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어느 봄날,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세인트로렌스만에 도착해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선언했을 때, 현지에는 이미 1,000척의 바스크 어선이 조업 중이었다. 바스크인들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않았다 — 그들은 이미 수십 년째 여기 와 있었다. 단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대구의 비밀 어장을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구를 누가 사줬는가. 가톨릭 유럽 전체였다. 중세 가톨릭 달력에서 육류를 먹을 수 없는 날은 1년 중 약 3분의 1에 달했다 — 매주 금요일, 수요일(지역에 따라), 토요일, 대강절(4주), 사순절(40일), 성인 축일 전날들. 수천만 명이 그 날들에 먹을 단백질이 필요했고, 신선한 고기 대신 유일하게 허용된 동물성 식품 — 생선 — 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다. 종교가 시장을 만들었고, 그 시장이 어부들을 대서양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번 화는 사순절의 금육 규정이 어떻게 북해 청어 어업을 폭발시키고, 바스크인들을 뉴펀들랜드까지 보냈으며, 대구가 어떻게 "세계를 바꾼 물고기"가 됐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굴이 어떻게 가난한 자의 사순절 음식에서 귀족의 미식으로 지위가 역전됐는지, 맥도날드 필레오피쉬가 왜 존재하는지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가톨릭의 금육(禁肉, abstinence) 규정은 간단한 신학 논리에서 출발한다. 예수가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 희생을 기억하고 동참하기 위해 신자들은 금요일에 쾌락적 식사를 삼간다. 고기 — 특히 따뜻한 피가 흐르는 온혈동물의 살 — 는 중세 신학에서 육욕과 탐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차가운 피가 흐르는 생선은 성욕을 자극하지 않는 청결한 음식으로 분류됐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구분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했고, 그 결과 생선은 사순절의 공식 음식이 됐다.
중세의 "생선" 분류는 현대의 기준보다 훨씬 넓었다. 물과 연관된 모든 것이 생선 범주에 들어갔다 — 비버(beaver, 꼬리가 비늘처럼 생겼다는 이유), 바다표범, 밥티스트 거위(barnacle goose, 물에서 태어난다는 전설), 심지어 돌고래와 고래까지. 해안에서 멀리 사는 사람들은 물을 마시다 잡힌 양도 사순절에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규정이 엄격할수록, 그것을 우회하려는 창의성도 커진다.


중세 유럽 인구가 수천만 명에 달하던 시기, 그 인구 대부분이 1년 중 100일 이상 생선을 먹어야 했다. 이 수요는 단순한 개인 선택이 아닌 법적·종교적 의무였다 — 금육일에 고기를 먹다 발각되면 벌금을 내거나 교회 앞에서 공개 참회를 해야 했다. 생선 시장은 종교가 보장한 독점 수요를 가진 시장이었다. 어부, 생선 상인, 생선 보존 기술자 — 이들 모두가 종교 달력이 보장하는 안정적 시장 위에서 번성했다.
문제는 공급이었다. 내륙에 사는 사람들은 신선한 생선에 접근할 수 없었다. 15세기 캔터베리의 프란치스코 수도사 제임스 라이먼(James Ryman)이 쓴 시 「Farewell Advent」에는 대강절 동안 "고기가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이었다는 내륙 신자들의 고충이 담겨 있다. 생선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라오지 못하는 문제 — 이 간극을 메운 것이 보존 기술(염장, 건조, 훈제)과 장거리 어업이었다. 종교가 만든 수요가, 식품 보존 기술의 혁신을 추동한 것이다.

마크 쿠를란스키(Mark Kurlansky)는 1997년 저서 『대구: 세계를 바꾼 물고기의 전기(Cod: A Biography of the Fish That Changed the World)』에서 이 역설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바스크인들은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동안 북대서양 너머 풍요로운 대구 어장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대구 어장의 위치가 알려지는 순간, 경쟁자가 몰려들고 자신들의 독점 이익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1492년보다 훨씬 전에 이미 바스크인들은 그 바다에 있었고, 그들의 배가 거기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
바스크가 대구를 유럽 시장에 공급할 수 있었던 것은 염장 기술 때문이었다. 북유럽 바이킹 방식의 건조 대구(스타크피쉬)는 오래 보존되지만 맛이 딱딱하고 건조했다. 바스크인들은 소금으로 수분을 뽑아내는 염장법을 개발해 대구의 풍미를 더 잘 살릴 수 있었다. 가톨릭 지중해 국가들 —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 은 바스크의 염장 대구를 선호했다. 각 가톨릭 금육일마다 이베리아 반도와 지중해 전역의 식탁에서 바스크 어부의 어획이 소비됐다.
대구 어업이 신대륙 발견과 연결되는 방식은 직접적이다. 대구를 찾아 점점 더 서쪽으로 나아간 어부들의 경험이 항로 지식으로 쌓였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존 캐벗(John Cabot), 가스파르 코르테레알(Gaspar Corte Real) 등 대항해시대의 탐험가들이 대구 무역에 관여하거나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항해에 나섰다는 기록이 있다. 케이프 코드(Cape Cod)라는 지명 자체가 1602년 바르톨로뮤 고스놀드(Bartholomew Gosnold)가 풍부한 대구 어장을 발견하고 붙인 이름이다. 신대륙에 대구가 있었기 때문에 유럽인들이 거기 갔고, 그곳에 머물렀다.



대구가 사순절의 왕이 되기 전, 그 자리는 청어의 것이었다. 북해에 계절마다 방대한 무리로 몰려오는 청어는 중세 유럽의 가장 중요한 식량 자원 중 하나였다. 청어 자체의 이야기는 EP.3에서 유대인 무역망과 함께 상세히 다뤘지만, 사순절 맥락에서 청어의 역할은 다르고 더 크다. 청어는 가난한 자의 사순절 음식이었다 — 저렴하고 풍부하고 소금에 절이면 오래 보존됐다.
1380~1386년경 네덜란드 어부 빌럼 뵈켈스존(Willem Beuckelszoon)이 개발한 깁빙(gibbing) 기술 — 아가미와 특정 내장을 제거해 청어 자체의 효소로 적당히 숙성되도록 하는 방식 — 이 청어 보존 기간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이 기술 덕분에 청어를 통에 담아 수개월 보관하고 장거리 운반할 수 있게 됐다. 황제 카를 5세는 뵈켈스존의 묘에 직접 참배하고 청어를 먹어 경의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 그만큼 청어 보존 기술이 제국 경제에 미친 영향이 컸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었다.
청어 어업은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1358년 창설)의 경제적 기반이기도 했다. 북해·발트해 연안 브뤼헤, 뤼베크, 함부르크, 베르겐, 런던 등 한자 도시들은 청어 무역으로 번성했고, 이 청어 수요의 대부분은 가톨릭 금육일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종교 달력이 중세 유럽의 가장 중요한 무역 블록을 먹여살린 것이다.


중세 영국에서 굴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한 음식이었다. 해안가 여성들이 썰물 때 손으로 직접 채취했고, 런던 시내의 길거리 좌판에서 헐값에 팔렸다. 14세기 런던 피시몽거 상인 다니엘 러프(Daniel Rough)의 재고 기록에는 굴·게·숭어·농어·연어·청어·도다리·장어·새우 등 수십 종의 해산물이 열거되어 있다. 굴은 그 중 가장 흔하고 저렴한 것들 중 하나였다.
이 지위가 역전된 것은 19세기 산업화의 결과였다. 런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오수가 템즈강으로 유입되면서 영국 연안 굴 어장이 오염됐다. 동시에 굴 어장에 대한 과잉 채취가 이루어졌다. 굴 공급이 급감하자 가격이 치솟았고, 값싼 사순절 음식이던 굴은 빅토리아 시대에 중산층의 사치품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고급 레스토랑에서 개당 수천 원에 팔리는 굴은 중세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역설적인 상황이다.

1534년, 헨리 8세(Henry VIII)는 로마 교황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 "반가톨릭" 왕은 한 가지를 유지했다 — 금육일에 생선을 먹는 전통이었다. 1548년에는 에드워드 6세 치하에서 일시적으로 금육 규정이 완화됐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1563년 "생선의 날(fish days)"을 법률로 부활시켰다. 그 이유는 신학적이 아니었다 — 어업과 해군 역량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엘리자베스의 논리는 명확했다. 생선 수요가 있으면 어선이 많아지고, 어선이 많아지면 선원이 훈련되고, 훈련된 선원은 유사시 해군으로 전환될 수 있다. 종교 의식에서 시작된 식이 규정이, 군사적 이유로 세속 법률로 재코딩된 것이다. 같은 행동 — 금요일에 생선 먹기 — 의 의미가 "신앙적 참회"에서 "국가 안보"로 전환됐다. 이 영국의 세속적 '생선의 날'에 반발한 청교도들은 "이것은 가톨릭을 뒷문으로 들이는 음모"라고 비난했다.


| 원인 (종교 규정) | 결과 (경제·역사 변화) |
|---|---|
| 연간 100~150일 금육일 의무화 | 북해·발트해 청어 어업 급성장 → 한자동맹 경제 기반 형성. 유럽 최초의 '산업화된 어업' |
| 청어 수요로 깁빙(gibbing) 기술 개발(14세기) | 네덜란드 해양 강국 부상. 청어 무역이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경제적 기반 중 하나 |
| 대구 수요로 바스크 어부 뉴펀들랜드 진출 | 대서양 횡단 항로 지식 축적 → 콜럼버스·캐벗 등 탐험가들의 항해 기반. 케이프 코드 등 지명에 흔적 |
| 염장 대구 → 이베리아·지중해 수출 | 포르투갈 바칼라우, 스페인 바칼라오 문화 형성. 뉴잉글랜드 대구 → 포르투갈·스페인·카리브해 삼각무역의 기반 |
| 엘리자베스 1세 세속적 금어일 법제화(1563) | 영국 해군력 유지 수단으로 어업 보호. 종교 규정이 국가 안보 정책으로 재코딩된 역사적 사례 |
| 1960년대 교황 바오로 6세의 금육 규정 완화 | 미국 생선 가격 즉각 폭락. 맥도날드 필레오피쉬 탄생 배경(1962년 신시내티 가톨릭 지역 프랜차이즈의 금요일 매출 위기에서 시작) |
1962년, 루 그로엔(Lou Groen)은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가톨릭 신자가 많은 지역에서 맥도날드 프랜차이즈를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금요일이었다 — 가톨릭 신자들이 고기를 먹지 않는 날, 버거 매출이 급락했다. 그는 생선 버거를 제안했고, 회사 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험 출시한 결과 금요일 매출이 회복됐다. 필레오피쉬는 그렇게 탄생했다. 오늘날 맥도날드 글로벌 메뉴에 있는 필레오피쉬의 기원에는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이 있다. 종교가 패스트푸드 메뉴를 만든 것이다.

사순절이 만든 두 가지 음식 — 염장 대구 요리의 정수 바칼라우와, 중세 사순절의 가장 흔한 음식이었던 굴을 두 가지 방식으로 소개한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브라스(Brás)라는 선술집 주인이 고안했다는 염장 대구 달걀 볶음 — 가장 널리 알려진 바칼라우 요리 중 하나
[한국 대체] 염장 대구 → 국내에서 구하기 어려우면 명란젓 등 염장 생선으로 부분 대체 가능. 이상적으로는 이태원 수입 식품점이나 온라인에서 'bacalhau' 또는 '염장 대구' 구입. 올리브 오일 → 식용유로 대체 가능하나 풍미 차이 있음
1. 대구 복원 (전날 준비) 염장 대구를 찬물에 24~48시간 담가 염분을 제거한다. 6~8시간마다 물을 바꿔준다. 충분히 담근 후 물기를 닦고 살을 손으로 잘게 찢는다. 가시를 완전히 제거한다.
2. 감자 튀기기 감자를 아주 가늘게 채 썬다(성냥개비 두께). 올리브 오일에 황금빛이 나도록 바삭하게 튀기거나 구운 뒤 키친타월에 기름기를 뺀다.
3. 베이스 볶기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양파를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약 10분). 마늘을 넣고 1분 볶다가 찢은 대구를 넣어 2~3분 함께 볶는다.
4. 달걀 마무리 불을 약하게 줄인다. 달걀을 풀어 대구·양파 위에 붓는다. 천천히 저어가며 스크램블 상태로 익힌다 — 완전히 굳히지 않고 촉촉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삭하게 튀긴 감자 채를 넣어 섞는다.
5. 완성 그릇에 담고 블랙 올리브와 파슬리를 올린다. 포르투갈에서는 이것을 포르투 와인과 함께 먹는다. 짭짤한 대구, 고소한 달걀, 바삭한 감자의 조합 — 사순절 생선 음식이 이렇게 맛있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요리다.

[클래식 프렌치 방식] 레몬 슬라이스 · 샬롯 식초(샬롯 곱게 다진 것 + 적포도주 식초 + 후추) · 빵과 버터
[한국식 방식] 초고추장(고추장·식초·설탕·마늘·깨를 섞은 것) · 깻잎 · 채 썬 대파
굴 열기 굴 나이프(또는 튼튼한 작은 칼)를 경첩 부분에 넣어 비틀어 연다. 납작한 쪽이 위, 깊은 쪽이 아래로 놓는다. 껍질을 열 때 흘러나오는 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 이 즙 자체가 바다 맛의 정수다.
클래식 방식 레몬즙 몇 방울을 굴 위에 뿌리고, 샬롯 식초를 한 방울 올린다. 차가운 굴 즙과 레몬의 산미가 만나는 그 순간이 전부다. 빵에 버터를 바르고 곁들인다.
한국식 방식 깻잎 위에 굴을 놓고 초고추장을 올린다. 채 썬 대파를 얹는다. 굴의 바다 향과 초고추장의 매콤달콤한 조합이 한국인에게는 가장 친숙한 굴 먹는 법이다.
포인트 굴은 살아있는 것을 쓴다. 껍질이 단단히 닫혀있고 즙이 맑으며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나야 한다. 비린내가 심하면 신선하지 않은 것이다. 중세에 가난한 사람들이 매주 금요일 먹던 바로 그 음식을 지금 우리는 가끔 먹는 사치로 즐긴다 — 지위의 역전이다.

염장 건조 대구(bacalhau)는 국내 대형마트 수산물 코너나 이태원 수입 식품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포르투갈·스페인산 제품이 주를 이루며, 상태 좋은 것은 황백색 빛깔에 단단하고 고른 두께를 가진다. 복원 전날 찬물에 담가두는 것을 잊으면 레시피 전체가 어그러지니, 하루 전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바칼라우 아 브라스는 재료가 간단해 보이지만 달걀 조리 단계에서 불 조절이 결과를 가르므로, 약한 불에서 천천히 저어가며 "촉촉하게"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굴은 통영·거제산이 가을~겨울에 특히 좋고, 마트보다 수산시장에서 직접 고르는 것이 신선도 확인에 유리하다.
| 주요 사실 | 한국어 참고 자료 | 영어·학술 참고 자료 |
|---|---|---|
| 중세 연간 금육일 약 100~150일("1년의 3분의 1") | 서양 중세사 교과서 (국내 대학 교양 과목) | From Page to Plate, "The Middle Ages: From Fasting to Feasting"; PrayTellBlog, "Fasting and Abstinence: The Story" |
| 카르티에 도착(1534) 당시 바스크 선박 1,000척 이미 조업 중 | 대항해시대 관련 국내 역사 교재 | Kurlansky, M., Cod: A Biography of the Fish That Changed the World, Penguin, 1997; Goodreads review citing Kurlansky |
| 깁빙 기술 개발자 빌럼 뵈켈스존, 카를 5세의 묘 참배 일화 | 네덜란드 황금시대 관련 국내 역사서 | Wikipedia, "Gibbing" (gibbing.htm) — 카를 5세 묘 방문 기록 포함 |
| 엘리자베스 1세 1563년 세속적 금어일 법 제정 | 영국 종교개혁사 관련 국내 문헌 | Legal History Miscellany, "Fish, Flesh, and Unlawful Diet in Early Modern England"; Fagan, B., Fish on Friday, Basic Books, 2006 |
| 필레오피쉬 기원 — 루 그로엔, 신시내티, 1962년 | 패스트푸드 역사 관련 국내 기사·교양서 | NPR, "Lust, Lies and Empire: The Fishy Tale Behind Eating Fish on Friday" (npr.org) |
| 굴 100g 아연 78mg — 하루 권장량의 700% | 한국 식품안전처 식품영양성분 데이터베이스 | USDA FoodData Central — Oysters, eastern, wild, raw (fdc.nal.usda.gov) |
수천만 명의 서약이
한 어부를 대서양 끝까지 밀어보냈다.
그는 거기서 세계를 바꿀 물고기를 만났고
그것을 비밀로 간직했다.
소금에 절인 그 비밀이
뉴펀들랜드에서 리스본까지 팔렸다.
종교가 시장을 만들었고
시장이 세계를 새로 그렸다.
그 지도 위에
케이프 코드라는 이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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