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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식재료 (Food & History)

[1492 바다 위의 식탁 EP.2] 대항해시대 선원들의 식량 — 괴혈병과 비스킷의 역사

by 소금꽃한스푼 2026. 4. 13.

2026.04.12 - [한줌의 역사] - "1492, 바다 위의 식탁" - 콜럼버스의 항해가 바꾼 세계의 맛 (1)

 

"1492, 바다 위의 식탁" - 콜럼버스의 항해가 바꾼 세계의 맛 (1)

1화 — 왜 바다로 나갔는가향신료 한 줌이 사람을 움직였다. 군대를 일으켰다. 대륙을 바꿨다.지금 우리에게 후추는 식탁 위의 당연한 물건이다. 흔하고, 싸고, 아무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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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배 위의 식탁


1492년 9월 6일, 카나리아 제도의 마지막 섬 고메라를 떠난 세 척의 배가 서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이제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알려진 땅도, 지도도, 돌아온 사람의 증언도. 오직 바다만 있었다. 선원들은 갑판에서 잠을 자고, 지평선을 바라보며 버텼다. 그리고 먹었다 — 살아남기 위해, 매일, 똑같은 것을.

배 위의 식탁은 전쟁이었다. 썩음과의 전쟁, 굶주림과의 전쟁, 두려움과의 전쟁.

카나리아 제도 - https://canariaslovers.com/es/mejor-isla-canarias-donde-ir/

📜 역사와 배경

산타마리아호에는 52명이 탔고, 핀타와 니냐에는 각각 약 18명이 승선했다. 총 9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최장 수십 일치 식량을 나눠가며 미지의 바다를 건넜다.

콜럼버스는 선원들이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항해일지에 실제 항해 거리보다 적은 수치를 기록했다. 9월 9일 일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 "사람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실제보다 적은 수를 기록하기로 했다." 지도자가 진실을 숨겨야 했던 이유는, 그 진실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육지가 보이지 않자 선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10월 10일, 반란 직전의 상황이 됐다. 콜럼버스는 이틀만 더 항해하자고 설득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10월 12일 새벽 2시, 핀타호의 선원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가 소리쳤다 — "육지다!"

그 36일간, 선원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산타마리아호 모형 - https://www.stephensandkenau.com/ship/santa-maria-model-ship/

📌 역사적 배경 확인

카나리아 제도 고메라 최종 출항: 1492년 9월 6일
선원 반란 직전 상황 및 콜럼버스 설득: 1492년 10월 10일
로드리고 데 트리아나의 육지 발견: 1492년 10월 12일 새벽 2시
산타마리아 52명, 핀타·니냐 각 약 18명 탑승 ✅
콜럼버스가 항해 거리를 축소 기록한 사실: 항해일지 원문에 명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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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택 — 썩지 않는 빵, 먹을 수 없는 빵

배 위의 주식은 하드택(hardtack), 즉 건빵이었다. 밀가루와 물, 소금만으로 만들어 두 번 구워낸 이 딱딱한 빵 덩어리는 수개월이 지나도 썩지 않았다. 냉장고가 없던 시대, 바다 위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탄수화물이었다.

문제는 너무 딱딱해서 그냥은 먹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물이나 와인에 불려야 겨우 씹을 수 있었고, 항해가 길어질수록 통 안에 바구미가 들끓었다. 콜럼버스의 아들 페르디난드가 훗날 4차 항해를 기억하며 남긴 기록은 충격적이다 — "구더기가 너무 많아 차마 볼 수 없어서 밤에 먹었다. 그나마도 남기면 저녁을 굶으니 집어내지 않고 먹었다."

허기와 자존심 중 하나를 골라야 했던 사람들이, 허기를 골랐다.

Hardtack - https://theprepared.com/survival-skills/guides/hardtack/

🥩 소금에 절인 것들 — 염장육과 염장 생선

고기는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거나 식초에 담갔다. 소고기, 돼지고기, 대구, 정어리, 앤초비. 나무통 안에 빽빽이 쌓여 배의 가장 건조한 구역에 보관됐다.

염장육은 짰다 — 너무 짰다. 소금이 부패를 막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었다. 먹고 나면 갈증이 극심해졌고, 신선한 물은 언제나 부족했다. 선원들은 물 대신 와인과 식초 물을 마셨다. 식초는 이상하게도 물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었고, 소량의 산이 세균 번식을 억제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들이 알고 있던 과학의 전부였다.

식량 목록 전체를 나열하면 이렇다. 하드택, 염장 돼지고기, 염장 대구, 절인 정어리와 앤초비, 말린 콩류(병아리콩·렌틸·강낭콩), 쌀, 치즈, 꿀, 건포도, 아몬드, 올리브 오일, 식초, 와인, 마늘. 그리고 살아있는 닭과 돼지 몇 마리 — 항해 초기에 잡아먹는 용도였다.

풍요로워 보이는 이 목록이 36일이 넘는 항해 동안 90명이 나눠먹어야 하는 전부였다.

Cured meat - https://www.storeitcold.com/how-long-does-cured-meat-last/?srsltid=AfmBOoqeXn6FADn29Wd43ih7vqh4P9-pBnt-BsnKgPkW-Y_fRXE5oUJh
Salted Fish - https://www.splendidtable.org/story/2011/04/07/whole-fish-roasted-in-salt


⚠️ 괴혈병 — 보이지 않는 적

선원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폭풍도, 괴물도 아니었다. 잇몸이 썩고 이빨이 빠지며 온몸에 멍이 드는 병 — 괴혈병이었다.

비타민 C 결핍으로 발생하는 이 병의 원인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 신선한 과일과 채소가 부족하면 걸린다는 사실이 의학적으로 밝혀진 건 한참 뒤의 일이었다. 콜럼버스의 1차 항해는 비교적 짧은 편이었지만, 이후 수백 년의 대항해시대 동안 괴혈병은 바다 위에서 가장 많은 선원을 죽인 질병이 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도착한 신대륙의 원주민들은 고추와 구아바, 파파야를 먹으며 비타민 C를 충분히 섭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답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 유럽인들이 그것을 알아보기까지 200년이 더 걸렸을 뿐이다.

Illustration by Gustave Doré from a book-length edition of Coleridge’s 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 Scurvy was responsible for more deaths at sea than storms, shipwrecks, combat, and all other diseases combined.  Wikimedia Commons


🍋 식초 — 배 위에서 살아남은 신맛

선상 식량 중 가장 과소평가된 것이 있다면 식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식초는 조미료지만, 1492년 선원들에게 식초는 약이자 방부제이자 음료였다.

식초 물(물에 식초를 탄 것)은 선원들의 일상 음료였다. 와인이 상하면 자연스럽게 식초가 됐고, 이것을 버리지 않고 활용했다. 염장육을 보관하는 통 속에도 식초가 쓰였다. 세균이 번식하는 것을 억제하는 산의 성질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가 식초를 발효시키기 시작한 건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빌로니아에서 포도주 식초를 만들었고, 로마 군인들은 '포스카(posca)'라는 식초 음료를 군용 식량으로 늘 갖고 다녔다. 그 전통이 콜럼버스의 배 위까지 이어진 것이다.

Posca - 고대 로마부터 이어온 식초음료 - https://posca.world/?lang=en

💡 알아두면 좋은 것 식초의 방부·항균 효과는 현대 과학으로도 증명된다. 산도(pH)가 낮아 대부분의 세균이 번식하기 어렵고, 특히 아세트산은 식중독 세균 억제에 효과적이다. 콜럼버스 선원들이 경험으로 터득한 것을 우리는 지금 실험실에서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두려움을 먹었고, 소금을 먹었고, 어둠 속에서 구더기를 먹었다. 그럼에도 36일을 버텼다. 배 위의 식탁이 가르쳐준 것은 —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견딜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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