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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식재료 (World Ingredients)

타히니 (Tahini)

by 소금꽃한스푼 2026. 4. 20.

🌿 깨가 페이스트가 되기까지 — 타히니 이야기

중동 식탁에서 타히니(Tahini)는 소금처럼 쓰인다.

훔무스에 들어가고, 무타발에 들어가고, 고기 위에 뿌리고, 빵에 찍어 먹고, 디저트에도 넣는다. 존재감이 강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빠지면 무언가 허전하다. 중동 요리에서 타히니가 하는 역할이 정확히 그렇다 —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것.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깨 페이스트가, 수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https://cookidoo.com.cn/recipes/recipe/en-CN/r576549


📜 타히니의 역사 — 깨에서 시작된 문명

타히니(Tahini, طحينة)는 볶은 참깨를 곱게 갈아 만든 페이스트다. 이름은 아랍어 동사 "타하나(ṭaḥana, 갈다)"에서 왔다. 갈아서 만든 것, 이라는 뜻이다.

참깨(Sesamum indicum)의 역사는 인류 최초의 기름작물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오래됐다. 기원전 3500년경 인도 아대륙에서 재배가 시작됐고, 기원전 2000년 이전에 이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 전해졌다. 기원전 1550년경 이집트 의학서 에베르스 파피루스에 참깨기름이 약재로 기록되어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참깨기름을 신에게 바치는 제물로 썼다.

타히니 자체에 대한 최초의 명확한 기록은 13세기 아랍 요리서 **《키타브 알-티바카(Kitāb al-ṭabīkh)》**에 등장한다. 여기서 타히니는 훔무스의 재료로, 또 고기 요리의 소스로 기록된다. 그러나 깨를 갈아 페이스트로 만드는 기술 자체는 훨씬 오래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요리에 이미 유사한 가공법이 있었다는 근거가 있다.

십자군 시대를 다룬 이번 시리즈에서 타히니는 사실 이미 한 번 등장했다 — 십자군의 식탁 4화에서 프랑크 기사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접한 **무타발(Mutabbal)**의 재료로. 구운 가지를 으깨고, 거기에 타히니와 레몬즙, 마늘을 섞은 것. 그 맛의 핵심 깊이가 타히니에서 나왔다.

https://hanzoomworld.tistory.com/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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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히니가 품은 것들

참깨를 갈았을 뿐인데 영양 밀도가 상당하다.

타히니 100g의 칼로리는 약 595kcal. 지방이 53g, 단백질이 17g. 지방 함량이 높지만 그 대부분이 불포화지방산 — 올레산(oleic acid)과 리놀레산(linoleic acid)이다. 올리브오일에서 강조되는 바로 그 지방산들이다.

칼슘이 특히 눈에 띈다. 참깨 껍질을 포함한 타히니 100g에는 칼슘이 약 420mg 들어 있다. 우유 100g의 칼슘이 약 120mg이니, 우유의 3배 이상이다. 유제품을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타히니는 칼슘 보충의 주요 경로가 된다 — 중동과 지중해 지역 식단에서 타히니가 빠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다.

**세사민(sesamin)**과 세사몰(sesamol) — 참깨 특유의 리그난 성분이다.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하며, 동물 실험에서 혈압 강하, 지질 대사 개선 효과가 보고된다. 참깨기름 특유의 고소한 향의 원천이기도 하다.

철분도 풍부하다. 100g당 약 9mg. 성인 하루 권장량의 절반 이상이다. 비타민C가 풍부한 레몬즙과 함께 먹으면 철분 흡수율이 올라간다 — 무타발 레시피에서 타히니와 레몬즙을 함께 쓰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단점도 있다. 칼로리 밀도가 높아 과식하기 쉽고, 껍질을 벗긴 참깨로 만든 타히니는 껍질째 만든 것보다 칼슘과 미네랄이 적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제품 중 일부는 껍질을 벗긴 참깨만 쓰므로, 영양 목적이라면 성분 표기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https://www.indianhealthyrecipes.com/tahini-recipe-sesame-paste/


🍽️ 타히니가 만드는 음식들

🫙 훔무스 (Hummus) — 삶은 병아리콩에 타히니, 레몬즙, 마늘, 올리브오일을 넣고 간 것. 중동을 넘어 전 세계 슈퍼마켓에 진출한 음식이지만, 타히니 없이 만든 "훔무스"는 원형과 거리가 멀다.

🍆 무타발 (Mutabbal) — 십자군의 식탁 4화에서 등장했던 그것. 불에 구운 가지를 으깨고 타히니, 레몬즙, 마늘, 올리브오일을 섞은 딥. 훔무스보다 더 스모키하고, 더 복잡하다.

🥩 타히니 소스 — 양고기나 생선 구이 위에 뿌리는 중동의 기본 소스. 타히니에 레몬즙과 물을 섞어 농도를 조절하고 마늘과 소금으로 간한 것. 이스라엘에서는 팔라펠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 할바 (Halva) — 타히니에 설탕 시럽을 섞어 굳힌 중동의 전통 과자. 고소하고 달콤하며, 특유의 부서지는 식감이 있다. 터키, 이스라엘, 그리스, 아랍권 전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만든다.

🍋 타히니 드레싱 — 샐러드 드레싱으로 쓸 때는 레몬즙, 물, 마늘, 소금만 있으면 된다. 중동식 샐러드 파타시(fattoush)나 구운 채소 위에 뿌리면 견과류 특유의 깊이가 더해진다.

https://www.themediterraneandish.com/how-to-make-hummus/
https://www.scotchandscones.com/tahini-halva/

 


💡 소금꽃 실용 팁

타히니 병을 오래 두면 기름이 분리된다 — 위에 기름층, 아래에 굳은 페이스트층으로 나뉜다. 버리지 말 것. 병을 뒤집어 하루 두거나, 길고 좁은 스푼으로 아래까지 충분히 저어주면 다시 균질한 상태가 된다. 냉장 보관 시 더 굳어지므로, 자주 쓰는 경우라면 상온 보관이 편하다 (개봉 후 1~2개월 이내 사용 권장).

타히니로 드레싱 만들 때 물을 너무 적게 넣으면 오히려 더 되직해진다 — 타히니는 수분을 만나면 일시적으로 굳는 특성이 있다. 레몬즙 먼저 넣고 젓다 보면 갑자기 뭉치는 것처럼 보이는데, 거기서 포기하지 말고 물을 조금씩 더 넣으면서 계속 저으면 부드럽게 풀린다.


참깨는 오래전부터 갈렸다. 갈릴수록 더 고소해지는 것들이 있다 — 시간도, 사람도, 참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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