(Pumpernickel), 북유럽의 크리스프브레드(Crispbread)가 그 후예다.

🥣 귀리 포리지 (Oat Porridge) — 물이나 우유에 귀리를 끓인 죽. 스코틀랜드에서는 소금만 넣어 먹는 것이 전통이다. 현대의 오트밀은 여기서 출발했다.

🍺 에일 (Ale) — 중세 농민에게 물 대신 마시는 음료였다. 호밀과 귀리를 발효시켜 만들었고, 알코올 도수는 낮았다. 불순물이 많은 물보다 안전했기 때문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셨다.

🥣 포타주 (Pottage) — 호밀이나 귀리, 콩, 채소를 넣고 끓인 두꺼운 스튜. 중세 농민의 솥에는 이것이 늘 끓고 있었다. 새로운 재료가 생기면 그냥 집어넣으면 됐다 — 레시피가 없는 레시피.

호밀빵 - https://www.medieval.eu/medieval-daily-bread-made-rye/
Oats Porridge - https://historydollop.com/2020/03/15/frumenty-a-medieval-wheat-porridge/
Pottage - https://www.brandnewvegan.com/recipes/medieval-pottage-stew


💡 소금꽃 실용 팁

호밀빵의 그 독특한 신맛은 밀과 달리 젖산균 발효 덕분이다. 글루텐 함량이 낮아 반죽이 잘 부풀지 않기 때문에, 효모만으로는 부드럽게 만들기 어렵다. 시중 호밀빵의 대부분은 밀가루를 섞어 만든 것이다. 진짜 100% 호밀빵은 묵직하고 촉촉하며, 두껍게 썰어 버터나 훈제 생선과 함께 먹는 것이 북유럽식이다.

귀리 포리지를 더 맛있게 먹으려면 전날 밤 귀리를 물에 미리 불려둘 것. 조리 시간이 절반으로 줄고 식감이 훨씬 부드러워진다. 베타글루칸은 물에 용해되므로, 불린 물까지 함께 끓이는 것이 영양상 이득이다.

"굶주린 자들이 신의 이름으로 길을 떠났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몰랐지만, 여기 남아서 굶는 것보다는 나았다." 

⚔️ 십자군 편 인터랙티브 지도 보기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 역사 지도

세력권 및 무역로 로마 가톨릭 세력권 그리스 정교 세력권 이슬람교 세력권 제1회 (1096~1099) 제2회 (1147~1149) 제3회 (1189~1192) 제4회 (1202~1204) 제5~7회 원정

splendid-entremet-820fce.netlify.app

이번 지도도 조금.. 퀄리티가 낮습니다. 그래도 각 십자군 원정 루트와 제가 작성하는 글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위치를 파악하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 역사적 배경 확인
클레르몽 공의회 1095년 11월 27일, 교황 우르바노 2세 연설 ✅
군중의 외침 "데우스 불트(Deus vult)" ✅
비잔틴 황제 알렉시오스 1세의 교황에 대한 지원 요청(1095년 3월) ✅
셀주크 투르크의 비잔틴 침략 ✅
출발 예정일 1096년 8월 15일(성모승천 대축일) ✅
은수자 피에르의 민중 십자군 선동 ✅
민중 십자군의 라인란트 유대인 학살 ✅
민중 십자군 아나톨리아에서 셀주크 군에 전멸 1096년 10월 ✅
호밀 맥각균 감염 — 성 안토니오의 불(Ignis Sacer) ✅
944년 프랑스 발병 2만~4만 명 사망 기록 ✅
중세 농민 식단의 곡물 의존도 7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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