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토의 맛 (Taste of Terroir)

흑산도 홍어 (2) - 홍어 암모니아 냄새의 비밀과 삭히는 원리

by 소금꽃한스푼 2026. 5. 11.
 
바다의 시간과 뱃길이 만든 발효 — 흑산도 홍어
Episode 2 / 2
뱃길이 만든 발효, 영산강의 시간
거리가 만들어낸 우연한 미식의 탄생
 

산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홍어. 하지만 이 생선이 진정한 전라도의 미식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아직 하나의 거대한 관문이 남아있었다. 바로 육지를 향한 길고 험난한 여정이다.

냉장 기술은커녕 소금조차 귀하던 시절. 뱃사람들에게 생선을 싣고 뭍으로 향하는 길은 부패와의 처절한 시간 싸움이었다. 여름날 배 밑바닥의 찜통 같은 열기 속에서, 대부분의 물고기는 부풀어 오르고 썩어 문드러졌다. 그러나 오직 한 놈, 짚더미 구석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던 홍어만은 달랐다.

썩어가는 생선들 사이에서 홍어는 고약한 지린내를 뿜으며 스스로를 보존하고 있었다. 버려야 할 쓰레기인 줄 알았으나, 막상 썰어 입에 넣어보니 쫀득한 찰기와 함께 머리가 맑아지는 알싸한 쾌감이 번졌다. 흑산도의 짠물이 영산강의 민물과 만나는 그 아득한 거리. 거리가 빚어낸 테루아의 두 번째 이야기다.

흑산도 - https://ko.wikipedia.org/wiki/%ED%9D%91%EC%82%B0%EB%8F%84

📜 역사와 지리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 15일의 거리
부패와 발효의 아슬아슬한 경계

조선 시대 흑산도 앞바다에서 잡힌 생선이 내륙의 장터로 가려면 기나긴 항해를 거쳐야 했다. 파도가 거친 흑산 해역을 지나, 다도해의 섬들을 구비구비 돌아 목포 앞바다에 닿는다. 그리고 거기서부터는 물살을 거슬러 영산강을 타고 영산포(榮山浦)까지 올라가야 했다.

바람과 돛에 의지하던 시절, 이 항해는 짧게는 열흘, 길게는 보름 가까이 걸렸다. 고등어나 조기 같은 일반 생선은 소금을 잔뜩 쳐서 염장하지 않으면 온전하게 육지에 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홍어는 소금 한 줌 없이도 부패를 이겨냈다. 배 밑바닥에 깔아둔 볏짚 위에서 홍어는 죽어서 썩는 대신, 맹렬하게 발효하며 뭍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주의 영산포 - http://www.naju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743
 
 
14세기 후반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피해 섬 주민들을 뭍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공도정책(空島政策) 시행. 흑산도 주민들이 영산강을 거슬러 나주 지역에 정착하며 '영산포'라는 지명이 탄생.

 
조선 중후기

영산포가 서남해안 최고의 포구로 성장.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 조기, 미역이 영산포에 집결하여 내륙 전역으로 유통되는 교역망 형성.

 
1981년

영산강 하굿둑 완공. 뱃길이 영구적으로 끊기며 영산포의 해상 교역 기능 상실. 항해를 통한 '자연 발효의 시간'은 냉장과 인공 숙성의 시대로 넘어감.

" 15일의 거리. 썩어 문드러질 시간이 발효의 기적으로 뒤바뀌는 찰나. 지리가 미식을 창조해낸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다.

🔬 과학과 화학
요소가 암모니아로 — 기적의 생화학
썩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는 생선

지난 1화에서 홍어가 깊은 바다의 삼투압을 견디기 위해 근육 속에 '요소(Urea)'를 축적한다고 이야기했다. 홍어가 죽어 숨을 거두는 순간, 피부에 붙어있던 미생물들이 이 요소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물이 바로 찌릿한 냄새의 주인공, '암모니아(Ammonia)'다.

암모니아 농도가 짙어지면서 홍어 살코기의 pH 농도는 8.5를 훌쩍 넘어 강한 알칼리성으로 변한다. 대부분의 부패균은 산성이나 중성 환경에서 번식할 뿐, 이렇게 독한 알칼리 환경에서는 버티지 못하고 전멸한다. 즉, 홍어는 썩는 것이 아니라 암모니아라는 천연 방부제로 스스로를 멸균 처리하며 무균 상태의 발효를 진행하는 것이다.

https://namu.wiki/w/%ED%99%8D%EC%96%B4
코를 찌르는 쾌감 — 삼차신경의 역설

잘 삭힌 홍어를 한 점 입에 넣으면 코가 뻥 뚫리며 눈물이 핑 돈다. 이는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다. 기화된 암모니아 가스가 비강을 타고 올라가 뇌와 연결된 '삼차신경(Trigeminal nerve)'을 자극하는 것이다. 신경은 이를 가벼운 통증으로 인식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가벼운 통증 신호를 받은 우리 뇌는 고통을 상쇄하기 위해 '엔돌핀'을 분비한다. 통증이 사라진 자리에 호르몬이 주는 묘한 쾌감만이 남는다. 홍어를 먹고 나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자꾸만 그 맛을 갈망하게 되는 이유, 뇌과학이 증명하는 중독의 메커니즘이다.

https://www.medipana.com/news/articleView.html?idxno=293542
💡 소금꽃한스푼의 한 스푼

홍어 삼합(三合)은 단순한 곁들임이 아니라 완벽한 생화학적 앙상블입니다. 삭힌 홍어의 강한 '알칼리성(암모니아)'과 묵은지의 강한 '산성(젖산)'이 입안에서 만나 격렬하게 중화됩니다. 이때 돼지고기 수육의 풍부한 지방이 합세하여 자극적인 암모니아 가스를 부드럽게 코팅하며 감싸 안습니다. 혀와 코, 그리고 화학 방정식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한 접시의 예술입니다.


결말

 

시간과 거리가 완성한 테루아

만약 영산포가 조금 더 가까웠다면 어땠을까. 생선은 온전한 상태로 도착했을 것이고, 사람들은 흑산도 주민들처럼 싱싱한 홍어회나 무침만을 즐겼을 것이다.

만약 영산포가 조금 더 멀었다면 어땠을까. 제아무리 암모니아 방패를 두른 홍어라 할지라도 기나긴 여름날의 항해를 끝내 버티지 못하고 형체 없이 녹아내렸을지도 모른다.

흑산도에서 영산포까지, 뱃길로 열흘에서 보름 남짓. 영산강의 느릿한 유속과 돛단배의 속도. 이 정확한 물리적 거리가 절묘한 발효의 타이밍을 만들어냈다. 토양이나 기후만이 테루아가 아니다. 지독하게 살아남으려 했던 바다 밑바닥 생물학에 인간의 교역로가 겹쳐진 순간, 한반도에서 가장 기이하고도 위대한 맛이 탄생했다. 그것은 지리와 시간, 즉 거리가 빚어낸 테루아였다.

흑산도와 영산포 -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15/2009051501237.html
"영산포가 가까웠다면 신선함을, 멀었다면 부패를 얻었으리라. 그 아슬아슬한 거리가 발효를 발명했다."

✅ Fact-check
항목 내용 출처
영산포구의 역사 고려 말 왜구를 피해 내륙으로 이주한 흑산도민들이 개척한 서남해안 최대 포구 나주시사(羅州市史),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홍어 발효의 화학 반응 체내 요소(Urea)가 우레아제(Urease) 효소 및 세균에 의해 암모니아로 분해되며 pH 8.5~9.0의 강알칼리성 환경 조성 한국식품과학회지, 전통 발효수산물의 이화학적 특성
삼차신경 자극 메커니즘 암모니아 가스가 후각과 함께 비강 내 삼차신경(통각)을 자극, 뇌에서 보상으로 엔돌핀 분비 신경과학 리뷰(Neuroscience Reviews); 맛의 원리 (최낙언)
홍어 삼합의 중화 작용 알칼리성 암모니아와 산성인 묵은지의 젖산이 중화 반응을 일으키며 풍미를 증진 식품영양학적 관점의 한국 전통음식 분석 (농촌진흥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