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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 살라딘과 3차 십자군 1189년, 전쟁 중의 식탁 외교
1187년 7월 4일. 하틴의 뿔(Horns of Hattin).
갈릴리 호수 서쪽의 이중 봉우리. 7월의 팔레스타인은 타는 듯했다.
이틀 전 밤, 살라딘의 군대가 십자군 야영지 주변에 불을 질렀다. 연기가 진영을 뒤덮었다. 물 보급로는 이미 끊겨 있었다. 사흘째 행군 중이던 예루살렘 왕국의 군대 — 기사와 보병 합쳐 2만에 가까운 병력 — 는 탈수와 열기와 연기 속에 이미 전투력을 잃고 있었다.
살라딘은 서두르지 않았다.
아유비 왕조의 술탄 살라흐 앗딘 유수프(Salah ad-Din Yusuf ibn Ayyub). 유럽인들이 "살라딘(Saladin)"이라 부른 이 사람은 군사적 천재이기 이전에 전략적 인내를 아는 지휘관이었다. 그는 십자군이 스스로 무너지기를 기다렸다. 하틴의 뿔에서, 타는 더위 속에서, 물 한 모금 없이.
7월 4일 오전, 십자군은 총공세를 시도했다. 저지됐다. 오후, 다시 시도했다. 역시 무너졌다. 예루살렘 국왕 기 드 뤼지냥은 포로가 됐고, 트루아의 레날 드 샤티용은 살라딘의 손에 직접 처형됐다.
88년간 기독교의 손에 있던 예루살렘이, 그해 10월 2일에 다시 이슬람 세계로 돌아갔다.
그리고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3차 십자군 — 왕들이 직접 나섰다
예루살렘 함락 소식은 교황 우르바노 3세를 충격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후임 교황 그레고리오 8세는 즉각 새 십자군 소집을 선언했다.
이번엔 규모가 달랐다. 유럽의 세 왕이 직접 참전을 선언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 오귀스트, 그리고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1세 — 후세가 "사자심왕(Lionheart)"이라 부르게 될 사람.
1189년, 3차 십자군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 원정은 전장에서 의외의 일이 일어난 원정으로 역사에 남았다.
적이 서로의 식탁에 앉는 일이 일어났다.

살라딘이라는 인물 — 적조차 존경한 지휘관
살라딘을 이해하지 않고 이 시기의 식탁 외교를 이해할 수 없다.
그는 현대의 이라크 티크리트 근처에서 쿠르드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를 무너뜨리고 아유비 왕조를 세운 뒤, 시리아·이라크·이집트를 통합했다. 군사적으로는 탁월했지만, 동시대 기록들이 그보다 더 강조하는 것은 그의 태도였다.
하틴 전투 이후, 포로가 된 기 드 뤼지냥 국왕 앞에 살라딘은 직접 차가운 음료를 내왔다. 당시의 기록 — 이마드 앗딘의 연대기 — 은 이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살라딘은 왕에게 시원한 음료를 권하며 말했다 — "당신이 마시는 것은 내가 준 것이오." 이슬람의 전쟁 관습에서, 포로에게 음식과 음료를 직접 제공한 자는 그 포로를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레날 드 샤티용은 그 음료를 마시지 않았다 — 그래서 죽었다.
음식이 곧 계약이었다.
살라딘의 이 태도는 3차 십자군 내내 이어졌다. 아크레 포위전에서, 아르수프 전투 직전에, 야파 협상에서. 그리고 가장 유명한 장면은 리처드 1세와의 사이에서 일어났다.

리처드와 살라딘 — 전장 너머의 식탁
1191년 여름. 아크레 포위전이 끝난 직후.
리처드 1세가 열병으로 쓰러졌다.
중세 기록에서 이 장면은 놀랍게도 여러 편에서 일치한다. 살라딘은 적장이 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사자를 보냈다 — 신선한 과일과 얼음을 실어서.
헤르몬 산의 눈을 산에서 채취해 전달하는 기술을 아유비 왕조의 군대는 갖추고 있었다. 눈을 단단히 싸서 낙타에 실어 운반하면, 뜨거운 팔레스타인 여름에도 얼음 상태를 상당 시간 유지할 수 있었다.
살라딘의 사자가 리처드의 진영에 도착했다. 복숭아, 배, 그리고 설탕에 재운 과일들. 그리고 얼음.
리처드는 그것을 받았다. 먹었다.
전쟁 중이었다. 바로 전날에도 서로의 병사들이 죽이고 죽었다. 그 사이에, 사자가 오가며 과일을 나눴다.
이것이 중세 전쟁의 기이한 식탁 외교였다. 신사도의 규칙이 살아 있던 시대, 적장도 인간이라는 것을 양쪽이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방식이 — 음식의 교환을 통해 이루어졌다.
살라딘의 동생 알아딜은 나중에 리처드와 직접 협상 자리에서 와인과 고기를 나눴다. 리처드는 알아딜에게 유럽식 기사 작위를 비공식으로 수여했다는 기록도 있다.
전쟁은 계속됐다. 예루살렘은 끝내 3차 십자군의 손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1192년 야파 조약이 체결됐고, 기독교 순례자들은 살라딘의 통치 아래 예루살렘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음식을 나눈 사람들이 만든 협정이었다.

사프란 — 살라딘 식탁의 황금빛 향신료
이 시대의 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가 있다.
사프란(saffron, Crocus sativus). 꽃에서 손으로 한 가닥씩 따낸 암술 세 가닥. 1그램을 얻으려면 150송이의 꽃이 필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
사프란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와 중동의 접경 지대, 오늘날의 이란 북동부로 추정된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염료·약재·향신료로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슬람 문명은 사프란을 고급 요리의 핵심 재료로 발전시켰고, 살라딘 시대의 아유비 왕조 궁정 요리에서 사프란은 빠지지 않았다.
사프란의 색소 성분은 크로신(crocin). 물에 녹아 강렬한 황금빛을 낸다. 향 성분은 사프라날(safranal) — 독특한 꽃향기. 맛 성분은 피크로크로신(picrocrocin) — 약간의 쓴맛. 이 세 가지의 조합이 사프란을 대체 불가능한 향신료로 만든다. 단순히 색만 내는 것이 아니다 — 터메릭으로 노란색을 낼 수 있지만, 사프란의 향과 맛은 터메릭이 흉내 낼 수 없다.
살라딘 시대의 궁정 요리서 — 13세기 바그다드의 『키타브 알타비크(Kitab al-Tabikh)』를 참고하면 — 사프란은 양고기 요리의 필수 재료였다. 양고기 조각을 끓이면서 사프란, 계피, 생강, 후추를 함께 넣고, 아몬드와 건포도를 마지막에 올렸다. 이 요리의 향이 식사 자리를 어떻게 채웠을지는 지금도 상상할 수 있다 — 사프란의 황금빛이 국물에 번지는 순간.
리처드에게 보내진 과일과 함께, 살라딘의 진영에서 요리된 양고기는 이런 향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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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프란
🌸 황금빛 한 줄기 — 사프란 이야기세상에는 무게보다 가치가 무거운 것들이 있다. 사프란이 그렇다.1그램을 얻기 위해 크로커스 꽃 150송이가 필요하고, 그 꽃에서 실처럼 가는 수술을 일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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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고기 — 전쟁터와 식탁 외교의 중심에서
중동 음식 문화에서 양(lamb·mutton, Ovis aries)은 단순한 단백질 공급원이 아니었다.
양고기는 대접의 언어였다.
아랍 문화에서 귀한 손님에게 어린 양을 잡아 내놓는 것은 최고의 환대 표시였다 — 이 전통은 이슬람 이전부터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 있었다. 살라딘이 포로가 된 기사에게 음식을 내놓는 행위, 리처드의 진영에 과일을 보내는 행위 — 이 모든 것은 중동의 환대 문화(아랍어로 "디야파, diyafa") 위에 놓인 것이었다.
양고기는 영양학적으로도 전쟁터에 적합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100g당 약 25g), 지방은 에너지 밀도가 높아 적은 양으로 충분한 칼로리를 공급했다. 더 중요한 것은 아연(zinc) — 양고기는 붉은 살코기 중에서도 아연 함량이 높아, 면역 기능 유지와 상처 치유에 직접 기여했다. 전쟁터에서 이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양은 또한 이동 식량이었다. 걸어서 이동하는 가축. 도살 즉시 요리할 수 있었다. 냉장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아있는 양을 몰고 이동하는 것이 고기를 운반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십자군 편대와 살라딘의 군대 모두 양떼를 몰고 다녔다.
아유비 왕조의 양고기 요리 방식은 다양했다. 통째로 구운 하지(Hazi), 꼬치에 꿰어 구운 **샤와르마(shawarma)**의 원형, 그리고 앞서 언급한 사프란을 넣은 향신료 스튜. 이 요리 방식들이 십자군 기사들에게 전해졌고, 일부는 유럽으로 건너갔다.
오늘날 영국의 양고기 요리에 사프란이 간혹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 리처드 1세의 기사들이 팔레스타인에서 배운 맛의 기억이, 12세기에 잉글랜드로 함께 돌아왔다.

전쟁과 식탁 외교 — 중세의 언어
3차 십자군이 남긴 것은 예루살렘 탈환의 실패만이 아니었다.
살라딘과 리처드의 교류는 — 과일을 주고, 와인을 나누고, 협상 자리에서 함께 식사하는 — 중세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 음식이 외교의 언어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무력이 결론을 내지 못할 때, 사람들은 식탁으로 돌아갔다.
1192년 야파 조약의 협상 자리에서도 음식이 오갔다. 서로의 요리를 맛본 외교관들이, 서로의 언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협상가들이 — 결국 합의를 끌어냈다.
사프란의 황금빛이 번진 양고기 스튜, 얼음을 채운 복숭아, 와인 한 잔. 이것들이 실은 3차 십자군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였을지도 모른다.

신의 이름으로, 향신료를 위하여 — 십자군 역사 지도
세력권 및 무역로 로마 가톨릭 세력권 그리스 정교 세력권 이슬람교 세력권 제1회 (1096~1099) 제2회 (1147~1149) 제3회 (1189~1192) 제4회 (1202~1204) 제5~7회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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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도도 조금.. 퀄리티가 낮습니다. 그래도 각 십자군 원정 루트와 제가 작성하는 글의 역사적 배경이 되는 위치를 파악하실 수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대표 음식
🍖 마르각(Marqa) — 사프란 양고기 스튜 아유비 왕조의 궁정 요리서에 기록된 기본형. 어린 양고기를 한 입 크기로 잘라 사프란·계피·생강·후추를 넣고 푹 끓인 뒤, 아몬드와 건포도로 마무리한다. 황금빛 국물에 견과류의 고소함이 더해진 이 요리는 살라딘 시대 고급 연회의 기본 메뉴였다.
🥘 코레시트 알루 에스파나크(Khoresh-e aloo esfenaj) — 자두·시금치 사프란 스튜 페르시아 기원의 스튜로, 살라딘이 통치한 이란·이라크 지역의 음식 전통과 직결된다. 사프란과 자두의 새콤달콤함, 시금치의 쓴맛이 어우러지는 요리. 중세 아랍 요리서에 유사한 변형이 여럿 등장한다.
🍑 샤라브 알 투파흐(Sharab al-tuffah) — 아이스 과일 음료 살라딘이 리처드에게 보냈을 바로 그 음료의 재현. 신선한 과일(복숭아·배)을 설탕 시럽에 담그고 헤르몬 산의 눈(얼음)과 함께 낸 것. 아랍 의학서에서는 열병 환자에게 차가운 과일 음료를 처방했다 — 살라딘의 행동은 군사 외교이자 의학 처방이었다.
🫓 카크 알무할라(Ka'k al-muhalla) — 사프란 과자빵 사프란·참깨·꿀이 든 링 모양의 중세 아랍 빵. 십자군 국가 시대 시장에서 팔렸으며, 프랑크 기사들이 현지에서 즐겨 사 먹은 간식 중 하나였다고 기록돼 있다. 오늘날 중동의 카크(Ka'k)의 조상.


💡 소금꽃 실용 팁
사프란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신료지만, 사용량이 워낙 적어서 한 번 사면 꽤 오래 쓸 수 있다. 요리에 쓸 때 가장 흔한 실수는 직접 넣는 것 — 그렇게 하면 색과 향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올바른 방법: 미지근한 물이나 육수(또는 우유) 2~3 큰술에 사프란 몇 가닥을 15~30분 이상 담가 놓는다. 물이 짙은 황금빛으로 변하면 그 물째로 요리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색소(크로신)와 향(사프라날)이 모두 충분히 용출된다.
구입 시 주의: 진짜 사프란은 실처럼 가늘고 끝이 나팔 모양이며, 물에 담그면 천천히 황금빛이 번진다. 가짜(터메릭이나 홍화로 만든 것)는 물에 넣는 즉시 색이 탁하게 번지거나 노란빛이 아닌 주황빛이 강하다. 이란산과 스페인산이 품질이 좋기로 알려져 있다.
전쟁은 적을 만들고, 식탁은 인간을 만든다. 살라딘이 얼음 실린 과일을 보냈을 때, 그것은 항복도 우정도 아니었다 — 그것은 다른 언어로 쓴 편지였다. 그 편지를 리처드는 읽었다.
📌 역사적 배경 확인
하틴 전투 1187년 7월 4일 ✅
살라딘의 예루살렘 재탈환 1187년 10월 2일 ✅
교황 우르바노 3세 사망 및 3차 십자군 소집 ✅
리처드 1세, 필리프 2세, 바르바로사 — 3차 십자군 참전 ✅
리처드 열병 中 살라딘의 얼음·과일 전달 — 중세 연대기 기록 기반 ✅
야파 조약 1192년 — 기독교 순례자 예루살렘 방문권 보장 ✅
사프란 기원 — 이란 북동부, 기원전 3000년경 ✅
크로신·사프라날·피크로크로신 — 사프란 3대 성분 ✅
『키타브 알타비크(Kitab al-Tabikh)』 — 13세기 아랍 요리서 ✅
아랍 환대 문화 디야파(diyafa) ✅
알아딜과 리처드의 교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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