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여름, 한반도에 전쟁이 터졌다. 북쪽에서 내려온 포화 속에 사람들은 남쪽 끝으로 달렸다. 갈 수 있는 가장 남쪽, 더 이상 육로가 없는 곳 — 부산(釜山)이었다. 인구 30만 남짓하던 작은 항구도시에 100만 명을 넘는 피란민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판잣집을 짓고, 시장을 열고, 먹을 것을 만들었다.
이북에서 온 사람들은 고향의 냉면을 그리워했다. 메밀가루는 없었다. 대신 미군 원조물자로 항구에 내리는 밀가루가 있었다. 그들은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었다. 그것이 밀면이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운 어묵 장인들은 부두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잡어를 갈고 튀겼다. 그것이 부산 어묵이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조선 땅에 들어온 중국 화교 상인들이 팔던 호떡은 부산 국제시장 골목에서 견과류를 가득 채운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그것이 씨앗호떡이다.
부산의 음식은 기억이다. 전쟁의 기억, 이주의 기억, 배고픔의 기억, 그리고 그 배고픔을 이겨낸 사람들의 기억. 이 도시의 밥상 위에는 세계 어느 역사책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름들이 남아 있다. 흥남에서 내려온 냉면집 할머니, 영도 판잣집에서 어묵을 튀기던 장인, 국제시장 골목에서 호떡을 굽던 좌판 아주머니. 음식은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는다.


한국전쟁(1950~1953년)은 부산을 완전히 다른 도시로 바꿔놓았다.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부산으로 이동해 임시수도를 선언했다. 서울을 비롯한 북쪽 지역에서 피란민이 몰려들었고, 가장 극적인 것은 1950년 12월 흥남 철수 작전이었다. 흥남 부두에서 미군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가 약 14,000명의 민간인을 싣고 남쪽으로 향했다. 배 한 척에 실릴 수 있는 최대치를 몇 배나 초과한 수였다. 그 배에 탄 사람들 중 함경남도 흥남 출신 냉면집 가족도 있었다.
부산의 인구는 전쟁 직전 약 30만에서 최대 120만 명까지 폭증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도, 우암동, 좌천동 일대에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섰다. 국제시장(당시 '도떼기시장')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자와 원조품이 거래되는 혼란스러운 거대 시장으로 변모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시장이 생기고, 시장에는 음식이 따라왔다. 이북 출신 피란민들이 열었던 냉면집들, 일본에서 기술을 배워 온 어묵 장인들의 작업장, 화교 상인들의 호떡 좌판이 항구도시 부산의 골목을 채워나갔다.


부산 부평시장에 일본인 운영 어묵 가게 등장 (1924년 조선총독부 기록 확인).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과의 교역로로 기능. 1882년 이후 화교 상인 유입, 호떡 전래. 해방 이후 조선인 최초 어묵 공장 동광식품 창설.
대한민국 임시수도 부산 선포. 흥남 철수 등 이북 피란민 대거 유입, 인구 최대 120만 급증. 우암동 등 피란민촌 형성. 내호냉면 창업자 정한금씨, 메밀 대신 밀가루로 밀면 제조 시작. 삼진어묵(1953년) 영도 봉래시장 창업. 미군 원조 밀가루 대량 공급 — 밀면·어묵 탄생 배경.
정전 이후에도 피란민 다수 정착. 국제시장 상설화. 부산항 컨테이너 물동량 급증 — 동아시아 해운 허브 성장. 환공어묵·영진어묵 등 어묵 전문업체 속속 창업. 밀면 전문점 영도·우암동·당감동 중심으로 확산. 1960년대 고래사어묵 창업.
1980년대 후반 남포동·국제시장 일대에서 견과류를 넣은 씨앗호떡 등장. 부산국제영화제(1996년 시작) 이후 국제시장·BIFF 광장 일대 관광지화 — 씨앗호떡 전국 명물 부상. 2010년대 삼진어묵 프리미엄 베이커리형 어묵 전략 성공, 부산 어묵 전국 브랜드화.
밀면의 기원은 함경남도 흥남에서 시작된다. 1919년, 흥남에서 냉면집 '동춘면옥'을 운영하던 이영순씨 가족이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했다. 딸 정한금씨는 어머니에게 배운 이북식 냉면 조리법을 부산에서 이어가려 했지만 문제가 생겼다. 냉면의 핵심 재료인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구하기 어려웠다. 대신 미군 원조물자로 항구에 쌓이는 밀가루가 있었다. 정한금씨는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섞어 반죽하고 이북식 육수에 말아냈다. 1952년 남구 우암동에 '내호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이 가게가 밀면의 원조로 공인된다. '내호'는 흥남의 지명에서 따왔다. 고향을 그리워한 이름이었다.
밀면이 부산에 뿌리내린 것은 단순한 재료 대체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우암동은 거대한 피란민촌이었다. 이북 출신 실향민들에게 밀면 한 그릇은 고향 냉면의 기억을 대신하는 위로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들 중 상당수가 부산에 정착했고, 밀면은 이들의 음식으로 계속 팔렸다. 밀면이 우암동, 개금동, 가야동, 당감동 등 피란민 집단 거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면발 하나에는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의 지도가 그려져 있다.

부산 어묵의 역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의 시장'에는 부평시장에서 어묵이 팔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부산 어묵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이다. 당시 어묵은 일본인 상인들이 주로 만들었다. 일본의 가마보코(かまぼこ) 기술이 가까운 부산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이다. 해방 이후 1945년, 조선인 최초의 어묵 공장 동광식품이 부산 부평시장에서 문을 열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부산 어묵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1953년 일본에서 어묵 제조 기술을 배운 박재덕씨가 영도구 봉래시장 판자촌에서 삼진어묵을 창업했다. 피란민이 몰려든 항구도시에는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부두에서 잡히는 잡어를 통째로 갈아 튀긴 어묵은 값싸고 영양가 있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당시 어묵은 미군 드럼통을 개조한 기름 가마에서 튀겨냈다. 부산 어묵의 원형인 '덴뿌라'라 불리던 튀김 어묵이 이 시기에 자리를 잡았다. 항구도시이기에 신선한 생선이 풍부했고, 전쟁으로 수요는 넘쳤으며, 생계를 위한 장인들의 기술이 더해졌다. 부산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조건들이었다.

호떡의 이름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호(胡)'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서역(西域) — 중앙아시아와 아랍 지역 — 사람들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호떡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 북부에 전해진 서역의 납작빵에서 유래한다. 중국인들은 이것을 호병(胡餠)이라 불렀고, 이것이 조선 땅에 들어온 것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로 추정된다. 청나라와 체결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을 통해 화교 상인들이 대거 조선에 들어왔고, 그들이 생계를 위해 만들어 팔던 음식 중 하나가 호떡이었다.
전통적인 호떡의 속은 설탕이나 조청이었다. 그것이 부산에서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변신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남포동 일대에서 호떡 좌판을 운영하던 상인들이 달콤한 설탕 속 대신 해바라기씨, 땅콩, 건포도 같은 견과류를 채우기 시작했다. 씨앗호떡이 탄생한 순간이다. 고소하고 바삭하고 달콤하면서 씹는 맛이 있는 이 호떡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시작되면서 국제시장과 BIFF 광장이 관광지로 부상한 1990년대 이후 전국적인 명물이 됐다. 실크로드의 호병이 조선 화교의 손에서 변신하고, 부산 골목에서 다시 한번 진화했다. 이름 없는 좌판 상인의 손끝에서 이 모든 여정이 완성됐다.

밀면이 평양냉면·함흥냉면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면발의 단백질 구조에 있다. 냉면의 메밀가루에는 글루텐이 없다. 반면 밀가루에는 글루테닌(glutenin)과 글리아딘(gliadin)이 들어 있어 물과 반죽하면 글루텐 망상 구조를 형성한다. 이 구조가 면발에 탄력과 쫄깃함을 준다. 부산 밀면은 중력분에 소금을 더해 하루 숙성한 생면을 쓴다. 숙성 과정에서 글루텐 망이 균일하게 재배열되어 조리 후 더 고른 탄성이 생긴다. 여기에 고구마 전분을 섞으면 아밀로펙틴(amylopectin) 함량이 높아져 씹는 질감이 더욱 쫄깃해진다.
밀면 육수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끓여 만든다. 이북식 냉면 육수는 주로 소고기를 쓰지만, 부산 밀면은 돼지고기를 더한 것이 특징이다. 이것도 피란 환경의 산물이다. 전쟁 중 부산에는 미군 부대 인근에서 나오는 돼지고기 부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두 고기를 함께 끓이면 소고기의 이노신산(IMP)과 돼지고기의 구아닐산이 결합해 감칠맛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피란민들이 처음 만든 임시방편의 육수가 의도치 않게 더 복잡한 풍미를 만들어냈다.

어묵의 핵심 원리는 액토미오신(actomyosin)이라는 근육 단백질의 겔화(gelation)에 있다. 생선살을 소금과 함께 마쇄하면 소금에 녹는 단백질인 액토미오신이 용출된다. 이것을 일정 온도 범위에서 가열하면 단백질 사슬이 서로 엉겨붙어 겔 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어묵 특유의 탄력 있는 식감을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부산 어묵이 타 지역 어묵보다 탄력이 뛰어난 것은 어육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 부산어묵조합 기준 어육 70% 이상. 밀가루 비중이 낮을수록 단백질 겔 구조가 치밀해지고 식감이 더 탱탱해진다.
영양 면에서 어묵은 단백질 함량이 높으면서도 가격이 낮다는 점에서 탁월한 가성비를 자랑한다. 일반 어묵 100g에는 단백질 약 12~15g이 들어 있다. 지방 함량은 튀김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조림 어묵의 경우 낮게 유지된다. 어묵에는 타우린(taurine)이 풍부하다. 타우린은 심장 기능 지원, 항산화, 담즙산 생성 촉진 등에 관여하는 아미노산 유사 물질로, 수산물에 특히 풍부하다. 전쟁 중 부산 사람들이 어묵으로 단백질을 공급받은 것은 영양학적으로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씨앗호떡이 일반 호떡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속 재료다. 설탕·조청이 주를 이루던 전통 호떡에서, 씨앗호떡은 해바라기씨, 땅콩, 건포도, 호박씨 등 견과류를 채운다. 이 변화는 단순한 맛의 차이를 넘어 영양 프로필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해바라기씨 100g에는 리놀레산(linoleic acid) 등 오메가-6 지방산이 약 32g, 비타민 E가 약 35mg 들어 있다. 비타민 E는 지용성 항산화 비타민으로, 세포막 산화 방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땅콩에는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과 올레산(oleic acid) — 올리브오일의 주요 지방산과 같은 것 — 이 들어 있다.
그러나 씨앗호떡의 과학에서 놓쳐선 안 되는 것은 밀가루 반죽의 역할이다. 호떡 반죽은 설탕과 이스트를 넣어 발효시킨 발효 반죽이다. 이스트가 당을 분해하면서 이산화탄소를 생성하고, 이것이 반죽에 구멍을 만들어 기름에 지질 때 바삭한 식감이 난다. 기름에 지지는 과정에서 반죽 표면의 전분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을 일으켜 특유의 갈색 빛과 고소한 향을 만들어낸다. 겉의 바삭함과 안의 촉촉한 견과류의 대비 — 이 식감의 이중성이 씨앗호떡을 중독적으로 만드는 과학적 이유다.

| 재료 | 핵심 성분·영양소 | 핵심 화학·물리 원리 | 전쟁·이주 환경과의 연결 |
|---|---|---|---|
| 밀면 | 탄수화물·글루텐 단백질; 소고기+돼지 육수의 이노신산·구아닐산 | 글루텐 망상 구조 → 쫄깃함; 고구마전분 아밀로펙틴 → 탄성 증가; 소금 숙성 → 균일한 겔 형성 | 메밀 대신 미군 원조 밀가루 사용; 피란민 고향 음식의 현지화 |
| 어묵 | 단백질 12~15g/100g; 타우린; 오메가-3(등 푸른 생선 사용 시) | 액토미오신 겔화 → 탄력; 소금 농도 조절이 겔 강도 결정; 어육 함량 70%+ = 치밀한 망 구조 | 항구 도시의 풍부한 잡어 + 생계 절박성 + 일본 기술 전수의 산물 |
| 씨앗호떡 | 해바라기씨 비타민 E 35mg/100g; 리놀레산; 땅콩 올레산·레스베라트롤 | 이스트 발효 → 공기층 형성 → 바삭함; 마이야르 반응 → 갈색·고소향; 겉바속촉의 식감 이중성 | 실크로드 → 중국 화교 → 부산 국제시장: 3단계 문화 이동의 최종 변형 |
밀면은 물밀면과 비빔밀면으로 나뉜다. 물밀면은 진한 육수에 면을 말고, 무김치(깍두기)와 수육을 얹어 낸다. 이북식 냉면과 가장 큰 차이는 면의 식감이다 — 냉면보다 훨씬 부드럽고 씹기 쉽다. 글루텐 기반이기 때문이다. 육수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끓여 식힌 뒤 기름을 걷어내고, 간장과 소금, 설탕, 식초로 간을 맞춘다. 국물이 맑고 약간 달면서 새콤한 것이 부산식의 특징이다. 비빔밀면은 고추장 양념에 참기름과 식초를 더한 빨간 양념에 버무린다. 평양냉면처럼 담백하지도, 함흥냉면처럼 맵고 찰지지도 않은 — 부산만의 절충이다.

집에서 밀면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육수의 온도다. 완성된 육수는 완전히 식힌 뒤 냉장고에서 반나절 이상 차갑게 두어야 면과 만났을 때 시원한 맛이 산다. 면을 삶은 뒤 찬물에 충분히 헹구고 한 번 더 얼음물에 담가야 글루텐 구조가 다시 수축하며 특유의 쫄깃함이 살아난다. 육수에 식초 한 스푼을 마지막에 더하면 새콤함이 살아나 부산 밀면 특유의 맛에 가까워진다.
부산 어묵탕은 서울에서 파는 오뎅탕과 다르다. 육수부터 다르다. 부산식 어묵탕 국물은 멸치, 무, 파 뿌리를 넣고 오래 끓인 맑고 구수한 국물이다. 다시다나 화학 조미료를 쓰지 않는 원칙이 오래된 가게일수록 철저하다. 어묵을 기다란 꼬치에 끼워 펄펄 끓는 국물에 담가두는 방식은 어묵의 겔 구조가 서서히 풀리면서 육수와 어묵의 맛이 교환되는 시간을 준다. 어묵에서 타우린과 글루탐산이 우러나와 국물이 더욱 깊어지고, 반대로 국물의 멸치 이노신산이 어묵에 배어든다. 이것이 오래 끓일수록 더 맛있어지는 이유다.

어묵탕 국물의 핵심은 멸치를 먼저 기름 없이 건냄비에 볶아 비린내를 날린 뒤 끓이는 것이다. 멸치를 볶으면 지방산 산화로 생기는 비린내 성분이 휘발되고 감칠맛만 남는다. 국물에 무를 큼직하게 썰어 넣으면 무의 디아스타제 효소가 전분을 분해해 국물이 자연스럽게 달아진다. 어묵은 끓는 물에 한 번 데쳐 기름기를 제거한 뒤 넣으면 국물이 훨씬 깔끔해진다.
씨앗호떡을 제대로 만들려면 반죽의 발효부터 시작한다. 밀가루에 이스트, 설탕, 소금, 따뜻한 물을 넣고 반죽해 1시간 이상 발효시킨다. 반죽이 두 배 이상 부풀면 적당량을 떼어 해바라기씨, 땅콩, 건포도, 흑설탕을 섞은 속을 채우고 동그랗게 빚는다. 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반죽을 올리고 눌러가며 지진다. 부산식 씨앗호떡의 특징은 기름에 절반 가까이 잠길 정도로 넉넉하게 사용한다는 점이다. 기름이 충분해야 마이야르 반응이 고르게 일어나 전면이 황금빛으로 바삭하게 익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견과류의 기름기로 촉촉하다. 한국전쟁의 배고픔과 국제시장 골목의 생기, 실크로드의 흔적이 한 입에 담기는 맛이다.

씨앗호떡 반죽은 너무 치대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글루텐이 과도하게 형성되면 식감이 빵처럼 질겨진다. 반죽을 가볍게 섞고 발효에 시간을 맡기면 훨씬 부드럽다. 속 재료에 흑설탕을 꼭 넣어야 카라멜화 반응이 일어나며 씨앗이 서로 엉겨 흘러내리지 않는다. 기름 온도는 170도 전후가 최적이다 — 너무 뜨거우면 겉만 타고 속이 익지 않는다.
밀면은 냉면이 되지 못했다. 어묵은 가마보코가 되지 못했다. 씨앗호떡은 호병이 되지 못했다. 그것들은 각각 다른 무언가가 됐다. 부산이라는 항구 도시가, 전쟁과 이주라는 극한의 조건이,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손이 원래의 것을 비틀고 변형하고 새로 만든 것들이다. 이 과정을 경제학에서는 '경로 의존성'이라고 한다. 처음의 조건이 이후의 모든 선택을 제약한다. 메밀이 없었기 때문에 밀면이 탄생했다. 부두의 잡어가 풍부했기 때문에 어묵이 번성했다. 관광객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씨앗호떡이 명물이 됐다.
부산은 지금도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세계 6위 컨테이너 항구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이 도시의 골목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냄새가 남아 있다. 우암동 내호냉면 노포의 밀면 육수, 영도 삼진어묵 본점의 기름 냄새, 국제시장 골목의 씨앗호떡 지지는 소리. 음식은 가장 오래가는 기억이다.
다음 화는 동아시아의 끝, 포르투갈과 중국이 500년을 함께 산 도시로 간다. 마카오 — 에그타르트와 아프리칸 치킨이 탄생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혼종 음식 문화의 도시.

잡어가 남아서 갈아 튀겼다.
설탕 대신 씨앗을 채웠다.
부산의 밥상은
없음을 있음으로 바꾼
생존의 기적이다."
| 항목 | 내용 | 출처 |
|---|---|---|
| 밀면의 기원과 내호냉면 | 밀면은 6·25전쟁 중 부산으로 피란 온 이북 출신들이 고향 냉면을 대체한 음식. 함경남도 흥남 출신 이영순씨(1919년 동춘면옥 창업)의 딸 정한금씨가 메밀 대신 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것이 원조. 1952년 남구 우암동에 '내호냉면' 개업. '내호'는 흥남 지명에서 유래. 미군 원조 밀가루 대량 공급이 밀면 확산의 구조적 배경. | 부산광역시 공식 콘텐츠, 피란민이 만든 음식, 부산 밀면; Google Arts & Culture, 피란민이 만든 음식, 부산 밀면; 지역N문화, 밀가루로 만든 냉면, 부산 밀면 |
| 부산 어묵의 기원과 삼진어묵 | 부산 어묵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가마보코에서 유래. 1924년 부평시장에서 어묵 판매 첫 기록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의 시장'). 해방 후 동광식품이 조선인 최초 어묵 공장 창설. 1953년 창업주 박재덕씨가 일본 기술을 배워 영도구 봉래시장에 삼진어묵 창업. 한국전쟁 피란민 유입으로 어묵 수요 급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산어묵; 부산광역시 공식 문화콘텐츠; 한국관광공사 부산 어묵 열전 |
| 씨앗호떡의 기원 | 호떡의 한국 유입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화교 상인과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 어원 '호(胡)'는 서역·중앙아시아를 가리키며 중국 호병(胡餠)에서 유래. 씨앗호떡(견과류 속 호떡)은 1980년대 후반 부산 남포동에서 등장.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시작 이후 국제시장·BIFF 광장 관광지화와 함께 전국 명물화.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산 남포동 씨앗호떡; 지역N문화, 서역의 음식에서 부산의 명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호떡 |
| 부산 임시수도 및 인구 변화 | 한국전쟁 발발(1950년) 후 대한민국 정부 부산 임시수도 선포. 전쟁 전 인구 약 30만에서 전쟁 중 최대 약 100~120만 명까지 급증 추산. 흥남 철수 작전(1950년 12월) 후 이북 피란민 대거 유입. 우암동·영도 등 판잣집 집단 거주 지역 형성. | 부산광역시 공식 콘텐츠; Google Arts & Culture 부산 밀면 스토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어묵의 액토미오신 겔화 원리 | 어묵의 탄력은 생선 근육의 액토미오신 단백질이 소금과 마쇄 과정에서 용출되고 가열에 의해 겔화되는 원리로 생성. 어육 함량이 높을수록 겔 구조가 치밀해져 탄력이 증가. 부산어묵조합 기준 어육 함량 70% 이상 요건이 부산 어묵의 식감 차별성 근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산어묵; 수산물 가공학 관련 문헌 |
| 글루텐과 밀면 식감의 관계 | 밀가루 중력분에 소금을 넣고 반죽·숙성하면 글루텐 망상 구조가 균일하게 형성되어 탄성 있는 면발 생성. 고구마 전분 첨가 시 아밀로펙틴 비율이 높아져 쫄깃함 증가. 부산 밀면은 소금 첨가 중력분을 하루 숙성한 생면 사용이 표준.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부산밀면; 식품 과학 관련 문헌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항구의 식탁 EP.7] 싱가포르 — 중국·말레이·인도·영국이 만들어낸 락사와 하이난 치킨라이스 (1) | 2026.05.22 |
|---|---|
| [항구의 식탁 EP.6] 마카오 — 포르투갈과 중국 500년 혼합이 낳은 에그타르트의 역사 (2) | 2026.05.21 |
| [항구의 식탁 EP.4] 알렉산드리아 — 이집트·그리스·아랍이 뒤섞인 렌틸·무화과·커민의 역사 (1) | 2026.05.19 |
| [항구의 식탁 EP.3] 나가사키 — 쇄국 일본의 창문, 카스텔라·튀김·짬뽕이 탄생한 이유 (2) | 2026.05.18 |
| [항구의 식탁 EP.2] 리스본 — 대항해시대가 만든 대구·올리브·포트와인의 기원 (5) | 2026.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