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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식재료 (Korea Ingredients)

청각 (Korean Sea Staghorn)

by 소금꽃한스푼 2026. 4. 21.

청각 (靑角) — Korean Sea Staghorn

🌿 바다가 만든 뿔 — 청각 이야기

김치를 담글 때,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온 초록빛 덩어리를 씻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슴 뿔처럼 갈라진 형태. 짙은 초록색. 손에 쥐면 오독오독 씹힐 것 같은 탄력. 이름은 청각(靑角) — 푸를 청, 뿔 각. 직역하면 "초록 뿔"이다.

외국인에게 청각을 설명하면 고개를 갸웃한다. 해조류는 알겠는데, 이걸 먹는다고? 그것도 김치에? 그렇다. 한국에서는 먹는다. 오래전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영어 이름은 "sea staghorn" — 바다 사슴뿔. 학명은 Codium fragile. 전 세계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지만, 이것을 음식으로 먹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세계 어디서나 자라는데, 먹는 건 우리뿐인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taghorn_coral


📜 역사와 문화 — 김치 속에 숨어 있던 천 년의 재료

청각의 식용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조선시대 문헌 『자산어보(玆山魚譜)』에 청각이 등장한다. 조선 순조 때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 쓴 이 해양 생물 기록서에는 청각을 "청각채(靑角菜)"로 표기하며, 맛과 생김새를 설명했다. 바다 식재료를 기록한 사람이 굳이 남길 만큼 당시에도 흔히 쓰이던 재료였다는 뜻이다.

청각이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쓰인 곳은 깍두기와 백김치다. 특히 백김치에서 청각의 역할은 지금도 중요하다 — 고추를 넣지 않아 맵지 않은 백김치에 청각을 넣으면, 바다 향이 은은하게 배어들면서 김치 특유의 감칠맛 층위가 깊어진다. 고추의 자극 없이도 복잡한 맛을 만들어내는 재료였다.

전남 완도, 진도, 제주 일대가 주산지다. 깨끗한 바닷물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수질 오염에 민감한 지표종이기도 하다 — 청각이 많이 나는 바다는 깨끗한 바다라는 뜻이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도 Codium fragile가 서식하지만 식용 전통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같은 종이 바다 건너에 있는데, 왜 한국에서만 먹게 됐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국의 해조류 식문화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으로 풍부하다는 사실 — 김, 미역, 다시마, 톳, 파래, 청각 — 그 연장선에 청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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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양과 과학 — 뿔 속에 든 것들

생김새가 특이한 만큼 성분도 흥미롭다.

청각의 열량은 100g당 약 15~20kcal. 수분이 대부분이고 열량 부담은 거의 없다.

주목할 성분은 식이섬유다. 청각의 세포벽을 구성하는 다당류 — 특히 울반(ulvan) 계열의 수용성 식이섬유 — 는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 기능을 한다. 발효 식품인 김치 속에서 청각이 함께 발효되는 환경은, 이 식이섬유가 유산균 증식에 기여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마그네슘과 칼슘 함량도 높다. 해조류 특유의 무기질 프로파일로, 뼈 건강과 근육 기능에 관여한다.

**엽록소(chlorophyll)**가 풍부해 진한 초록색을 낸다. 청각이 열에 노출되면 색이 탁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엽록소가 열에 의해 분해되면서 올리브빛이나 갈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청각은 주로 생으로, 또는 최소한의 열처리로 쓴다.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있다. 청각 추출물의 항균·항산화 효과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됐다. 특히 식중독 유발 세균에 대한 억제 효과가 보고됐는데, 김치라는 발효 환경에서 청각이 단순히 맛이 아니라 보존에도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상들이 경험으로 알았던 것을 현대 과학이 확인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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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 요리

🥬 백김치 — 청각의 가장 오래된 용처. 고추 없이 담그는 백김치에 청각을 넣으면 바다의 감칠맛이 은은하게 배어든다. 청각을 너무 잘게 썰지 않고 적당히 뜯어 넣는 것이 식감을 살리는 방법이다.

🟩 깍두기 — 무에 청각을 함께 넣어 담근다. 아삭한 무와 오독오독한 청각의 이중 식감이 특징. 서울·경기 지방의 전통 깍두기에 청각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 청각 무침 — 깨끗이 씻은 청각을 초고추장 또는 된장에 무친 것. 바다 향이 직접적으로 올라오는 가장 단순한 조리법. 해안 지역 밥상에서 흔한 밑반찬이었다.

🫙 청각 장아찌 — 간장·식초·설탕에 절인 것. 짭조름하면서 바다 향이 배어 밥도둑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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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된장찌개 - https://m.blog.naver.com/shmkjhjw/221335456896


💡 소금꽃 실용 팁

청각은 구입하면 흙과 이물질이 끼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손질법: 찬물에 담가 10분 정도 두면서 손으로 살살 헹군다. 청각의 뿔 사이사이에 모래가 끼어 있을 수 있으니 여러 번 물을 갈아가며 헹구는 것이 중요하다. 뜨거운 물로 씻으면 색이 탁해지고 향이 날아가니 반드시 찬물을 쓸 것.

보관은 물에 적신 상태로 밀폐 용기에 넣어 냉장 보관하면 2~3일. 오래 두고 쓸 거라면 살짝 데쳐서 냉동하면 한 달 이상 보관 가능하다. 다만 냉동 후에는 식감이 다소 물러진다.


청각은 조용한 재료다 — 나서지 않는다. 김치 속에서 이름 없이 존재하면서 맛의 깊이를 만든다. 세계 어디서나 자라는데 먹는 건 우리뿐인 것처럼, 평범한 것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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