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장안(長安). 인구 100만을 넘긴 세계 최대의 도시에서 황제가 연회를 열었다. 손님은 황족만이 아니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온 소그드 상인, 토번(吐蕃)의 사절, 신라와 일본에서 건너온 유학생들이 한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중앙아시아의 포도주, 인도에서 들어온 사탕수수, 그리고 황실 다원(茶苑)에서 갓 따온 차가 놓였다.
당(唐, 618~907)은 단순히 넓은 제국이 아니었다. 음식이 흘러다니는 허브였다. 황실의 입맛이 대륙의 기준이 됐고, 황실이 즐기는 것들은 조공 루트를 타고 주변국으로 번졌다. 차는 불교 승려들의 손에서 일본 다도(茶道)로 자랐고, 설탕은 사탕수수를 심을 수 없는 한반도와 열도에 '단맛의 사치'라는 개념을 심었다. 용안은 귀비의 총애와 함께 황실 과실의 상징이 됐다.
당 황실의 식탁이 어떻게 동아시아의 식문화 지도를 다시 그렸는지. 그것이 이 화의 이야기다.

당 황실의 연회는 회식(會食)이라 불리는 공식 의례였다. 황제가 신하와 외국 사절을 초대해 함께 먹는 행위는 위계를 확인하고 동맹을 다지는 외교 행위였다. 자리 배치, 제공되는 음식의 종류와 순서, 황제가 직접 하사하는 식재료 — 이 모든 것이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특히 황제가 특정 음식을 신하에게 내린다는 것은 특별한 총애의 표시였다.
당 태종(太宗) 이세민은 연회를 외교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 동돌궐을 제압한 뒤 항복한 수령들을 장안으로 데려와 황실 연회에 앉혔다. 그들 앞에 놓인 음식은 초원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차, 사탕수수즙, 남방에서 올라온 열대 과일들. 제국의 위용은 칼보다 먼저 식탁 위에서 증명됐다.

당 현종(玄宗)의 총비 양귀비(楊貴妃)가 용안(龍眼, 龙眼)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은 여러 당대(唐代) 문헌에 남아 있다. 현종은 광둥에서 재배되는 신선한 용안을 매 철마다 역참(驛站)을 통해 장안까지 급송했다. 1,500km가 넘는 거리를 말 릴레이로 나흘 안에 운반했다고 전해진다. 신선도를 위해 말을 갈아가며 달리는 이 수송 체계는 용안을 황실 권력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두보(杜甫)의 시구에는 이 과잉의 풍경이 비판적으로 담겨 있다. 귀비를 위해 소모되는 국가 자원이 민간의 피폐와 대조를 이루는 장면. 그러나 황실의 과시가 남긴 흔적은 오래갔다. 용안은 이후 중국 전역에서 '귀한 과일'의 이미지를 유지했고, 오늘날까지 혼례와 명절 상차림에 등장한다.


당(唐) 건국. 수도 장안이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점이 되며 중앙아시아·남아시아·동아시아 식재료가 집결하는 허브로 기능하기 시작.
당 태종, 인도 마카다 왕국에 사절단 파견하여 사탕수수 제당 기술 습득. 이후 화남(華南) 지역에서 본격적인 설탕 생산이 시작되며 황실 공납품으로 정착.
육우(陸羽), 『다경(茶經)』 완성. 차의 재배·가공·음용법을 체계화한 인류 최초의 차 전문서. 황실의 차 문화를 문자로 집대성하며 동아시아 전역으로 전파의 발판 마련.
일본 승려 사이초(最澄), 당에서 귀국할 때 차 씨앗을 가져와 히에이잔(比叡山) 기슭에 파종. 이것이 일본 차 재배의 공식적인 시작이며 후대 일본 다도 문화의 뿌리가 됨.
당 멸망. 그러나 황실이 퍼뜨린 차·설탕·용안의 식문화는 이미 한반도, 열도, 동남아시아에 뿌리내린 뒤였다. 음식의 전파는 왕조의 수명보다 길었다.
차(茶)의 원산지는 중국 서남부, 오늘날의 윈난성 일대다. 야생 차나무에서 잎을 따 끓여 마신 역사는 한(漢)대 이전으로 거슬러 오르지만, 차가 황실 문화의 중심으로 진입한 것은 당대(唐代)다. 황실 전용 다원이 조성됐고, 황제에게 공납되는 차는 공차(貢茶)라 불렸다. 그 중 절강성 호주(湖州)의 자순차(紫筍茶)는 당 덕종(德宗) 시대부터 황실 공차로 지정되어 매년 청명절 전에 황궁으로 진상됐다.
780년 육우가 완성한 『다경(茶經)』은 단순한 음용 지침서가 아니었다. 차의 역사와 재배, 물의 종류, 다기(茶器)의 사용법, 음용의 경지까지 포괄한 이 책은 차를 미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당 황실의 지원 아래 이 문화는 불교 승려들을 통해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신라 사신과 일본 견당사(遣唐使)들이 차 씨앗과 다기를 들고 귀국했고, 황실의 음료는 사찰의 수행 문화로, 이후 무사 계급의 미학으로 변형되며 각국 고유의 차 문화를 낳았다.


사탕수수는 동남아시아에서 인도로 건너간 뒤, 인도의 제당 기술과 결합해 고체 설탕으로 정제됐다. 당 태종은 641년 인도 마가다(摩揭陀) 왕국에 사절을 파견해 설탕 제조법을 직접 배워오게 했다. 이후 중국 강남과 화남 지역에서 사탕수수 재배와 제당 산업이 확대됐다. 황실은 설탕을 공납품 목록에 포함시켰고, 고급 과자류와 약재에 설탕을 쓰는 문화를 정착시켰다.
한반도에는 통일신라 시대부터 당으로부터 설탕이 유입됐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탕수수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로 인해 설탕은 오랫동안 극히 귀한 수입 사치품으로 남았다. 조선 시대까지도 '사탕(沙糖)'은 왕실 의례와 상류층 연회에서만 쓰이는 재료였다. 당 황실이 인도에서 가져온 그 흰 결정이, 수백 년 뒤 한식의 단맛 철학을 만든 씨앗이었다.

당 황실로의 조공 체계는 단방향이 아니었다. 한반도의 신라는 당에 인삼, 직물, 금은을 보냈고 그 답례로 황실의 물품과 식재료가 돌아왔다. 일본의 견당사는 20년에 한 번씩 수백 명 규모로 파견됐고, 그들이 귀국할 때 가져오는 것들 중에는 반드시 식재료와 조리법이 포함됐다. 당 황실 연회에서 먹었던 음식의 기억이 문자와 기물과 씨앗의 형태로 주변국으로 흘러들어갔다.
이 흐름은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고구려의 된장 계열 발효식품, 신라의 발효 생선 문화 역시 당 귀족들의 식탁에 올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안은 동아시아 식문화의 수렴지이자 발산지였다. 황실의 식탁은 그 교환의 중심이었다.

차(Camellia sinensis)의 독특한 효능은 두 가지 핵심 성분에서 온다. 첫째는 카페인(caffeine). 차 한 잔에는 커피의 절반 수준인 20~60mg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각성과 집중력을 높이는 이 성분이 당나라 승려들이 참선 수행 중 차를 마신 이유였다. 둘째는 L-테아닌(L-theanine). 차에만 고농도로 존재하는 아미노산으로, 카페인의 각성 효과는 유지하면서 불안감을 줄이고 알파파를 증가시킨다. 커피와 달리 차를 마신 뒤 '고요한 각성' 상태가 느껴지는 것은 이 두 성분의 시너지 때문이다.
카테킨(catechin) 계열 폴리페놀은 차의 쓴맛과 떫은맛을 만들며 강력한 항산화 작용을 한다. 특히 녹차에 풍부한 EGCG(epigallocatechin gallate)는 현재 항암 및 심혈관 보호 효과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당나라 의서에도 차의 해독 작용과 소화 촉진 효능이 기록돼 있는데, 이는 카테킨의 항균·항염증 작용과 일치한다. 당 황실이 약재이자 기호품으로 차를 소비한 것은 경험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사탕수수에서 추출한 설탕의 주성분은 자당(sucrose)으로, 포도당과 과당이 1:1로 결합한 이당류다. 당 태종이 인도에서 배워온 제당 기술의 핵심은 사탕수수즙을 끓이고 결정화하는 과정이었다. 이 공정을 통해 유통과 보존이 가능한 고체 형태의 설탕이 탄생했다. 문명사에서 정제 설탕의 등장은 단순히 단맛의 공급이 아니라 장기 보존 가능한 에너지원의 탄생이었다.
당도 측면에서 자당(100)은 과당(120~170)보다 단맛이 약하지만, 조리 시 열안정성이 높고 전분과의 결합성이 좋아 과자류에 유리했다. 당나라 황실 과자 당과(糖果)는 이 특성을 활용한 산물이었다. 설탕이 귀했던 한반도에서는 꿀과 조청(엿기름 당화액)이 설탕의 대체재로 발전했는데, 조청의 주성분 맥아당(maltose)은 자당보다 단맛이 약하고 점성이 높아 한식 특유의 은은하고 찰진 단맛 문화를 만들어냈다.

용안(龍眼, Dimocarpus longan)은 무환자나무과(sapindaceae)의 열대 과일로, 리치(荔枝, lychee)의 근연종이다. 과육의 주요 당류는 포도당과 과당으로, 당도는 가용성 고형물 기준 18~22°Brix에 달한다. 여기에 비타민 C, 비타민 B군, 칼륨, 철분이 풍부하다. 중국 전통 의학에서는 심(心)을 보하고 혈(血)을 기르는 약재로 분류해왔으며, 현대 연구에서는 폴리사카라이드 성분의 항산화·항피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용안이 1,500km 급송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천연 당분 농도가 높고 껍질이 두껍기 때문이다. 높은 삼투압이 미생물 번식을 억제하고, 두꺼운 껍질이 수분 증발을 늦췄다. 같은 이유로 건조 용안(桂圓, 계원)은 보존성이 더 뛰어나 실크로드 교역품으로도 유통됐다. 건조 과정에서 수분이 빠지며 당도가 올라가고 약효 성분이 농축된다는 것이 한의학의 관점이며, 오늘날 연구에서도 건조 용안의 폴리페놀 농도가 생것보다 높게 나타난다.

| 식재료 | 당 황실에서의 역할 | 핵심 성분 | 동아시아 전파 경로 |
|---|---|---|---|
| 차(녹차) | 공차(貢茶)·황실 다례 문화 | 카테킨, L-테아닌, 카페인 | 견당사·구법승 → 한반도·일본 |
| 설탕(자당) | 황실 과자·약재·공납품 | 자당(포도당+과당), 고열량 | 조공 하사품 → 귀족층 수입품 |
| 용안 | 황실 헌상 과일·총비 양귀비의 애호품 | 포도당·과당, 비타민 C, 폴리사카라이드 | 실크로드 교역품 → 동남아·화남 정착 |
| 리치 | 양귀비 헌상 과일·남방 공납품 | 포도당·과당, 비타민 C, 올리고당 | 화남 원산 → 황실 경유 동아시아 전파 |
당나라 황실에서 마시던 떡차(餅茶) 방식 — 차 잎을 쪄서 절구에 빻고 뜨거운 물에 풀어 거품을 내 마시는 법 — 은 일본으로 건너가 말차(抹茶)로 진화했다. 말차는 차나무를 수확 전 3~4주 차광(遮光) 재배해 엽록소와 L-테아닌 함량을 높인 뒤, 돌절구로 곱게 갈아 분말화한 것이다. 이 차광 처리가 말차 특유의 깊은 초록색과 감칠맛(우마미)을 만들어낸다. 현재 이 아미노산 감칠맛을 응용한 말차 라테, 말차 아이스크림, 말차 제과류는 글로벌 식품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말차의 L-테아닌은 80°C 전후의 물에서 가장 잘 추출된다. 100°C 끓는 물을 바로 부으면 카테킨의 쓴맛이 과도하게 우러나고 테아닌이 상대적으로 억제된다. 차완(茶碗)에 말차 분말을 넣고 80°C 물을 부어 차선(茶筅, 대나무 거품기)으로 W자를 그리며 빠르게 저어주면 균일한 거품과 최적의 풍미를 얻을 수 있다. 당나라 황실이 품질을 따진 것은 미각만이 아니라 화학적 근거가 있는 선택이었다.
당나라 황실 연회에는 당과(糖果) 류가 빠지지 않았다. 설탕에 꿀을 더하고 참깨·잣·계피를 넣어 굳힌 과자들이었다. 이것이 조공 경로를 타고 한반도에 전해지며 한국 전통 과자 강정과 엿 문화로 변형됐다. 설탕이 귀한 환경에서 조청(맥아당)이 설탕을 대신했고, 강정의 튀긴 쌀 베이스와 조청 코팅은 한반도 특유의 제과 문화를 형성했다. 오늘날 한국의 한과(韓菓) 전통은 당나라 황실 과자에서 출발한 1,400년의 여정이다.
용안을 구입했다면 껍질째 냉장 보관하고 먹기 직전에 깐다. 껍질을 벗기는 순간 산화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건조 용안(계원)은 쌀죽이나 뭉근히 끓이는 탕류에 넣으면 깊고 은근한 단맛을 더해준다. 중국에서는 대추·구기자와 함께 삼보탕(三寶湯)에 넣어 한방 보양식으로 즐긴다. 양귀비가 왜 이 과일에 빠졌는지, 한 알 먹어보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교류는 단방향이 아니었다. 신라가 당에 공납한 인삼은 당 황실 의서에 약재로 기록됐고, 한반도산 꿀은 장안의 귀족들 사이에서 진상품으로 유통됐다. 당 황실을 통해 설탕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동안, 한반도의 발효와 약선(藥膳) 전통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들어갔다. 오늘날 한국인이 인삼을 차로 마시고, 음식에 꿀을 쓰는 문화는 이 1,400년 전 교류의 흔적이기도 하다.

907년 당이 멸망했을 때, 세계 최대의 도시 장안은 폐허가 됐다. 실크로드의 통상로는 끊겼고, 황실 다원은 주인을 잃었다. 그러나 음식은 왕조보다 오래 산다.
당 황실의 차 문화는 이미 일본 히에이잔 기슭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200년 뒤 에이사이(榮西) 선사가 말차 음용법을 다시 일본에 소개했을 때, 그것은 당 황실 문화의 재발견이었다. 무사들이 차실에서 조용히 말차를 마시며 마음을 갈고닦는 와비사비(侘び寂び)의 미학은, 결국 7세기 장안의 황실 다례에서 출발한 오랜 여행의 끝이었다.
조선 왕실 잔치상에 오른 한과의 달콤함 속에도, 양귀비를 위해 말 릴레이로 달려온 용안의 신화 속에도, 당나라 황실이 만든 식문화의 흔적이 살아있다. 황제는 죽었고 장안은 폐허가 됐지만, 차 한 잔의 온기는 1,400년을 건너 지금 이 순간에도 손끝에 닿아 있다.
그 향이 대륙을 건너 열도에 닿았고,
1,400년 뒤에도 우리는 그 향 안에 있다."
| 항목 | 내용 | 출처 |
|---|---|---|
| 당 태종 제당 기술 습득 | 641년 인도 마가다 왕국에 사절 파견, 설탕 제조법 전수 | 『신당서(新唐書)』 권221, 서역전; Sidney Mintz, Sweetness and Power (1985) |
| 육우 『다경』 완성 | 780년경 완성, 차의 재배·가공·음용법 체계화 | 陸羽, 『茶經』(780년경); Encyclopaedia Britannica, "Lu Yu" |
| 사이초의 차 전래 | 805년 일본 승려 사이초, 당에서 차 씨앗 귀국 전래 | 荒川正人, 『日本茶の歴史』(2003); 日本茶業中央会 공식 자료 |
| 용안 급송 기록 | 양귀비를 위한 광둥 용안·리치의 역참 급송 | 두목(杜牧), 「과화청궁(過華清宮)」; 『구당서(舊唐書)』 후비전 |
| 말차 L-테아닌 효과 | L-테아닌과 카페인 복합 섭취 시 주의력·진정 효과 | Owen et al. (2008), Nutritional Neuroscience; Haskell et al. (2008), Biological Psychology |
| 용안 항산화 효과 | 용안 폴리사카라이드의 항산화·항피로 활성 | Zheng et al. (2009), Food Chemistry; Li et al. (2017), Journal of Functional Foods |
| 자순차 황실 공차 지정 | 당 덕종 연간, 호주 자순차 공차(貢茶)로 지정 | 『元和郡縣圖志』; Victor Mair & Erling Hoh, The True History of Tea (2009) |
| 조청 맥아당 조성 | 한국 조청 주성분은 맥아당(maltose), 자당보다 단맛 낮음 | 농촌진흥청 식품성분 DB; 한국식품과학회지 관련 논문 |
'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궁정이 바꾼 식탁 EP.5] 만한전석이란 무엇인가 — 청나라 황실 연회와 제비집·상어지느러미 (0) | 2026.05.14 |
|---|---|
| [궁정이 바꾼 식탁 EP.4] 오스만 제국의 향연 — 톱카프 궁전 주방과 커피·바클라바의 기원 (0) | 2026.05.13 |
| [궁정이 바꾼 식탁 EP.2] 베르사유의 식탁 혁명 — 루이 14세와 트뤼프·푸아그라의 역사 (1) | 2026.05.11 |
| [궁정이 바꾼 식탁 EP.1] 왕의 밥상, 나라의 표준 — 조선 수라간 음식과 한식의 기원 (1) | 2026.05.10 |
| [전염병과 식재료 EP.10] 전염병이 만든 현대 식품 안전 — HACCP·냉장고·살균의 역사 (1) | 2026.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